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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브리 Aug 19. 2024

게임기 하나 못 사주는 부모님 -1

나의 전재산의 10배였던 닌텐도 DS

어렸을 적 나는 원하는 것이 정말 없는 편이었다. 스스로 몇십 번이나 속으로 고르고 또 골랐기 때문이다. 내가 내 입으로 ”갖고 싶다,“ 한 것은 꽤나 복잡한 선별 과정 후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지금도 일일이 다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간절했다. 사촌 언니가 갖고 있던 ‘분홍색 아기 보자기 세트,’ ’ 주방 놀이 세트,’ ‘어그 부츠,‘ ’ 나의 아메리칸 인형’까지. 보는 눈은 있었는지 하나 같이 우리 형편에는 무리인 것들이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자라면서 무언 갈 갖고 싶다고 보채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로는 안다 해도 마음 한편에는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었던 것 같다. 그중에 내가 제일 원하고 바랬던 것은 단연 닌텐도 DS였다. 내가 2 학년쯤 됐을 무렵이었던가, 친구들 모두 하나씩은 갖고 있던 게임기였다. 정말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 걸 알면서도 크리스마스 날이나 생일날이 되면, 혹시나 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의 꿈의 게임기, 닌텐도 DS!


하지만 기대하는 마음은 실망감만 안겨줄 뿐이었다. 결국 내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얼마 되진 않지만 여태껏 착실히 모은 돈을 가지고 Toys R Us라는 당시 유명했던 장난감 가게로 향했다. 아마 생일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묘하게 찝찝했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천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커다란 장난감 가게에서 그토록 원하던 게임기를 사러 가는 길이었지만, 눈치껏 알 수 있었다. 아마 내가 가진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을. 부모님께 “이 돈으로 충분할까,” 넌지시 물어봤지만, 게임기에 관련해서 잘 알고 계실리가 만무한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살 수 있을 것이라 하셨다.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희망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만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매장을 둘러보다 닌텐도 DS 케이스가 보였다. 게임기 본체가 아니라 케이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진 돈과 딱 맞아떨어지는 금액이었다. 불길한 기분이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케이스인 걸 뻔히 알면서도 “아, 이건가?” 하고 시치미를 떼며 엄마를 향해 돌아봤다. 나도 모르게 억지를 부리고 싶었던 것 같다. 밀려오는 실망감에 나 스스로를 속일 속셈이었다.


“어, 잘 찾았네. 좋겠다,” 하며 대답하시는 엄마를 보며 이게 케이스가 아니라 진짜 게임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 진짜 그런 걸 아닐까, 잠시나마 헛된 기대를 품어보았다.


나는 속상한 마음을 떨쳐버리려 애써 웃어 보이며, 자세히 보니 케이스였다고 곧바로 실토하였다. 그러자 부모님께서는 주변을 둘러보시다 유리 케이스 안에 놓여있는 진짜 게임기를 발견하셨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모은 용돈의 열 배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곧이어 엄마의 탄성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게임기 하나가 뭐가 이렇게 비싸?” 그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아, 끝났다. “ 게임기가 무슨 대수라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서러웠다. 엄마의 그 반응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예상하고 있았기에, 그 반응을 보는 순간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았기에, 그리고 언제 그 반응을 보일지 여태껏 긴장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웠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당연히 안될 걸 알면서. 이 돈을 가지고 여기까지 온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현실을 모른 척 외면해보려고 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멍청해 보였다. 나의 달콤한 꿈은 여기까지였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굴었다. 눈물이 나려는 것을 꾹 참고 바로 시선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했다. 당시 펫 머신이라는 미니 게임기가 있었는데, 내 용돈으로 살 수 있을 만큼 저렴했다.

당시 내가 샀던 미니 게임기와 비슷한 게임기.


나는 곧바로 미니 게임기를 집어 들고는 이걸로 대신하겠다며 상황을 무마해 버렸다. 어차피 닌텐도 DS를 사도 애완견 키우는 게임을 할 것이었다며, 이걸로 하는 게 더 합리적인 소비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나는 항상 그랬다. 부모님 먼저 안심시켜드리고 싶었다. 겨울에 너도나도 신는 어그 부츠가 정망 갖고 싶었지만 우리 집 형편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부모님께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나서서 괜찮다고, 다른 부츠를 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며 이 변명 저 변명을 댔다. 솔직히 어그 부츠는 지금도 너무 비싸다. 스스로나 부모님께 솔직하지 못했었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상황과 상관없이 부모님께 어린아이답게 투정이라도 부렸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 돌아보면 조금 아쉽다.


항상 괜찮은 나였었기 때문일까? 게임기를 사지 못했을 때에도 부모님은 언제나처럼 내가 조금은 서운할지언정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래, 아까 저거는 너무 터무니없이 비쌌어,”라고 말하시며 그걸로 하라 하셨다.


분명 얼굴은 웃고 있는데 나 스스로가 너무나 비참했다. 조금은 기대했는데, 사줄 수도 있을까, 아주 조금은 기대했는데.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는 스스로가 싫었다. 원망스러운 마음은 없었다. 그저 속이 타들어갔을 뿐. 나는 정말 괜찮았던 적이 있긴 했을까? 그때의 기억들이 아직까지 생생히 남아있는 걸 보면 잘 모르겠다.


그렇게 나의 손에는 닌텐도 대신 미니 게임기가 쥐어졌다. 억지로 신나 하며 집에 돌아가는 길, 어떻게든 정신승리를 하려 애썼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미니 게임기는 방구석 어딘가에 숨겨뒀다. 꼭 비밀인 것 마냥.


불행 중 다행인지, 이 날을 계기로 나는 닌텐도 DS를 포기하기로 마음먹고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더 이상의 쓸데없는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기적은 예기치 못한 순간 찾아왔다.


다음주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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