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합격수기는 아닙니다
먼저 문제 몇 개를 풀어보고 시작하자.
1.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이 획득한 동메달의 개수는?
1) 88개 2) 89개 3) 90개 4) 91개
2. 올해(2025년) 당선된 최초의 여성 아프리카계 IOC 회장의 이름은?
3. 토트넘 손흥민 선수가 커리어 최초로 우승한 대회의 명칭은?
정답은 하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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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1번 - 2) 89개, 2번 – 커스티 코번트리(Kirsty Leigh Coventry), 3번 – UEFA 유로파리그
몇 개나 맞추셨는가.
위 문항들은 언론사 공채 필기전형에서 출제됐던 상식 지문이다(연합뉴스. 뉴시스 등). 소위 ‘언론고시’를 통과하고 기자가 되기 위해선 논술과 함께 위와 같은 문제 유형에 대비해야 한다.
이쯤 되면 이런 의문이 든다.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딴 동메달 개수를 알고 있다고 좋은 기자라 할 수 있나? ChatGPT한테 위 문제의 해답을 물어보니 정확히 5초 만에 완벽한 답을 내놓았다. 더 이상 단순 암기력은 기자의 고유한 역량이 아니다.
언론고시 실효성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언론사는 몇 년 전부터 상식 전형을 아예 폐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부분 언론사에서는 기존의 필답방식을 고수한다. 기자가 되고 싶다면 범위도 없는 상식 문제에 대비해, 윤석열 탄핵이 인용된 선고시각(4월 4일 오전 11시 22분) 등을 외우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쉽게도 이 글은 언론고시 찬반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글이 아니다.
아마 시험에 나왔다면
이른바 언론고시라 불리는 현재의 언론사 공채제도가 언론의 공공성과 기자 선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하시오. [800자 이내]
이렇게 나왔을 것이다. 나는 이런 문제 유형에 정말 질색이다.
도파민형 인간은 눈에 보이는 보상이 없으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기자 실무에 쓰일지도 확신할 수 없는 지식을 공부하는데, 1년 2년을 투자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언론고시 공부를 포기했다. 그 시간에 소규모 언론사에 들어가서 경력을 쌓았다. 그냥 이런 변명을 누구에게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서론이 길었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순응하라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런 공부도 하지 않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반항이다.
바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돌을 던져보고 싶었다. 어떤 철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글은 그 과정을 담은 기록물이다.
올해만 6-7군데 정도 원서를 넣었다. 시민기자 경력도 있고 자기소개서도 나름 잘 뽑아서 1차 전형은 자신 있었다. 자기소개서는 브런치 다른 게시글에 있으니 참고해도 좋다.
회귀: https://brunch.co.kr/@ac1fec735e174fa/13
한국경제, 오마이뉴스 등 몇몇 규모있는 언론에서도 서류합격을 했지만 결국 언론고시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기대도 안 했던 뉴시스에서 필기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시험을 잘 본건 장담컨대 아니다. 뉴시스 2차 전형은 상식 40문제와 논술 1제로 구성됐다. 시험이 끝나고 가채점을 해보니 상식은 절반도 못 맞췄다(4지선다). 논술 논제도 자신 없는 검찰 개혁이 나온 데다 제목을 적지 않는 실수를 해서, 합격을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아직도 왜 붙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덕분에 글을 작성할 명분이 생겼으니 나름 감사하고 있다.
현재 나는 뉴시스 25기 수습기자 공채전형 진행 중에 있다. 1차 서류와 2차 필기, 3차 논술 및 인성검사를 통과하고 이번 주 면접을 앞두고 있다. 아직 최종 합격까지는 두 단계가 남았다(실무면접, 임원면접).
앞서 얘기했듯이 이 글은 합격수기가 아니다. 그래서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 나의 조그만 반항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4차 5차 면접에 합격하든 탈락하든 계속 글을 적어볼 생각이다. 다음 글은 2차 필기와 3차 논술 복기다.
참고로 내가 받았던 논제는
선출된 권력과 임명된 권력에 대해 논하시오(분량 자유)
제한시간은 70분이다. 흑색 펜으로 줄글 형식의 답안지를 채우면 된다.
P.S. 돌이켜보니 예전에 입시 준비 할 때도 비슷한 글을 썼다. 지금의 나는 5년 전에 모습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