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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Oct 31. 2019

2만 원짜리 운동화의 무게

나는 발이 무거워서 울고 싶었다






결핍의 기억은 충만의 기억보다 선명하다. 기쁨보다 슬픔이, 행복보다 우울이, 평안보다 분노가 더 강렬한 감정으로 남곤 하는 것처럼, 어린 시절의 결핍은 창피와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한데 뭉친 슬픔이 되어 내 살덩이에 크게 잇자국을 냈다. 그리하여 가난의 기억으로 점철되었던 시절의 내 살덩이는 늘 물러 있었고 늘 덧났으며 늘 붉은 채였다. 어른들의 근심으로 가득 찬 세계에 너무 일찍 던져졌던 웃자란 마음은 결핍의 틈바구니에서 우울을 낚았고 애수를 주워 들었다. 달리 둘 곳 없는 그 잘은 마음들을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마음이 섧어질 때면 고사리손을 깊이 넣어 만지작대곤 했다.



그 시절의 나에겐 '내 것', '내 물건'이라는 소유의 정의가 흐릿했다. 대중없이 얻어 입은 옷과 얻어 신은 신발, 얻어 멘 가방을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동네 언니들과 또래를 거쳐, 어떤 옷은 두 명의 사람을 거쳐 내게 왔고, 어떤 신발은 누가 샀지만 신지 않아 내게로 왔다. 그야말로 대중없었다. 나는 붉은색 티셔츠에 초록색 바지, 검은색 티셔츠에 주황색 바지를 입었다. 사춘기의 취향은 고려하지 않은, 신발 본래의 기능에만 충실한 희고 큰 운동화를 신었다.



유명 가수가 광고하는 세련된 상표의 교복을 입었지만 어깨와 허리와 품이 헐거웠다. 그건 갖가지 기능성 디자인이 추가된 근래의 것과는 거리가 먼 푸대자루에 가까웠다. 3년을 꼬박 채워 입고 졸업한 누군가의 교복이기 때문이었다. 체육시간이 되어 교복을 체육복으로 갈아입을 때면 친구들끼리 교복의 상표를 보이며 자랑하고는 했지만 나는 거기에 낄 수 없었다. 같은 상표였지만 이미 3년이 지나 상표의 디자인이 바뀐지 한참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름이면 더워서, 겨울이면 춥다는 이유로 혼자 서둘러 체육복을 갈아입고 얼른 교복을 개어넣는 것으로 그 순간들을 모면했다.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취향이 흐릿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도 저도 다 좋기 십상인 데다, 무엇을 골라야 할 때면 우유부단이라고도 표현할 수 없는 결단성의 심각한 부재에 시달렸다. 어릴 적부터 고집 있게 무언가를 고르고 선택한 경험이 일천한 자의 특성이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을 줄 안다고, 선택의 여지가 있는 시절을 지나 봤어야 어떤 취향을 굳힐 수 있었을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결핍은 그런 방식으로 다 큰 나를 여전히 지배했다.



그런 나에게도 어느 날 찾아온 고집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열네 살 무렵. 엄마를 따라 외출했다가 몇 백원하는 버스요금을 아끼려 서너 정거장을 걸어 집에 오는 길이었다. 나는 운동화가 사고 싶었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운동화들 사이에서 낡은 내 운동화를 볼 때마다 숨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새 신발의 빳빳함이 부러웠다. 한참 된 생각이었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속으로 수십 번을 되뇌었다.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침이 마르도록 속말만 되뇌일수록 집은 가까워져 갔다. 이대로 대문을 넘어가면 간신히 마음먹은 새 운동화의 기회가 영영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엄마, 나 운동화 사고 싶어."

"엄마, 나 운동화 사 줘."

"엄마, 나 운동화 좀 사주면 안 될까?"

"엄마, 나 운동화…."



수많은 말을 고민한 끝에, 결국 어떻게 말을 꺼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어들어가는 새된 목소리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무언가를 사달라고 청하는 데에 익숙한 아이가 아니었으므로. 엄마는 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나를 시장으로 데려갔다. 시장으로 통하는 완만한 언덕을 내려가는 마음이 기쁘기도, 무겁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무섭기까지 했다. 어린 마음의 대단한 결심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일까, 지금 생각하면 그 두려움이 참 씁쓸하기만 하다.



쭈뼛대며 엄마의 손을 잡고 뒤를 따른 나는 드디어 운동화, 구두, 장화, 슬리퍼 등 다양한 신발을 쌓아놓은 시장의 신발 가게에 들어섰다. 사고 싶은 운동화를 골라보라는 말에 나는 진열장 몇 칸을 훑어보다가 하나를 골랐다. 3센티 정도 되는 흰색 밑창에 검은색 천으로 발을 감싼, 당시 유행하던 동그란 모양의 운동화였다. 수줍게 손을 뻗어 가리킨 운동화를 본 엄마는 주인에게 가격을 물었다. 2만 원이었다. 흥정을 청했지만 이미 저렴해서 더 깎아주지는 못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그 곁에 가만히 서서 운동화를 바라봤다. 잠시 생각하던 엄마는 주저를 담아 물었다. "그 운동화가 마음에 드니? 운동화가 있는데 꼭 사야할까…." 나 또한 주저하며 입을 꾹 닫았다. 계산이 느린 어린 마음에도, 그 2만 원이 없으면 엄마의 며칠이 힘들 것이라는 걸 알았다. 생활고에 짐을 느끼는 엄마의 무거운 마음을, 그 어려움에도 나를 아끼는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면서도 나는 눈을 딱 감았다. 새 신발을 남부끄럽지 않게 신을 수 있다는 철없는 욕심이 엄마의 시름에 대한 연민을 이긴 셈이었다. 비겁한 승리였다.



엄마는 낡은 지갑에서 2만 원을 꺼내 값을 치렀다. 두 장의 지폐를 꺼내자 휑해진 지갑을 나는 모른 척했다.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운동화를 들고 다시 집으로 걸어 돌아왔다. 엄마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구멍이 난 생활비를 어디서 채워야 할까 하는 근심으로 입을 열지 못했을 것이었다.



나는 그 다음 날로 새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갔다. 반 아이들 모두가 운동화를 신고 나오는 체육시간, 일부러 발을 쭉 내밀고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새 신을 뽐냈다. 아니, 뽐내려 애썼다. 하지만 현실은… 새 운동화를 사면 폴짝폴짝 잘만 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새 신에 날개가 달린 듯 너무나 가벼웁게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두 발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내가 신은 신발이 정말 번지르르한 새 신이 맞는지 확인하려 고개를 숙이고 앞코를 보면,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고 나니 텅 비었던 엄마의 낡은 지갑이 겹쳐졌다.



새 신을 신고 가벼워진 건 내 두 발이 아니었다. 단지 엄마의 지갑이, 우리의 생활이 여러 날 더 가벼워졌을 뿐이었다. 정확한 셈까지는 미치지 못했지만, 산수를 못하던 나도 그런 생활의 셈쯤은 할 줄 알았다. 나는 묵묵한 고집을 부려 손에 쥔 그 운동화가 더 이상 기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신을 신으면 발이 너무 무거워서 모래주머니를 매달고 걷는 것만 같았다. 발이 무거워서 마음이 아팠다. 발이 무거워서 울고 싶었다.



이제 다 커버린 나는 운동화를 잘 신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운동화를 신은 나를 본 사람들은 손에 꼽는다. 꼭 운동화를 신어야 할 몇몇 때가 아니라면 나는 늘 단화나 구두를 신는다. 운동화를 굳이 선호하지 않는 이유가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내키지 않아 신고 싶지 않다. 다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 시절 2만 원짜리 운동화가 어린 마음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너무 크고 까맣고 무거워서, 그 무게가 마음에 너무 진하게 새겨진 탓은 아닐런지.



오늘도 집에 오는 길에 큰 신발 가게 앞을 지나쳤다. 언뜻 바라본 층층의 진열장에는 번지르르한 운동화들이 가득했다. 걸음을 멈추고 수많은 운동화를 훑어보았다. 지금이라면 낡은 지갑을 근심하지 않아도 욕심껏 살 수 있는 운동화들이었다. 하지만 사고 싶지 않았다. 신고 싶은 운동화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발길을 돌렸다. 빼곡한 진열장 틈으로 어린 시절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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