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을 걷어내면 비로소 보이는 또다른 관점에 대하여
<블러디 프로젝트 : 로더릭 맥레이 사건 문서>
그레임 맥레이 버넷
열린책들
2019년 1월
1860년대의 스코틀랜드. 바다에 면한 아주 작은 시골 마을 컬두이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셋. 마을의 소작을 관리하는 치안관인 라클런 매켄지와 그의 딸, 아들은 끔찍하게 휘둘러진 삽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가해자는 같은 마을의 열일곱살 로더릭 맥레이. 아버지 대에서부터 근근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란 요만큼도 보이지 않는 소작농의 아들이다. 매일의 일상이라곤 양을 치고 밭을 일구는 일밖에 없었던 로더릭은, 하루도 다를 것 없이 주어진 삶에 순응했던 그는 왜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소설은 마을 사람들의 진술과 로더릭의 비망록, 재판의 과정과 평결을 나열하며 사건을 펼쳐 보인다. 사건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움트기 시작했는지, 사건이 발발한 이후 그를 둘러싼 모두의 심경이 어떻게 흘러 가는지를 관찰하노라면, 처음 이 소설을 마주했을 때와는 조금 다른 인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사건의 표피를 한 겹씩 벗겨낼수록 스릴러 장르라는 껍질도 허물어지며 조금 더 깊은 관점에 가닿게 된다.
혐오와 분노로 불거진, 수직적 사회 구조의 폐해에 기반한 살인 사건을 걷어내면 '믿음'의 문제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사건은 하나일진대 정황과 진술과 그로 인한 인식은 제각각이다. 가해 당사자와 피해자의 가족, 마을의 증인들,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 심리학 박사와 정신과 의사, 배심원단의 인식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이질적이다. 사건에 대한 모두의 판단과 인식을 나름의 관점에서 각각 헤쳐 보면 모두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모두를 하나의 줄기로 조합해 보면, 하나의 판결을 내릴 수 없는 모순에 치이고야 만다.
결국 소설은 가해자 로더릭 맥레이의 편도, 피해자 라클런 매켄지의 편에도 서지 않는다. 그리하여 소설은 독자에게 질문한다. 하나의 사건과 현상을 두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것인지. 단순히 누굴 믿고 믿지 않느냐의 선택을 떠나서, 우리 앞에 주어진 사실과 정황에서 어떻게 편향을 제거해 객관에 가까워질 것인지. 우리는 거짓과 진실을 어떻게 가르고 걸러, 사실의 빈칸을 무엇으로 채워 진실로 정제할 것인지. 쉽지 않은 질문을 하는 소설 한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