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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yss May 03. 2024

자학의 심리를 관망하다

더 웨일(The Whale, 2022)



들어가며


  흔히 폭력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궁지에 몰리면 누구나 칼을 꺼내들기 마련이라고요. 여기까지는 보편적인 이야기인 듯하나, 그 칼끝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개인마다 꽤 다른듯합니다. 누군가는 가까운 사람들을 탓하고 공격하지만 세상에는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도 아주 많으니까요. 그러나 살면서 부딪히고 벌어진 모든 일들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일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자학적 사고는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할 뿐더러, '모든 게 네 탓'이라는 책임전가만큼이나 모두에게 해롭습니다. 


 자학적 사고가 해롭다는 얘기에 한 문단이나 썼네요. 여기 해로운 것들에 사로잡히는 감독이 있습니다. 대런 애로노프스키는 마약(레퀴엠)에서부터 완벽주의(블랙 스완)까지,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온갖 해로운 것들에 반응하는 인간의 심리를 강렬하게 드러낸 감독으로 유명합니다. <더 웨일>은 감동적인, 혹은 슬픈 영화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쭉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함께 들여다볼까요? 


 이번 호의 주제인 <더 웨일>의 쿠키 지수는 20입니다. 조금 딥하긴 하지만 서사가 복잡하지 않기에 누구나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작품이고,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인물들의 극적인 감정 표현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기에 정서적으로 따라가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살펴보기 



 이번에는 배우 얘기로 시작할까 해요. <더 웨일>의 주연 배우 브랜든 프레이저(Brendan Fraser)는 이 작품으로 2023년에 개최된 제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원래도 큰 키를 가진 배우이지만, <더 웨일>에서 분장의 힘을 받아 272kg까지 증량(? 실제 증량은 아닙니다.)하며 문자 그대로 몸을 아끼지 않는 열정을 보여 줬습니다. 이 분장도 만만한 일이 아니라, 입고 벗는 데에 5명의 도움을 받아서도 최대 4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브랜든 프레이저는 '미이라(1999~2008)' 시리즈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이지만, 여러 다사다난한 사고들을 겪으며 대중에게 잠시 잊힌 듯했다가 이 작품으로 완벽한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이 전해집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역을 요구받은 건 처음이었다. 배우로서 내가 익혔던 것들을 모두 결합하는, 캐릭터 구축에 필요한 모든 요소에 내 안에 있는 것들까지 끄집어내야 하는 그런 경험 말이다”며, “하지만 이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스크린에 쏟아냈다. 아무것도 주저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찰리의 단 하나뿐인 간호사 친구, 리즈 역으로 작중 중요하게 등장하는 배우 홍 차우 역시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인데요. <더 메뉴>에서 미스테리한 레스토랑 관리인 엘사 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홍 차우는 베트남 이민자의 딸로, 그의 부모는 베트남 전쟁에 휘말려 난민 캠프에 지내던 중에 홍 차우를 낳았다고 합니다. 홍 차우는 한 인터뷰에서 "나의 부모님은 용감하셨고,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던 바 있습니다. 또한 할리우드에 더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했죠. 그러나 동시에 그는 '난민 출신'이라는 자신의 꼬리표보다, 지금 활발하게 커리어를 쌓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더 자랑스럽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보다는 적은 비중을 가진 다른 배우들은 어떨까요? 주인공의 딸 엘리 역을 연기한 배우 세이디 싱크 역시 돋보입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에 맥스 메이필드 역으로 출연하여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습니다. 여담으로 <기묘한 이야기>의 주연인 말리 바비 브라운과는 절친 사이라고 하네요.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잊히는 중이던 전 유명 배우, 배트남 출신으로 많은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배우, 그리고 막 뜨기 시작하는 라이징 배우의 연기 호흡이 무척이나 잘 들어맞았던 <더 웨일>이었습니다. 관객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마련인 배우의 역량이 잘 드러난 영화였다고 평할 수 있겠네요. 






   


  다음으로는 감독인 대런 애로노프스키에 대해 살펴볼까요? 앞서 서술했듯, 대런 애로노프스키는 무언가 강렬한 것에 사로잡힌 인간을 그리는 데 특출난 감독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마더!>, <레퀴엠>, <블랙스완> 등이 있고, 한국에도 굉장히 팬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가장 알려진 건 <블랙스완>일 것 같아요.


잠시 이 영화들의 스틸컷을 들여다볼까요?  



 영화들의 스틸컷만 봐도 벌써 강렬한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이런 강렬함은 분명히 많은 관객을 몰입시키고, 또 끌어당기기 쉽습니다. 또한 그의 영화들에는 상징적인 장치가 많이 사용되어 있어, '영화 해석'을 즐기는 분들께 잘 들어맞는 콘텐츠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런 의문을 가져 볼 수 있겠습니다. 영화의 상징 하나하나를 해석할 수 있어야만 그 영화를 봤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물론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영화가 퍼즐 맞추기 게임의 영화다, 라는 식의 과격한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그의 영화는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 감각적으로 먼저 와닿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이 '감각으로 와닿는 영화'란 어떤 걸까요? 최근, 특히 한국에서는 3D를 넘어 4D 영화가 각광받고 있습니다. 체험되는 영화, 감각되는 영화가 종종 시네마의 미래로 취급받습니다. 아마 대런 애로노스프키의 영화를 4D로 감상하게 된다면, 우리는 더 강력한 자극을 경험할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두 번째 의문이 고개를 듭니다. '감각으로서 경험되는 영화'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더 웨일>에서 감독은 전작을 함께 작업했던 카메라 감독과 편집자를 기용했습니다. 각각 매슈 리버티크와 앤드류 와이즈블럼입니다. 음악은 롭 시몬센이 담당했네요. 매슈 리버티크는 아이언맨, 베놈, 스타 이즈 본의 촬영을 맡기도 했습니다. 미국영화연구소 콘서바토리를 졸업했는데, 이때 대런 애러노프스키와 졸업작품을 함께하게 되면서 연이 닿아 이후 대런의 영화 촬영을 전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 레슬러>라는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맡아 진행했네요.


 편집을 맡은 앤드류 와이즈블럼은 주로 대런 애로노프스키, 그리고 웨스 앤더슨의 작품들을 담당했습니다. 롭 시몬센은 유명 작곡가 마이클 다나의 제자로, 마이클 다나와 함께 <500일의 썸머> 음악을 작업했습니다. <500일의 썸머>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끼셨나요? <더 웨일>은 특히 특유의 무겁고 축축한 음악으로도 호평을 받았는데요, 관심이 생기신 분은 롭 시몬센의 유튜브 채널을 방문해 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 https://www.youtube.com/channel/UCnjSEk4foi4qxV9yCdm--BA )   








  

  제작사는 A24로, 한국에서도 이미 '아는 사람은 아는' 제작사이죠? A24는 미국의 유명한(?) 독립영화사입니다. 특징은 감독에게 전권을 쥐여주기로 유명하다는 점 등이 있을 것 같아요. 또 영화 판권비가 유독 비싸다는 점 정도? 거쳐간 영화들로는, <더 랍스터>, <문라이트>, <킬링 디어>, <레이디 버드>, <유전>, <미드90>, <미드소마>, <미나리>, <그린 나이트>, <애프터 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보 이즈 어프레이드>, <패스트 라이브즈>...... 등이 있습니다. 이 라인업만 보더라도, 톡톡 튀는 개성의 알짜배기 영화사라는 점이 느껴지실 거예요.   







나가며 


  줄거리에 대해 거의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목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실 것 같아 간략히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마약, 완벽주의, 강박증...... 그의 영화를 보다 보면, 인간이란 어떤 나쁜 것에라도 사로잡힐 수 있는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최신작인 <더 웨일>에서의 '나쁜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내린 답은 바로 자기혐오, 즉 자학입니다. 고통받는 인물들의 모습을 스크린 너머로 그저 관망하는 감독이 매정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감독이 인간의 유약함과 그로 인해 파괴되는 인간의 모습을 반복해서 그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목은 이런 궁금함을 담아 지어 보았습니다.  





 정말로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으니, <더 웨일>과 어울리는 쿠키 컨텐츠를 소개해야겠죠? 쿠키 앤 크레딧 제2호의 쿠키 컨텐츠는, 캐럴라인 냅이 쓴, <명랑한 은둔자>라는 에세이입니다. 극중 주인공 찰리는 대학 강사이고, 글쓰기를 강의합니다. <더 웨일>에서도 에세이는 중요한 소재입니다. 저자 캐럴라인 냅은 거식증과 알코올 중독과 분투하였던 사연을, '명랑한 은둔자'라는 제목에 맞게 조금은 가벼운 톤으로 풀어냅니다. 내용은 심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심각함에 빠지지 않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한 위로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에세이입니다. '은둔자'라는 단어에서 얼굴을 가리고 집에서만 원격으로 강의를 하던 찰리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네요.


 <더 웨일>에서 찰리는 무엇보다 솔직하게 에세이를 쓸 것을 역설합니다. 영어 대사로는 'honest'해지라고 말이죠. 단어 'honest'는, 명예를 뜻하는 단어 'honor'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솔직하다, 정직하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은 상대방을 향한 예의와 존중을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동시에 이런 말이 떠오릅니다. '사람은 자기만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 글쓰기를 할 때, 내가 누구인지 진정으로 알고자 할 때에도 가장 존중해야 할 것은 '내'가 아닐까요? 나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난도질하기보다는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을 갖춰 바라볼 때, 더 솔직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보다 나로부터 나를 지키고 싶은 사람들에게
2024년 5월 3일 오전, Abyss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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