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사랑, 완벽한 사랑과 다시 쓰는 사랑 일기
1. 50의 사랑. “완벽한 사랑을 꿈꾸는가?”
아내와 나는 드라마 광이다. 50이 넘으니 아내와 드라마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가적 관점에서 복선을 찾아내고 “앞으로 주인공이 어떻게 될 것 같다.”라고 말하면, 아내는 피식 웃으며 “역시 작가답네”라고 답해준다. 나는 그런 아내의 추임새를 좋아한다. 내가 예상한 상황이 전개되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한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당신은 내가 틀린 말을 해도 ‘응, 그래’, 맞는 말을 해도 ‘응, 그래’라고 하잖아. 틀린 말을 하면 아니라고 해도 되는데 왜 그렇게 말해?”
“아, 그거? 틀린 말을 하면 조금만 지나도 당신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는데 굳이 내가 틀렸다고 말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거예요. 당신 늘 그러잖아.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내가 틀렸네.’ 스스로 알게 되는데 당신 기를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그날 이후로 핸드폰에 아내 이름을 “지혜롭고 예쁜 마눌님”이라고 저장했다.
마눌님은 존경심과 공포심을 함께 담고 있는 말이다.
드라마 시작 전 광고가 나오고 있다. 광고 오른쪽 위에 몇 초전 숫자를 보며 큰 소리로 아내를 불렀다. 아내는 드라마 시작 30초 전에 마지막 설거지를 끝냈다.
“빨리와 여보. 광고 거의 끝나가. 30초 전이야.”
“알았어요. 가요. 아직 시작 안 했죠?”
아내가 소파에 앉는 순간 예고편을 본 기억을 떠올리며 기대감에 집중한다. 지난 회 예고편에서 ‘여주인공 박단단의 아버지가 헤어진 생모와 다시 만나는 장면’을 ‘키워준 어머니가 목격하고 격분하는 모습’이 있었다. 드라마에 집중하면서 그 장면이 어떻게 전개될지 기다렸다. 이윽고 그 장면에서 박단단의 아버지가 이혼한 옛 아내를 선택하는 모습에서 가만히 시청하던 ‘지혜롭고 예쁜 마눌님’의 감정이 폭발했다.
“저런 나쁜 XX!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당신도 저런 상황이라면 똑같이 할거죠? 말해봐요?”
“그냥 봐~. 뭘 그런 걸 묻고 그래~. 난 절대 그럴 일 없네요~.”
감정 이입된 아내의 경고가 날카로웠다. 나는 괜히 의문의 일 패를 당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아내의 질문을 생각해보니 ‘나도 그럴 수 있을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에서 박단단의 아버지는 옛날 도망간 아내를 다시 사랑해서가 아니라 암으로 죽어가는 한 사람을 그저 측은지심으로 바라본 마음일 뿐이었다. 그래도 괜히 목숨 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온 표현은 “난 절대 박단단 아버지 공감 못 해! 저러면 안 되지.”였다.
눈은 TV 화면에 고정되어 있는데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거리가 맴돌았다.
‘완벽한 사랑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해야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드라마가 끝나고 집중했던 감정의 갑옷도 벗었다.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은 완벽한 사랑이 있다고 생각해? 여자들이 생각하는 완벽한 사랑은 어떤 거야?”
“완벽한 사랑? 글쎄요. 여자는 완벽한 사랑보다 백마 탄 왕자가 언젠가는 나타나겠지라는 환상이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거 같은데요. 일종의 사랑에 대한 환상이랄까?.”
“사랑을 사랑하는, 그런 이야기하고 같은 건가?”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근데 당신이 완벽한 사랑이라고 해서 말인데 내 친구 영자 알죠? 영자가 글쎄 남편이 몽골에 가 있는데 바람을 피우고 있지 뭐예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영자씨가 말해줬어?”
“영자 걔가 좀 푼수잖아요. 대학 동창 모임에서 부부관계 이야기가 나왔는데 글쎄 자기는 애인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더라고요.”
“그래?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어떻게 되긴. 계속 바람피우고 있지. 근데 영자 걔가 말하는 게 글쎄 이제야 완벽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 뭐에요. 우리가 보기엔 그냥 바람인데, 걔는 완벽한 사랑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남편이 몽골에 가서 힘들게 일해서 돈을 보내주는데 마누라는 그 돈으로 다른 남자하고 완벽한 사랑을 한다.? 허허, 참. 그럴 거면 이혼하고 그 남자랑 살면 되지. 그건 또 싫은가 보네?”
“그렇지. 남편은 남편이고 애인은 애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원래 사랑이 사랑을 키운다고 하잖아. 부부간에도 표현을 해야 해. 서로 관심을 가지고 가능한 한 바짝 붙어서 함께 사는 것이 최고지. 우리처럼 말이야.”
“당신의 과도한 관심은 사양합니다~. 근데 당신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니에요? 바짝 붙어 있으면 지겨워지고 미워질 때도 있어요.”
“뭐야? 당신 지금 영자씨가 부러운 거 같은데?”
“호호호, 이참에 나도 완벽한 사랑을 찾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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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랑이 권태로운가? 50대에 사랑 일기를 다시 쓴다면?
옛날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부부가 이혼을 요구하면 법원은 그 소청을 바로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혼을 판결하기 전에 두 사람을 사흘 동안 침대와 식탁, 접시와 잔이 각각 하나뿐인 방에 가두어두었다. 사흘 동안 외부인은 그들과 만나지도 말을 걸지도 않으면서 식사만 넣어줬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밖으로 나오면 누구도 이혼을 원하지 않게 되곤 했다.
완벽한 사랑, 불륜 이야기가 나와서 고전 명작 한편이 생각난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이다. 결혼생활이 권태로움에 빠지자 새로운 사랑을 찾아 완벽한 사랑을 꿈꾸지만, 그 또한 익숙함이라는 시간 앞에 새로운 권태로움을 낳나니, 안나여! 되돌릴 수만 있다면….
“행복한 가정은 모두 같은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명작 <안나 카레니나>에서 주인공 안나는 쇼윈도 부부로 사랑 없이 살아가는 삶에 염증을 느낀다. 어느 날 우연히 기차역에서 만난 젊은 청년 장교 브론스키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브론스키의 구애를 받아준다. 안나는 완벽한 사랑을 위해 남편 알렉시 카레닌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사랑하는 아들마저 버리고 브론스키에게로 간다. 영원히 불타오를 것 같았던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도 익숙함이 찾아왔을 때 둘의 사랑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완벽한 사랑을 꿈꾸었던 안나는 브론스키의 출세욕과 무관심에 상처를 입게 된다. 급기야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유롭기 위한 마지막 선택을 한다. 사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생각하며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진다.
(안나의 마지막 선택 장면)
안나는 사람들을 피해 플랫폼에 멈추어 섰다.
‘나는 왜 여기까지 왔을까? 무엇을 하려는 걸까?’
안나는 갑자기 브론스키를 처음 만난 날 기차에 치여 죽은 사람이 생각났다. 그 순간 안나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선로 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 지나가는 열차와 거의 닿을 만한 곳까지 가서 멈췄다.
‘저기야. 바로 저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거야.’
비운의 여주인공 안나는 완벽한 사랑을 꿈꾼다. 소설 속 남자와 여자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여자는 사랑 속에서 사랑을 보고, 그 애인과 남편을 본다. 남자는 욕구하고 여자는 사랑한다. 남자는 즐기며 살고 싶은 욕구로 쾌락을 추구하려는 본능이 강하다. 반면에 여자는 자신의 주변을 지배하고 싶어 한다. 집 안과 침대와 방과 식탁 등 그 모든 작은 세계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한다. 여자는 자신의 남자가 만족을 모르는 욕망과 끝없는 호기심으로 자신을 둘러싸기를 바란다. 여자의 감정은 복잡하다. 자신 속에 끝없이 찾아낼 것이 있다고 믿으며 또 어떻게 해서든 이런 탐구를 좇는 끈질긴 사랑으로, 수천 가지 예기치 못한 멋과 정념으로 항상 남자를 놀라게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생각한 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절망한다. 완벽한 사랑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며 부정한다. 용기와 포기 사이에서 열광과 발광이 반복된다.
통계청이 부부관계에 대한 충격적인 자료를 발표했다. ‘2021년 혼인, 이혼 통계’자료에 의하면 30년 이상 함께 살아온 부부의 이혼 건수가 전체 이혼 건수의 17.6%로 나타났다. 10년 전인 2011년과 비교하면 10.6%가 늘어났다고 한다. 남성 평균 이혼 연령은 50.1세이고 여성 평균은 46.8세이다. 위기의 중년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통계다. 여러분은 사랑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고 싶은가? 50의 나이에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을 정의한다면? 용기와 포기 사이에서 갈등하는가? 마법의 주문을 외우며 세뇌하고 있지는 않은가? 산전수전 공중전의 전우애로 포장하지는 않는가? 50대에 다시 쓰는 사랑일기에 어떤 사람으로 채우고 싶은가?
"나는 50의 나이에 다시 쓰는 사랑 일기가 다시 그대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