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더 이해하게 됐다
쌀이 똑 떨어졌지만 쌀을 살 돈이 없었던 우리 형편은 나를 독립적으로 키워냈다. 내 아이가 나의 인생을 겪길 바라지는 않지만, 나는 지금 이 모습의 나를 사랑한다. 그래서 괜찮다. 아쉬운 점은 있어도 그 누구도 원망스럽지 않다.
지난주 1편에서 이어집니다.
그때의 내가 참 안쓰럽기도 장하기도 하지만 나의 부모님 또한 그렇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과거의 부모님과 점점 가까운 나이가 되어간다. 미국에 혼자 와 대학생활을 마치고 보니 그때의 부모님이 마음에 걸린다.
언어도 어려운 타지에서, 차별을 받으며 학생 신분으로 아이 둘을 키워내야 했던 젊은 부부. 매일 공부하며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던 아빠와 육아하랴 살림하랴 본인 생활도 없이 살았을 엄마.
내가 딸이어서인지, 아니면 성격 탓인지 모르겠지만. 엄마를 생각하면 유난히 더 마음이 쓰인다. 엄마는 나와 참 반대되는 사람이다. 투철한 희생정신과 완벽주의자적인 도덕을 겸비한 엄마. 아빠의 학업을 위해 기꺼이 따라 나와 혼자 외로움, 혹은 무력감을 감내하셨을 것이다. 아빠는 어쨌든 원하던 공부를 하며 고되지만 일을 하고 지냈고, 나는 곧바로 학교를 다니고 저녁까지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놀았다. 그러나 엄마는 출산 후 온전히 회복도 하지 못한 채 집에서 혼자 돌도 안된 아기와 매일 남겨지셨다. 타지에 홀로 남겨진 엄마의 삶은, 좁은 기숙사로 한정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본인을 챙길 여력도 없으셨다. 어린 딸과 아들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티도 내지 못하고 쌀이 동나 겪었을 당황스러움을 삼키는 것 또한 엄마의 몫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로 돌아가 엄마의 손이라도 잡아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더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았으면 좋으련만.
만약 엄마가 이 글을 읽는다면, ‘뭘 그렇게까지 얘기하냐,‘ 하며 이미 지난 일, 아무렇지도 않아 이젠 낯 뜨거워하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나간 과거를 웃으며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과거의 울던 모습까지도 웃어넘기고 싶지는 않다. 알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