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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찬우 Jan 15. 2020

동해(East Sea)가 아직도 동해가 아닌 이유

그러니까 이승만이 모든 걸 말아먹었다는 이야기다.  

다소 기분이 나빠지실지도 모르겠지만,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자. 사실 동해/일본해를 병행표기해야 한다는 국제적인 기준이나 조약에 의한 항목은 존재하지도 않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일본해” 단독 표기를 하고 있다. 

해외 여러 국가들이 세계 지도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경우를 접할 때마다 국내에선 개념 없는, 대한민국을 무시한 처사라며 욕을 쳐먹고 있지만 뭐, 미국의회나 일부 해외국가들의 정부기관/단체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해서 동해/일본해를 병행표기해야 한다는 국제적인 강제성은 전혀 없다고 보시면 된다. 기분 나쁘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물론 단일 표기로 동해라고 하거나 아니면 양보해서 병행표기가 되면 좋겠지.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가 않다. 

당장에 이 해역에서 일본과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러시아조차 이 해역을 "일본해"라고 한다. 최근 외교적으로 일본과 상당한 마찰을 빚고 있는 중국조차 이 해역을 "일본해"라고 표기하고 있다. 현실이 그렇다. 현재 동해를 동해로 표기하고 있는 것은 공식적으로는 대한민국과 북한  밖에 없다. 이게 작금의 우리 처한 상황이자 우리의 국제적 수준이라고 보시면 된다. 

물론,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2010년에 "대부분의 국가들은 "일본해"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한국과 북한에선 "동해"라고 부른다."는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고,  영국의 브리태니커, 프랑스의 Le Petit Larousse Illustre 등에서도 비슷하게 소개를 하고는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사견”에 불과한 것이고. 

이 해역의 표기가 일본해가 된 발단은 1921년, 국제수로기구(International Hydrograph Organization, IHO)의 전신에 해당하는 국제수로국(International Hydrographic Bureau, IHB)이 설립되면서부터 시작된다. 

IHB는 1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세계질서에 따라 각국의 항해 안전을 위한 해도에 관한 부호 및 약자의 국제적인 통일, 회원국에 의한 공동 측량 및 조사, 해양 관측 기술의 개발을 위해 설립된 기구이다. 


IHB는 1967년, 모나코에서 열린 제 9회 국제수로회의에서 새로운 협악에 의거하여 1970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개칭하였으며, 5년에 한 번씩 모나코 공국의 몬테카를로에서 총회가 개최된다. 이 IHO에서 발간하고 있는 것이 바로 “Limits of Oceans and Seas(해양과 바다의 경계)”라는 해도집인데, 1929년에 1차본이 발간되었다.  

1921년 IHB 설립 이후부터 세계 각국의 인근 해역 명칭을 통일하기 위한 심사가 이루어졌는데, 1929년에 발간된 1차본은 1차 세계 대전 이후의 국제정세를 잘 반영하고 있는데, 당연히 한반도 일대의 해역은 모두 일본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상태로 발간되었다.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것이 “국제적인 스탠다드”로 인정받게 된 것은 그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후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인 1935년에 발간된 2차본에서도 역시 “일본해”로 표기가 이루어진다. 

대한민국은 1957년에 IHB에 가입한다.(참고로 북한은 IHO로 개칭된 이후인 1989년에 가입하였고, 현재 IHO 산하에는 76개 회원국이 가입해있는 상태이다.) 

일본해를 동해로 표기하는 문제가 대두된 것은 한국동란이 한창이던 1952년으로 거슬러올라가게 되는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이른바 이승만 라인으로 알려져 있는, "대한민국 인접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의 선언"을 1952년 1월 18일에 발표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승만 라인은 1951년 9월 8일에 미일평화조약(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조인되고 1952년부터 발효되면서 일본 패망 후 GHQ가 설정한 일본어업 조업구역(일명 맥아더 라인이라고 한다)이 무효화되면서 대한민국의 어업 조업구역 확보 및 방위수역을 확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인데, 독도와 대마도의 영유권이 대한민국에 있음을 공표하고, 조업 가능 수역의 범위를 한반도 주변 50-100해리로 둔 것이 국제적인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문제가 된 이유는 이승만 라인 선언이 IHB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사국들의 협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일방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하여 설정된 이승만 라인은, 이후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영토 문제 뿐만 아니라 양국간의 해역 및 어업 영역의 설정에 대해서도 한동안 평행선을 달리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 이유는 이승만 라인 공표 이후 1953년에 발간된 IHB의 “해양과 바다의 경계 제 3차본”에서 이 해역을 “일본해”라고 표기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대마도를 비롯한 후쿠오카현, 야마구치현, 시마네현, 돗토리현, 후쿠이현 등의 어업조합은 동해와 대한해협 인근에서 활발한 어업활동을 펼쳤는데, 이승만 라인 선포 이후 이들 일본 어선들의 조업에 대한 한국 해양경찰의 강경진압이 국제적인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특히, 1953년 IHB에 의해 이 해역의 명칭이 “일본해(Sea of Japan)”로 명기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반발이 특히 심했고, GHQ를 통해 일본을 통제하고 동시에 한반도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던 트루먼 정권과, 그 뒤를 이은 아이젠하워 정권은 이 문제에 대해 한일 양국을 테이블 위에 놓고 상당한 골머리를 앓아야했다. 

당시 한국 해양 경찰의 일본 어선들에 대한 진압은 상당히 강도가 셌는데, 1952년부터 1965년까지 이승만 라인을 넘어서 조업을 하다가 나포된 일본 선박의 총 수가 328척이고, 일본인 선원 3,929명이 억류되었으며, 그 중에 44명이 사살당했다. 


또한, 앞서 설명한 대로 이승만 라인 선언 당시 일본은 아직 미군정에 의한 위임통치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고, 한국 해양경찰의 일본 어선에 대한 진압에 대처할 수 있는 해상전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이기도 했다. 

당시 일본은 구 일본 해군의 잔존세력들로 구성된 해상보안청과 해상경비대가 있었지만 인원 및 장비 면에서 일본 연안 지역 외에서의 활동을 전개하기에는 열악한 상황이었으며, 1954년에 해상자위대가 설립된 이후에도 1960년에 미국과 일본이 새로이 군사동맹을 체결하기 이전까지는 그 활동도 전력도 미비했다. 


또한 1954년 자위대 창설 당시, 1947년에 개정된 일본의 헌법 9조에 의거하여 “ 국가간의 교전권(交戰權) 포기 및 전수방어 원칙”을 수행한다는 자위대의 방침에 반대하는 구 일본군 출신 대원들과 우익 정치인들의 시위가 연이어 벌어지기도 했기에, 일본은 이승만 라인에 대해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제3공화국과 일본이 체결한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이 성립되기까지, 일본은 소소한 경제보복(당시 한국어선 및 어업에 주로 사용된 선박용 엔진 및 그물망 등이 죄다 일제였고, 일본은 한동안 이들 제품의 한국 수출을 금지하였다)을 통하여 이에 대처했다.  

뒷목을 잡게 만드는 건, 이승만 라인을 선포한 대한민국이 1957년 국제수로국에 가입을 하였지만, 동해에 대한 명칭을 바꾸기 위한 외교적인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시기는 이승만정권 중 가장 파란만장했던 취임 3기(1956~1960)의 시기였던 만큼 독도와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 행사 및 해역의 명칭 개정에 힘을 기울일 수 있던 시기가 아니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이승만은 라오스와 인도네시아의 극우세력을 지지하며 이들 국가에서 벌어진 내전에 파병을 계획하거나, 베트남을 순방하거나 3.15 부정선거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는 등의 시간을 보냈으니, 사실 맘만 먹으면 국제수로국에 이 문제에 대해서 항의를 하거나 혹은 로비를 할 수 있었을거라고 본다. 

결국에 이 문제에 대해서 한일 양국이 처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게 된게 바로 1965년의 한일기본협정과 제 1차 한일어업협정이었는데, 당장에 일본으로부터 “배상금” 명목의 원조와 차관을 받는데 급급했던 박정희 정권은 독도에 대해서는 “서로가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되, 이를 공론화시키지 말고 협상 테이블 상에서만 서로 인지를 하자”고 합의하고, 대신 “해역에 대해서는 그냥 이대로 가자”라는 협의를 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1974년. 새로이 출범한 IHO에서 "만약에 특정 해역에 대해서 인접국가들 간에 명칭 합의가 없을 경우에 당사국 모두의 명칭을 병행 표기하라"고 권고를 하게 되는데, 당시 일본 외교부는 “East Sea는 공해 상의 명칭일 뿐이며, 특정 해역에 대해 인접 국가들 간의 명칭 합의라고 하는 것은 만이나 해협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고 공해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논리를 펼치고, 유신 정권 치하의 외교부는 IHO의 이 권고사항 및 일본 외교부의 주장을 가볍게 무시한다. 


“한일기본협정” 및 “1차 한일어업협정”에서 이미 “이 문제에 대해 한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다”라고 이미 상호 합의를 본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1986년, IHO에서 1953년에 출간된 “해양과 바다의 경계” 해도집은 너무 낡았으니 새로이 개정안을 발간하자면서, 아무래도 인접 국가간 명칭 합의가 없는 해역에 대해서는 역시 병행 표기를 하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에서 개정안을 내놓았는데, 이미 IHO에서도 막강한 외교력을 자랑하던 일본을 포함한 상임위원회 국가들이  개정안에 반대하면서 여전히 동해에 대한 국제기구들의 “공식적”인 명칭은 “Sea of Japan”으로 남아있는게 현실이다.  

참고로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일본해 대신 동해로 표기하는 것을 주장하게 된 건 1992년에 개최된 제 6차 유엔 지명 표준화 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he Standardization of Geographical Names, UNCSGN)에서 김영삼 정권의 외교부가 언급한 것이 최초이다. 물론, IHO의 해도집에 근거하여 UNCSGN은 이를 가볍게 무시했다. 


이후 1998년, 김대중 정권 당시 남북이 공동으로 일본에 “동해 표기를 병행할 것”을 제시했지만 일본이 받아드리지 않았고, 2002년의 IHO 총회에서도, 그리고 2004년의 UNCSGN에서도 동해 병행 표기를 주장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IHO의 다음 총회는 2020년, 그러니까 올해 개최될 예정이다. 

지난 2017년 4월 28일, 모나코 총회 마지막 날에 동해 표기를 포함한 국제표준 해도집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개정 문제를 비공식협의체에서 3년간 논의하기로 했다. 


문제는, IHO에서 해역의 명칭을 정하는 기준은 당사국의 역사적 자료나 지정학적 위치에 기반하지 않고, 타국의 역사적 사료들에 나오는 명칭을 근거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주로 16세기에서 19세기 사이의 것을 근거로 삼는다. 

한반도가 을사늑약과 한일병탄에 의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이전의 사료들이라는 점과, 한국과 일본의 자료가 아닌, 제3국들의 사료를 통해 확인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객관적”인 듯 하지만, 사실 이 부분은 한국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타국의 사료들에서 "동해"가 언급된 수는 762건인데 비해, "일본해"라는 명칭은 무려 3530건이나 되기 때문이다. 물론, 19세기의 경우 일본이 조선보다 먼저 개항을 하고 교류를 먼저 했기 때문이기에 일본해라는 명칭이 더 많이 등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현실이 이렇다. 

전자해도가 널리 쓰이면서 S-23은 사실상 사문화한 표준이다. 다른 회원국은 개정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가이드라인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한일 양국은 5년마다 동해 표기를 놓고 외교전을 벌여왔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이 문제에 대해 “자국의 사료들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고, 이후 이명박 정권 말기에 한 회원국이라도 S-23 관련 안건을 제시하면 이를 논의한다는 문구를 총회 결정문에 추가해 논의의 불씨를 살렸고 현 정권 초기에 우리 외교부는 '동해 표기는 언급하지 않고 64년간 현실과 괴리가 커진 S-23의 개정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개정 노력이 중단되면 S-23은 사실상 폐기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로 회원국들을 설득했다.

2017년 총회 당시 일본측은 S-23이 반세기 넘게 방치됐던 만큼 개정 논의를 거부하기에는 명분이 없어 협의체 구성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체에는 IHO 사무국이 참여하지만 이슈의 특성상 한국, 일본 외에 얼마나 많은 회원국이 참여할지는 불투명하다. 북한과 러시아 정도가 참여 가능성이 있는 회원국들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이나 유럽 각국은 S-23의 개정에 그리 긍정적인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앞서 언급한 대로, IHO의 다음 총회는 2020년, 즉 올해 4월에 개최될 예정이고, 여기서 협의한 내용을 반영한 것이 새로운 해도집에 실리게 되며, 향후 많은 국제기구들과 국가들이 동해의 표기를 “동해(East Sea)”로 할 지, 아니면 현재와 마찬가지로 “일본해(Sea of Japan)”이 될지, 혹은 병행 표기를 할 지가 결정된다는 이야기인데, 일본은 갈수록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어 이를 받아드리지 않을 것이고, 우리나라는 4월 15일에 총선이 예정되어 있어 정부와 여당이 이 문제에 얼마나 신경을 쓸 지 미지수다. 


뭐 그렇다고. 후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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