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시골 사는 우리 엄마가 우리 이모들이
항상 집 어딘가에서는 무엇인가가 익어가는 꼬순내가 났고 좁다란 집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다른 집 살림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놈의 집 아들 딸 손자 소식에 훤한 이들이
부끄러워했다.
너무 함부로 남의 이야기를 말한다고
다들 너무 쉽게 말을 옮긴다고
억척스럽고 목소리 큰 우리 엄마와 이모들
휴게소에서 물 한 병 사 먹는 것도 돈 아까워하면서 친한 언니 딸 결혼식엔 큰 돈을 턱턱 내는
하필 서울이 아닌 지방에 살아서
명절 때면 갈 생각에 한숨이 먼저 나와서
본가가 서울인 친구들이 많이도 부러웠다.
하지만 집에서 다녀서 월세 안 든다며 부러워했던 친구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
한 여름 평상 위에서 맡는 모기향 냄새를
냇가에서 막 건져 올린 다슬기의 물비린내를
발로 비벼 밤을 꺼낼 때면 운동화 사이로 느껴지는 야릿한 밤송이의 감각을
귀뚜라미가 울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서늘한 가을바람을
컴컴한 겨울밤 가로등 불빛조차 숨을 죽인 완벽한 고요를
이런 것들이 지금의 나를
나의 감각을, 나의 시선을, 나의 미감을 만들었음을
이제는 안다.
'아스팔트를 밟고 자란 아이는 시인이 될 수 없다'
고 김용택 시인이 말했던가
다행히 흙밭에서 나고 자라서
우리 엄마나 이모들처럼
남들에게 조금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진 본투비 촌사람이 되었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