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고 앓고 앓았다
과거에는 죽을병이었지만 현대의학의 힘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병이 많다. 그런 감기 같은 병에 나는 크게 앓았었다. 사실 그때의 기억은 흐릿한데, 열이 팔팔 끓어 기억이 끊겼다 돌아왔다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의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미국에서 학교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어느 날부터 열이 심하게 나기 시작했다. 몸은 팔팔 끓는데 왜인지 너무 추웠다. 몸이 으슬으슬거렸다.
이 전에 크게 아팠던 적이 한번 있었는데 서너 살 즈음에 밤새 열이 나다가 응급실에 실려갔던 적이 있었다. 이유는 에너지 고갈. 정신력으로 버티며 에너지를 한 톨도 남김없이 다 써버려 아픈 거라고 했다. 그 뒤로 나는 스스로의 에너지양을 점검하며 지냈다.
이번에도 그런 것일까 싶었다. 아무래도 무리했나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때와는 달랐다. 열이 나도 너무 나니 온몸이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버틴다고 버티는데 물 한 모금 넘기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미국의 의료 비용이 천문학적인 것을 생각하면, 당시 유학생 신분의 부모님은 나를 쉽게 병원에 데려가실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밤에 너무 추워 덜덜 떨다가 엄마 몰래 이불을 뒤집어썼는데, 금세 일어나신 엄마가 깜짝 놀라시며 이불을 싹 다 빼앗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발가벗긴 뒤 얼음물을 가져와 수건을 담갔다가 나의 몸을 닦기 시작하셨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그만해 달라고 빌었던 것 같다. 몸부림칠 힘이 없어 금방 자포자기했지만. 돌아보면 부모님도 고생이 말이 아니셨을 것이다. 몸은 아팠지만 나를 돌봐주는 그 손길이 좋았다.
내가 며칠 동안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자 어느 날 밤에는 엄마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오셨다. 그때 상황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아주 귀한 것이었다.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아픈 와중에도 신이 난 나는 ‘그래도 아프니 아이스크림을 먹는구나’ 하고는 철없이 좋아했다. 그냥 감기였으면 아이스크림은 꿈도 못 꾸는 건데 열이 나니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잔뜩 기대를 한 나에게 엄마는 한 숟갈 떠먹여 주셨는데, 이게 웬걸. 너무 썼다. 너무 써서 삼키지도 못하고 뱉어버렸다.
당황한 엄마를 보며 너무 쓰다고 말했더니 엄마가 한 입 드셔보았다. 아이스크림은 아무 문제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먹어보겠다 우겼다. 다시 한번 먹어보았다. 또 썼다. 너무 억울했다. 나중에 다 나았을 때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이 아이스크림이 남아있냐는 것이었는데 가족들이 다 먹어버렸다는 것에 엄청나게 절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 어린이는 자라 냉동고에 아이스크림을 가득 채워 넣는 어른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아팠던 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숫자를 세었다. 상상하기가 특기인 나였지만 그 이상을 상상할 힘이 없었다. 아픈 날 수도 꼬박꼬박 셌다. 그렇게 일주일이 채 되기 전,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는 결국 날 의사 선생님께 데려가셨다. 사실 나는 아무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 처방받은 약을 챙겨 먹었던 것은 기억이 난다. 여태 감기약이 안 들었던 것은 항생제가 필요한 병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신기할 만큼 하루이틀 만에 씻은 듯이 나았다. 병명은 뇌수막염. 요즘 시대에는 아무것도 아닌 병을 나는 그렇게 앓았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조금만 늦었어도 큰 일 날 뻔했다고, 눈이나 귀가 멀 수도 있었다나. 이 시대에 누가 이걸로 그렇게 아프냐 하셨다 한다.
저요, 제가 그렇게 아팠어요.
다행히 그 뒤로는 크게 아프지도 않고 무탈히 잘 지낸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조금 더 늦지 않음에 얼마나 감사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