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까맣게 채워진 나의 공책
감성 가득한 사춘기 시절에 쓴 글 중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종이를 접느라 빨갛게 물든 손끝처럼 내 마음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인생이 시시할 틈 없이 파란만장한 사춘기 시절을 보냈던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공책을 혹사시켜 가며 그 시간을 버텼다. 낯부끄러운 이야기가 많아 몇 가지만 빼두고 다 태워버렸지만, 몇 글귀는 재가 되어서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의 내 마음을 아주 잘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그때는 참 이상하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그렇게 글을 써댔다. 답답했나 보다. 주변에 털어놓을 곳 하나 없이 외로워서 그랬나 보다.
원래부터 나는 엄마의 가르침에 따라 한글을 제대로 떼기도 전부터 그림일기로 시작하여 일기를 꽤 오랫동안 꾸준히 써왔다. 그래서인지 나의 솔직한 심정을 글로 담아내는데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때의 글은 참 거침없고,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그저 날 것 그대로의 글이다. 그때의 나의 바람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평범하다. 지금의 나에게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또 나를 누구보다도 부러워할 인물. 그때의 나는 매일 서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글을 쓰는 방식을 조금은 바꾸어보고자 한다. 순간의 피어오르는 감정을 잘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큰 감정의 동요가 없더라도, 평범하게 지나가는 순간까지 글로 기록해보고 싶다.
너무 아프고 처절했던 시간이나 가슴 두근거리게 행복했던 시간, 그리고 익숙한 일상 속에 녹아든 시간까지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아까운 내 인생의 일부분이니까.
문득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이야기나, 별일 없는 나의 일상, 철학적인 고민이나, 감성적인 시 한 편, 감정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까지, 그저 나, 일 뿐인 모습을 써 내려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