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사는 동안 나는 세 번 존재한다. 아침의 내가 한 번, 회사에서의 내가 또 한 번, 그리고 집에서의 내가 한 번. 세 번의 나는 서로 다르고, 그 다름을 나는 스스럼없이 받아들인다. 이 각각의 나는 저마다 다른 생각과 행동, 마음가짐을 갖는다. 이것은 어쩌면 다중인격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경계를 일부러 흐리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또렷하게 인식하고,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하도록 도와주는 쪽을 택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저녁의 내가 조금씩 작아졌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뚝 끊기듯 기운이 꺼졌다. 몸을 눕히면, 눈도 뜨기 힘들 만큼 고단해진다. 마음은 큰 파도 없이 고요하기만 한데, 기운이 없는 날이 늘었다. 무언가에 지친 것도 아니고, 감정이 소모된 것도 아님에도, 이상할 정도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하루 이틀 나와의 약속을 어기다 보니 집에서의 나는 점점 희미해졌다. 어느새 저녁의 나는 ‘하지 않는 나’로 굳어졌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난 2년간 조심스럽게 쌓아 올린 나의 작은 습관들과 삶의 구조가, 모래성처럼 서서히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습관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잃는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이쯤에서 멈춰 서서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의 본질은 체력이었다. 마음은 말짱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무기력이라는 파도는 쉬이 밀려든다. 아침 운동을 열심히 한 날은 오히려 밤에 더 피곤하다. 그 피로가 다음 날의 운동을 미루게 만들고, 또 그 미루어짐이 삶의 다른 부분까지 무너지게 한다. 하지만 그런 날일수록 더욱 확신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조금 피곤하고 몇 가지를 놓칠지라도, 언젠가 체력이 붙으면 더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사실을. 마치 미래를 위해 저축하듯, 지금의 나는 체력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 무기력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가장 단단한 해답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뒤늦게 알아차린 사실이 있다. 중요한 일은 먼저 해야 한다는 것. 저녁의 나는 늘 나의 개인 작업과 미래의 꿈을 맡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순서가 잘못된 일이었다. 누구나 퇴근 후엔 체력과 집중력이 바닥난다. 그런 상태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려니 매번 밀려났고, 결국 미뤄지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집에 돌아오면 가정에도 소홀할 수 없으니, 더욱 여유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중요한 일을 하기로 했다. 또는 점심시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미 조용한 카페를 몇 군데 눈여겨보았다. 일주일에 이틀쯤은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그 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올려놓기로 했다. 미래의 나에게 빛이 되는 현재를 만들기 위해, 오늘의 나는 조금씩 해답을 실천하는 중이다. 아직 완성된 건 없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삶은, 이런 작은 결심들로 천천히 다시 일어서게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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