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맞은 엄마의 첫 생신
추운 겨울에 도착한 미국. 짐을 차차 다 풀어갈 때쯤 봄이 찾아왔다. 엄마의 생신이 가까워졌다. 그러나 워낙에 정신도 없고 자리를 못 잡아 엄마의 생신을 챙길 여력이 없었다. 당장 생활비가 급한 상황이었다. 엄마의 생신이 다가오며 나는 나의 핑크색 지갑에서 작고 소중한 5불을 꺼냈다. 내가 가진 전부였다. 미국에 간다고 하니 어떤 분이 과자 먹으라고 손에 쥐어주신, 엄마도 아빠도 모르는 돈이었다. 엄마의 생신 날 아침이었던 것 같다. 아빠에게 5불을 드리며 케이크를 사 와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해드리고 싶다고, 엄마한테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아빠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주었다. 엄마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케이크를 사러 가셨다. 신이 났다. 엄마가 깜짝 놀랄 것을 기대하며 아빠가 돌아오시기를 바랐다.
어린 마음에 한참을 기다리자 아빠가 들어오셨다. 손에 봉투를 들고는. 엄마가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생일 케이크를 사 왔다고 말했다. 아빠가 봉투에서 작은 조각 케이크를 꺼내셨다. 아주 조금 실망했다. 나는 동그랗고 커다란 케이크를 사고 싶었는데. 나에게는 5불이 엄청나게 큰돈이었음에도 돈이 부족했던 것 같아 마음이 살짝 상했다.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놀랐다. 엄마는 울고 계셨다.
기분이 이상했다. 엄마를 눈물짓게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엄마의 기분이 나빠서 우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는데, 괜히 마음이 짠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일곱 살 난 딸이 생일을 챙길 거라 생각지 못하셨을 것이다. 엄마의 생일 서프라이즈는 성공적이었다. 케이크는 내 기대보다 작았지만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에게서 회자되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엄마는 그때의 감동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신다. 지금은 아무리 맛있고 멋진 케이크를 사들고 가도 그때의 감동을 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도 더 속이 깊은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