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너비 1미터의 피아노를 메고 떠나자.

by 위키별출신

“그러게. 나도 유럽에 가고 싶어.”


남자는 고개를 조금 수그렸고, 이 쪽을 보지 않았다. 잠깐의 틈이 벌어진 다음, 그는 퉁그러지듯이 말을 보탰다.


“그런데 너는 왜 못 가고 있는 거야?”


“나? 난 말이지. 몸에 문제가 있어.”


“비행기를 못 타는 거야?”


“그건 아니고. 예전에 조금 먼 곳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 귀에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었어. 거의 비상사태였고, 내린 다음에도 한동안 귀가 들리지 않았어. 승무원들이 날 도와준 덕에 간신히 공항에 도착했지만 그때의 공포는 정말. 그리고 나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내 귀가 다른 사람보다 작고, 비염이나 중이염력 등 여러 가지 문제때문에 비행기에 안 타는 게 좋겠다는 진단을 했어.”


“그래? 그것 참 안 됐네.”


“응. 난 그 진단을 믿지 못해서 이후 해외여행을 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썼지만, 일정 시간 이상의 비행은 무리야. 그래서 미국이나 캐나다 처럼 14시간씩 비행하는 곳도 갈 수 없고, 유럽도 9시간인가, 그 이상 걸리니까 여행하지 못했어. 가고는 싶은데.”




나는 잠수 이별자와 대화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는 그때도 진실하지 못했다. 내가 여러 모로 이야기를 풀어놓아도, 본인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았다. 그게 그냥 성격인 줄만 알았는데.

위에 적었듯 나는 오랜 시간의 비행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저가 항공편 사이트들에는 경유가 많았다. 3시간 비행 후 공항에서 대기, 다시 4시간 비행 후 공항에서 대기, 다시 다른 항공편으로 갈아타서 4시간 비행이라는 식으로. 연속 비행이 불가능한 내게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가서 얼마나 있을까, 뭘 할까.


얼마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뭘 할지에 대해서는 계획이 있었다.


스무 번이 넘는 해외여행은 짧을 때도 있었고 길 때도 있었다. 그때 항상 아쉬웠던 게 내 손에 악기가 없다는 거였다. 비록 나는 프로 뮤지션은 아니지만 아마추어로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버스커에 선발되어서 1년 간 지정 장소에서 버스킹을 했으며, 지하철 무대에도 섰고, 각종 행사에서도 페이를 받고 가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자작곡은 아니고 카피곡이었지만.


이 밴드 저 밴드 바꿔가며 활동한 게 오 년이 넘었고, 거리에서의 공연 경험도 없는 게 아니다. 물론 한국 거리에서의 공연 경험이다. 외국에서는 통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라고는 생각했지만. 이왕 가는 거 모험을 해 보자고 생각했다.


내게는 다양한 사이즈와 기능의 피아노가 있었다. 작곡을 위한 마스터키보드와 연주를 위한 키보드, 버스킹 할 때 주로 사용하는 키보드 등이었다. 야마하 61건반을 선택했다. AWM 샘플링으로 깔끔한 피아노 음색이 매력적인 데다 자체 스피커가 달려 있고 배터리로 구동하기에 버스킹에 이 만한 피아노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지금 가져가라면 가벼운 코르그 마스터 키보드를 가져가서 노트북에 물려서 사용할 것이다. 야마하 61건반은 부피도 큰 데다 무게도 4.5kg이라 유럽에서 끌고 다니며 애를 먹었다. 이게 제일 무게가 적고 간편한 데다 악기의 배리에이션도 좋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어쩌면 떠나서 안 돌아올 지도 모르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짐을 쌌다. 잠수 이별로 차인 후유증일까, 지금도 의아한데 도대체 뭘 구겨넣었는지 내 짐은 캐리어 두 개에 피아노 하나라는 방대한 양이었다. 그걸 끌고 공항으로, 그리고 두 번의 경유 비행기로 갈아탔던 걸 생각하면…(두통)


아무튼 그리하여, 나는 서울의 좁은 내 방에서 술에 취해 허우적거리던 며칠 뒤, 동유럽의 초입인 조지아의 트빌리시 공항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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