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인생, 생애 첫 집을 장만하다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내 나름 어려웠던 이야기를 쓰며 어릴 적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함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가득 채워진 시절을 추억하기 위함이다. 내 궁핍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복에 겨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
나는 어릴 적, 그 나이 때의 평범한 어린이와 다름없이 인형 놀이를 즐겨했다. 사실 지금도 재밌을 것 같다. 미국에 살 때 우리 집에는 세탁기가 없어 공용 세탁실을 사용했는데, 지하실에 위치한 세탁실에서는 항상 콤콤한 냄새가 났다. 세제와 섞인 그 냄새가 나는 왜인지 싫지 않아 엄마를 곧잘 따라나섰다.
세탁실은 어둡고 추웠지만 소소한 기쁨의 시작이 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바로 세탁실 한쪽 벽면에 놓인 기부함이었다. “기부함 “이라고 하기도 뭐 한 것이 잡다한 물건들이 벽면에 기대어 있을 뿐이었다. 세탁실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나눔 할 때 무언의 약속처럼 쓰는 공간이었다.
장난감과 옷가지가 빈번하게 있었기에 엄마와 세탁실을 내려가면 오늘은 무엇이 있을까,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집 문을 열기 전, 엄마가 눈을 감아보라 하셨다. 무슨 일일지 벌써 신이 났다. 눈을 꼭 감자 엄마가 문을 여셨다. 문을 염과 동시에 살며시 눈을 떴다. 그러자 내 눈앞에 커다란 인형의 집이 보였다. 함성이 절로 나왔다. 설마 그랬겠냐마는 꼭 나만했던 것 같다. 내가 돌아오기 전 깨끗하게 닦아놓으신 엄마께 감사인사를 전하며 부리나케 손을 씻은 후 누구보다 빠르게 방 안에서 인형들을 가져왔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망가진 곳 하나 없이 완벽한 인형의 집이었다. 내 기억에 색도 파스텔 톤으로 촌스럽지 않고 예뻤다. 3층 집이었나, 방도 아주 많았다. 전에 주워 온 작은 인형의 집에서 가구와 소품들을 다 옮겨왔다. 누구도 부럽지 않은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멋진 인형의 집이었다. 친구들이 놀러 와서 주워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부러워하며 아쉬워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미국을 떠나기 전까지 그 인형의 집을 가지고 정말 잘 놀았다. 놓고 오기 싫을 만큼.
그러나 그때 엄마께서 말씀하시길, 우리가 누군가의 나눔으로 얻은 것인 만큼 다른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좋은 마음으로 두고 오자 하셨다. 꽁으로 얻어 내가 누린 것을 생각하니 바로 납득이 되었다.
정말 진심으로 고백하건대, 내 어린 시절은 결핍이 있어 더 행복했던 것 같다. 결핍이 있어 더 감사했고, 더 낭만적이었다. 덕분에 얻은 것도, 배운 것도 더 많았다.
그때의 추억에 젖어 나는 아직도, 가끔씩 인형의 집을 하나 장만해 볼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