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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Apr 04. 2020

책 <흰 도시 이야기>, 오른손이 떨어지고 마음을 잃다






<흰 도시 이야기>
최정화
문학동네
2019년 8월





왜 어떤 사람들은 싸우고
어떤 사람들은 굴복하고
어떤 사람들은 견디는가.
또 어떤 사람들은 왜, 이 삶을 견디지 못하는가.
(245쪽)





'다기조'라고 이름 붙여진 전염병이 L시에 창궐한다. 감염되면 신체의 말단 부위-주로 오른손-의 피부가 바싹 마르다가 종내에는 흰 각질 더미로 떨어져 나가게 되는 동시에, 한 개인과 사회 일원으로서의 과거 기억을 잃고 단지 멍한 오늘을 살아가게 된다. 인정과 연대하는 마음과 이타적인 사고방식을 잃은 채 타인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를 의식하지 않는 마음이 되어버리는 전염병이 휩쓴 사회에서는, 오히려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장애로 인식된다. 신체의 말단 부위뿐 아니라 사회를 이루는 마음들이 모두 바싹 말라버리고야 마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 틈에서 감염으로 인해 잃어버린 아내와 아이에 대한 실낱같은 기억을 찾아 헤매는 남자, 이동휘. 그는 전염병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과거를 되찾기 위해 전염병에 저항한다. 신체 말단이 각질로 떨어져 나가는 증상에 저항하느라 온몸이 온통 흰 각질로 덮인 채이지만 포기할 수 없다. 우연한 기회로 '흰 개들'이라는 감염자 단체의 일원과 가까워지고, 그를 통해 다기조 전염병의 실체와 이 병을 이용하려는 시市의 계략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병증을 이용해 시민들을 암묵적으로 포섭한 L시. 그 계략에 빠진 시민들은 깨어있는 이들이 아무리 두드리고 두드려도 깨어나지 못한다. 그 틈바구니에서 이동휘는 괴롭다. 차라리 그들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가 될까 싶다가도,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 태어나 더 이상 현실과 타협하며 살 수는 없다는 반대의 마음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작가는 세월호의 아픔을 마음에 담고 이 작품을 쓴 듯하다. 세월호의 아픔과 그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언급하며 '감염자의 기억을 삭제하고 왜곡시키는 전염병에 휩싸인, 그 정보를 조작 은폐하는 정부'라고 표현한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러하다. 어떤 현상을 계략적으로 이용해 시민들이 거짓된 사실을 믿고 섬기도록 몰아가는 정부. 그 우물 안에서 만들어진 거짓을 완벽하게 믿고만 산다면 평온하기야 하겠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 '인간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런지. 아픔보다 눈앞의 이익을, 연대보다 멸시가 우선하는 사회를 과연 공동체로 믿고 살 수 있을런지. 우리 사회가 지난 몇 년 동안 고심한 질문이 여기에 있었다.



한편으로, 감염되면 떨어져 나가는 말단 부위가 왜 하필 오른손일까 생각한다. 요즘에야 인식의 변화와 개선으로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에 대한 유별난 시선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른손'과 '바른손'은 동의어였고, 왼손을 주로 쓰는 왼손잡이는 마치 사회의 규칙을 거스르는 버릇인 양 인식했다. 다기조에 감염되면 그 '바른손'이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바른 이치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잃는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쓰인 것일까 넘겨짚어 본다. 그렇게 인간성을 잃은 존재가 되어, 타인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에 대하여.



나의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른손이 어깨와 팔뚝과 손목으로 이어진 지점에 멀쩡히 붙어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인간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걸까? 역시,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겠다고.






* 이 감상의 논조는 현 시국 및 현 정부와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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