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서 좋았던 시간과 공간
아내의 팔이 부러졌다. 횡단보도 녹색불이 깜박이자 급히 건너려다 넘어졌다. 양손에 든 물건 때문에 땅바닥에 손을 짚지 못하고 인도 경사면과 상체 사이에 낀 팔이 부러진 것이다. 순간 아내는 골절을 직감했다고 한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 팔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아니 아예 일어서지를 못했다. 이때 일으켜 세우려고 팔을 잡으면 골절 부위가 더욱 손상된다. 마침 지나가던 여성분의 도움으로 간신히 벤치에 앉혀놓고 119에 긴급출동을 요청했다. 그동안 아내는 스카프로 삼각끈을 만들어서 팔을 고정했다. 응급실로 가서 엑스레이 촬영결과 3개 부위에 골절이 드러났다. 이후 아내는 입원해서 3시간에 걸쳐 대수술을 받았다. 그렇게 아내는 일주일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사고로 두 팔을 잃은 시인이자 화가인 일본의 오노 가쓰히코가 한 말이 생각났다.
무엇을 먹어도 맛있었다.
무엇을 봐도 즐거웠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렇게 느낄 때는 언제나 네가 곁에 있었다.
50의 나이에, 일주일간 아내가 없는 집은, 오노 가쓰히코가 한 말의 반대였다.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었고 무엇을 봐도 즐겁지 않았다. 아내의 빈자리가 느낄 때마다 따라오는 감정이었다.
50의 나이에 가족의 의미는 이런 게 아닐까 한다. 나를 찾는다며,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며 방황하는 50. 가족에게 소홀해지기 쉬운 시기다. 자칫 잘못하면 이후의 인생에 큰 후회로 남을지도 모른다.
50은 그런 나이다.
뭘 하든 꼴 보기 싫은 배우자, 내 맘대로 안되는 자식들, 아프면 바로 달려가야 하는 부모, 언제 나가야 할지 눈치만 보는 직장, 건강하던 친구가 갑자기 암으로 죽어서 남 일 같지 않은 생각으로 내 몸을 바라보는…….
그럴 때 가족은 에너지 충전소가 된다. 지지고 볶고 싸우더라도 가족은 위기의 순간에 강하다.
한 달에 한 번씩 꼭 들리는 맛집이 있다. 새로운 맛집을 찾아서 다니는 것도 행복이지만 늘 고정적으로 들리는 맛집이 있다는 건 에너지 충전소와 같은 곳이다.
영화 <슈퍼맨>에서 슈퍼맨이 악당의 공격으로 힘을 잃게 되자 북극에 있는 수정동굴로 날아간다. 거기서 악당에 대적할 수 있는 에너지를 회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가족은 그런 곳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들리는 맛집도 그런 곳이다. 그 속에 늘 함께하는 아내가 있었다. 가족이 있었다. 그래서 무엇을 먹어도 맛이 있었고 즐거웠다. 말하지 않아도 느끼는 행복이었다.
오늘 아내에게 카톡 문자를 보냈다.
“살면서 산소 같은 관계가 되는 순간 고마움을 잊고 있었어요. 당신이 있어서 좋았던 시간과 공간에 감사해요. 오늘따라 당신의 빈 자리가 감사함으로 채워지네요.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