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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yss May 10. 2024

별까지 손이 닿도록

귀를 기울이면(耳をすませば, 1995)




들어가며



'꿈'과 '꿈'의 발음과 표기가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연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둘 다 흐릿하고 막연하다는 점이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간밤에 꾸었던 꿈은 아무리 애써도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고, 당장 실행하거나 실현할 수 있는 것은 꿈이 아니라 대개 목표라고 부르죠.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것을 이루고 싶다는 의미에서 꿈을 말할 때, 그것은 언제나 조금 모호한 구석을 지닙니다. 예를 들어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해도요. 정말 가수가 되었을 때의 사실적인 하루하루를 미래에 보내고 싶다, 라는 의미에서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애초에 되어 보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기도 하고요. 


이렇게 허점 투성이인데도, 간절한 꿈을 가진 사람들은 그 꿈을 생생하게 느낍니다. 가슴이 설레고, 그 설렘 때문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가끔은 좌절하며 고통스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했을 때, '꿈이 있는' 사람은, '꿈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3호의 주제가 될 영화의 제목은 <귀를 기울이면(耳をすませば)>입니다. 흐릿하고 작은 마음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야만 꿈을 느낄 수 있다는 데에서 붙인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쿠키 앤 크레딧 3호도 시작해 보려 합니다. 





 



살펴보기


<귀를 기울이면>은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든 작품입니다. 꿈도 목표도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학생 시즈쿠가 우연히 바이올린 장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세이지를 만나고, 자신의 꿈을 키워 간다는 내용이에요. 지브리 작품치고는 조금...... 뭐가 없다 싶진 않으신가요?  '지브리' 하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바로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을 맡지 않은 몇 안 되는 지브리 영화 중 한 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야자키 감독의 손길이 아예 닿지 않은 것은 아니고, 원작 만화를 선택하는 것부터 콘티 집필까지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맡았습니다. 감독인 콘도 요시후미는 정말로 '감독'의 역할, 현장을 관리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고 하네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손이 많이 간 작품이지만, 기존의 '미야자키표' 지브리 영화와는 다른 색을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주로 판타지스럽고, 스케일이 크며 모험적인 내용을 많이 다루었던 '미야자키표' 영화와는 다르게 조금은 일상적이고 소박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작품으로는 타카하타 이사오가 감독을 맡았던 <추억은 방울방울(1991)>, 모치즈키 토모미가 감독을 맡았던 <바다가 들린다(1993)> 등이 있습니다. 주로 학창시절의 추억이나 소소한 일화 등을 다루고 있어요. 







제작 쪽을 더 상세하게 살펴볼까요? 우선 <귀를 기울이면>은, 꽤 예전 영화인 만큼 지브리의 마지막 정통 셀 애니메이션이기도 합니다. 작화감독은 코사카 키타로입니다. 한국에서는 별로 유명하지 않지만, 유명한 많은 작품에 참여했습니다. 참여 작품으로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부터, <천공의 섬 라퓨타>, <AKIRA>, <천사의 알>, <반딧불이의 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조금 더 최근작으로 넘어오면 <괴물의 아이>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이 있습니다. 최근까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네요.

 

프로듀서는 스즈키 토시오입니다. 현재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사회 의장이고,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지브리 작품이 이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던 외적 이유로는 이분의 공이 큽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 이전까지 선전 활동에 무심했던 지브리가 스즈키 토시오를 거치며 자타공인 흥행 1순위 제작사로 자리잡게 되었으니까요. 스즈키 토시오는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여성들이 1980년대 중반으로 가며 경제력이 생기고, 애니메이션에 많은 소비를 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성인 여성들의 취향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그렇게 보일 수 있도록 마케팅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주제곡인 '컨트리 로드'는 미국의 가수 존 덴버가 1971년 발표한 'Take Me Home, Country Roads'를 번안한 곡입니다. 이 곡의 번안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작사는 스즈키 토시오의 딸이 맡았고, <귀를 기울이면> 제작 당시에는 19살의 대학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작사 의뢰를 듣자마자 "돈은 얼마 줄 거냐'고 물었고, 하기로 한 이후에도 늦장을 부리다 마감 하루 전날에 가사를 써 냈어요. 그런데 번안판의 가사는 원곡의 가사와는 내용이 좀 달라졌습니다. 원곡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내용이지만 번안판에서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아직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내용을 담았거든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부분을 마땅치 않아 해서, 마음대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버전으로 다시 가사를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감독인 콘도 요시후미는 스즈키 토시오의 딸이 쓴 버전을 더 좋아해서 조금 다툼이 있었다고 하죠. 스즈키 토시오 씨는 나중에서야 '컨트리 로드'에 얽힌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콘도 요시후미 역시 만화가가 되기 위해 고향을 뛰쳐나와 도쿄로 올라왔던 과거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출하듯 빈손으로 고향을 뛰쳐나와 열심히 노력해 애니메이터가 되었지만, 아직 그것만으로는 돌아갈 수 없으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더 대단한 감독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그에게는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감독을 맡은 감독에서 우연히 그런 가사를 만났으니, 그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지키고 싶은 가사였을지도 모릅니다. 










<귀를 기울이면> 영화의 배경은 실제 배경과 거의 동일하게 구현되었다고 합니다. 도쿄의 케이오선 세이세키사쿠라가오카역 주변의 타마 뉴타운을 배경으로 했는데, 신주쿠역에서 편도로 2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하니 도쿄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이라면 잠시 둘러보아도 좋겠습니다. 새삼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에는 이렇게 실제 배경을 구현한 영화가 많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이 대표적이죠? 











 

나가며 


여기까지 <귀를 기울이면>의 제작에 얽힌 이야기를 살짝 들려드렸습니다. 시즈쿠는 중3의 나이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꿈이 뭔지 깨닫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걸 느낀 시즈쿠가 새삼스럽게 행운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시즈쿠는 앞으로 더 훌륭한 작가가 될까요? 그건 물론 모르는 일입니다. 도중에 그 꿈을 포기할 수도 있고, 다른 꿈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귀를 기울이면>에서 포착하고자 했던 것은 처음으로 꿈을 꾸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아닐까요? 누구나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태어나면 누구나 한 번은 가슴 뛰는 순간을 경험하기 마련이니까요. 그 순간은 지금 여러분의 어디에 있나요? 과거에, 혹은 지금? <귀를 기울이면>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합니다.




끝으로, 이번 3호를 읽어 주신 여러분들께 <귀를 기울이면>의 대사를 전해 드립니다.


恐れずに行こう。 夕風に乗って、星まで手が届くように! 

두려워 말고 가자. 저녁바람을 타고, 별까지 손이 닿도록!


5월 10일, Abyss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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