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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어떻게 지옥을 만드는가

by 오제이


"이건 너만 알고 있어야 돼"


이 말은 사람을 피 말리게 만든다.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비밀은 불필요한 중압감만 만들어낸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자기가 얼마나 큰 비밀을 다루는 사람인지 으스대고 싶은 마음일까? 아니면 불편한 진실을 알고 있다는 불쾌함에 억눌려 아무에게나 퍼뜨려 총량을 줄이겠다는 심보일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리더급 직원이 자기만 알고 있는 회사의 비밀이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공유해 줬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알게 됐다고 해서 내게 도움 될 건 없었다. 오히려 그 이야기 속 당사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만 할 뿐, 그 비밀은 내 인생에 어떠한 이득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비밀을 공유하면 서로 유대감이 생기지 않겠나?'


비밀을 공유한다고 하면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밀을 말한다는 건 말하는 사람의 기분만 일시적으로 편해질 뿐, 결국 서로에게 부정적 결과만 나타나게 된다. 유대감? 친밀감? 전략적 협력?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결말은 의심과 견제, 불편과 불안이 만드는 팽팽한 긴장감 뿐이다.



의심이란 건 참 무섭다. 의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축적되고 정도에 따라 망상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혹시 이 비밀을 이미 모두가 알고 있고, 내가 모르는 척 연기하는 걸 보며 다른 사람들이 비웃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 거의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둘씩 비밀을 아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현실은 지옥이 된다.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게 되어 일상이 파놉티콘으로 변해버린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비밀을 모르는 편이 더 좋지 않겠나?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나는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 게, 왜 굳이 다른 사람과 비밀로 하기로 한 걸 내게 이야기하느냐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인가? 싶어 이야기를 곱씹어 봐도 그 안에 나와 관련된 정보는 없다.


이렇게 제3자의 비밀을 알게 되면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비밀을 만들어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치 독이 든 성배를 쥐어잡은 것처럼, 안절부절 인생이 불행해진다.



나는 대화 자리에서 누군가 그 자리에 없는 사람 이야기를 꺼낸다 싶으면 이내 자리를 피해버린다. 의도치 않게 험담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은연중에 만들어질 암묵적 비밀을 갖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비밀이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나와 관련 없는 비밀은 캔슬링 해주는 이어폰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보가 아무리 권력인 세상이래도, 나와 관련 없는 정보는 그저 소음일 뿐이다.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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