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나들이는 축구장이었다. 벚꽃이 한창이었다. 꽃구경을 핑계 삼아 아내와 함께 경기장을 찾았다. 봄비가 매섭게 내리는 통에 비옷을 껴입어야 했지만, 그 불편함마저도 괜스레 낭만처럼 느껴졌다. 비가 만든 풍경은 흐릿하게 반짝였고, 그 속에서 우리는 한 장의 기묘한 추억을 얻게 되었다.
경기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가 예매한 자리는 응원석 뒤쪽, 2층 지붕 밑이었다. 응원의 열기가 가장 뜨거운 중심에서 한발 비켜선 자리. 아내와 나는 열렬한 지지자라기보다는 조용한 방관자에 가까웠기에 그쯤을 택했다. 중앙을 피하는 건 응원의 부담을 피하는 일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비 오는 날엔 그 자리가 가장 상석이었다.
경기 시작 전, 간단한 다과와 음료를 손에 들고 자리를 찾았다. 전에도 방문해 본 곳이라 낯설지는 않았지만, 좌석 간 간격이 좁고 통로도 협소해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길은 늘 애를 먹는다. 홈구장보다 훨씬 저렴한 이유를, 나는 그제야 다시 실감했다.
킥오프까지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도, 벌써 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응원가를 부르고 있었다. 깃발이 펄럭이고, 푸른 유니폼들이 물결치듯 출렁이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었다. 그 속에서 아내와 나는 조용히 앉아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함께 목청을 높이고 싶었지만, 체력을 아껴두기로 했다. 본경기에 온 힘을 쏟아붓기 위해서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응원의 열기는 순식간에 고조됐다. 상대팀 선수에 대한 야유와 우리 선수에 대한 분노가 번갈아 터져 나왔다. 어떤 이들은 욕지거리까지 서슴지 않았고, 그러다도 그 선수가 한 번 잘하면 이내 격려와 찬사로 태세를 바꿨다. 감정의 급류는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다중 인격을 의심케 할 만큼, 사람들의 감정은 하나의 경기 안에서 수차례 바뀌고 다시 봉합되었다.
우리가 앉은 자리도 그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열기만큼은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고, 누군가는 진군의 북소리처럼 함성을 쏟아냈다. 나는 문득 그런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축구는 전쟁이고, 동시에 종교다. 승패의 유무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스스로를 소속시키고, 신념을 갖고, 울부짖는다. 그 열렬한 믿음 앞에서 나는 한낱 객이었고, 샌님 같다는 자의식에 고개가 숙여졌다.
경기는 치열했고, 관중의 감정은 더욱 치열했다. 나는 그날, 승패보다 더 깊은 것을 목격했다. 비 내리는 봄날의 경기장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를 믿고자 하는 의미를 목청껏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묘한 풍경의 가장자리에서 나는 그저 한 명의 조용한 관찰자로만 존재했다. 나는 오늘 양손에 두 가지 질문을 받아든 채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과연 이토록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
또한 나는 그 열정을 쏟을만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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