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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Aug 17. 2019

책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전장 위 열아홉의 성장.

'포탄은 피했어도 정서적으로는 파멸한 세대에 대한 보고'.





'포탄은 피했어도
정서적으로는 파멸한 세대에 대한 보고'




1차 세계대전에 학도지원병으로 참전한 파울 보이머의 시선으로 담은 전쟁, 전우, 세계 그리고 삶. 고작 열아홉 살, 아직은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소년들. 어른에게 떠밀려 온 전장에서, 어리다고도 젊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의 아이들은 그들에게 없는, 아직 가져보지 못한 것들을 잃어간다. 그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동시에 '행방불명' 상태에 있다. 비정한 전선에서 잃어가는 감정과 흔들리는 자아는 그들의 존재를 흐릿하게 만든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앞에 나서서 싸워야 하는지 가치정립도 제대로 되지 않은 나이다. '이 모든 것이 평화를 위한 길이라는데 왜 사람이 죽어야 하지?' 자문할 뿐이다. 돌아오는 답은 없다. 다만 춥고 배고프고 아프고, 죽어갈 땐 '엄마'가 보고 싶을 뿐이다. 그런 환경에서 파울은, 젊은 그들이 세상에서 맡은 최초의 직무가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는 사실에 절망과 허무를 느낀다. 어린 그들을 키우는 것은 따뜻한 고향집이 아닌 전장의 비정함이었다.



파울은 전장에서 1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보름 남짓의 휴가를 받는다. 집에 가서 군복을 벗고 참전하기 전에 입던 평상복으로 갈아입는데, 옷은 너무 짧고 꽉 조인다. 파울은 전장에서 포화를 뒤집어 쓰면서 커버렸다.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이 그의 뼈 마디마디에 새겨진 것이다. 씁쓸함에 젖은 채, 파울은 친구의 어머니에게 친구의 전사를 전하러 간다. 슬픔에 잠긴 친구의 어머니는 파울 앞에서 흐느끼며 묻는다. '어째서 내 아들이 죽고 너는 살았을까'. 파울은 할말이 없다. 다만 친구는 즉사로 편히 갔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설 뿐이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개선문> 등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에서 전쟁으로 파괴된 세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말대로 그의 작품들은 '고발이나 고백이 아니라, 포탄은 피했어도 정서적으로는 파멸한 세대에 대한 보고'의 역할을 수행한다. 매우 담담하게. 그런 측면에서 그의 작품들은 '세대 살해'를 직설하는 2008년의 미드 <Generation Kill>과도 맞닿아 있다. 전쟁이 이성과 감성을 파헤쳐 헤집어놓은 세대들. 수십 년의 시간에 걸쳐 우리 인간은 여전히 같은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완전한 치유는 없고 새로운 상처들만 생겨나고 있다.








                                                  


우리는 투덜거리기도 하고 기분 좋게 떠들기도 하면서 출발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전선 지역에 이르러서는 인간 백정이 되어 버렸다.

(51쪽)



알베르트는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힌다. 「전쟁이 우리 모두의 희망을 앗아 가버렸어.」

사실 그의 말이 옳다. 우리는 이제 더는 청년이 아니다. 우리에겐 세상을 상대로 싸울 의지가 없어졌다. 우리는 도피자들이다.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의 삶으로부터 도피하고 있다.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우리는 세상과 현 존재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에 대고 총을 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으로 터진 유탄은 바로 우리의 심장에 명중했다. 우리는 활동, 노력 및 진보라는 것으로부터 차단된 채로 살았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것의 실체를 믿지 않는다.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오직 전쟁밖에 없는 것이다.

(75-76쪽)



오늘날 우리는 여행객처럼 청춘의 풍경 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실들에 의해 불타 버린 상태에 있다. 우리는 장사꾼처럼 차이점들을 알고 있고, 도살자처럼 필연성을 알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런 근심 없이 지낼 수 없는데도, 끔찍할 정도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고 있다. 우리가 존재하고는 있지만 과연 살고 있는 걸까?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버림받은 상태에 있고, 나이 든 사람들처럼 노련하다. 우리는 거칠고 슬픔에 잠겨 있으며 피상적이다. 나는 우리가 행방불명되었다고 생각한다.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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