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지난주 어느 날이 이 회사에 입사한 지 9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로써 말 그대로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늘 다른 사람의 연차만 신경 쓰다가 내 것이 얼마나 된지 알아차렸을 때 나는 무척 놀랐다.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의 엄청난 속도와 고요함이란.
'시간이 나를 치유해 준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 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얼마 전 박완서 님의 에세이에서 읽은 문장이다. 영원할 것 같은 슬픔도 시간이 흐르며 희석되는 것을 보며 시간의 힘을 신에 비유한 것인데, 나는 이 문장에 깊이 공감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미워했던 사람도 좋게 느꼈던 사건도 아쉽게 느꼈던 사건도 모두 시간이 흐르며 기억과 감정이 완만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내를 향한 사랑,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구부러지지 않고 가파르게 치솟아 있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나 역시도 시간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기에 고집부리지 않고, 또 다른 면에서 새로운 사랑과 열정을 느낄 수 있길 바라며 계속 감정의 업데이트를 시도하고 있다.
요즘 저속 노화라는 말이 제법 자주 보인다. 서점 한편을 빼곡히 차지한 동명의 제목이 달린 책들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이것이 한물 간 트렌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늙고 싶지 않은 것은 포기할 수 없는 꿈인듯하다.
이 세상에 시간을 멈출 방법은 없지만, 늦출 방법은 꽤 있나 보다. 저속 노화와 관련된 책에서는 식이요법과 운동 등 생활 습관을 주로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렇게 단순히 늦추는 것보다 아예 멈출 수 있는 데 더 관심이 크다. 예를 들면 SF 영화 같은 작품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면 기술처럼 몇 년 혹은 몇 백 년 동안 신체 변화를 멈출 수 있다면 미래로 향하는 시간 여행과 다름없지 않을까.
물론 동면 기술은 이론적으로만 가능성이 제기됐을 뿐, 실제로 구현 가능한지는 불분명하다. 어쩌면 긴 시간 깨지 않고 잠들게 만들며, 그와 동시에 세포를 복원하는 기술이 더 먼저 개발될지도 모른다.
어떤 기술이 먼저 상용화되건 말건 그런 기술이 나오기만 한다면 나는 누구보다 먼저 그 기술을 사용하고 싶다. 이것은 단순히 젊어지는 것, 혹은 오래 사는 것을 넘어, 신의 힘이라 일컬을 정도로 엄청난 '시간'에 대항해 싸워 이기는 인류의 첫 도약이라는 의미 부여를 할 수 있겠다. 그동안 나는 시간에게 지고만 살았는데, 이로써 처음으로 시간에 어퍼컷을 날리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꿈같은 미래가 올 것은 분명하다고 믿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올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어쩔 도리 없이 시간을 아껴 쓰고 유용하게 써야만 하는 시간의 졸개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내게도 시간에 반격할 최후의 보루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일생에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말 그대로 최후의 일격이다. 시간의 흐름을 저지하고 두 동강 내 끊어버리는 것. 그것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니 이걸 어찌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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