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가 버거운 아이들
"숲과 나무"
숲 속에 들어가면 전체 숲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멀리 떨어져 나와 헬리캠의 시선으로,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바라봐야 전체 숲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숲은 잡초하나 들꽃 한송이 개미 한 마리... 작은 것들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숲이 먼저냐? 나무가 먼저냐?
닭과 달걀 논쟁? 보다는 답이 쉽게 나오는 것 같다.
인간의 제한적인 시야와 안목으로는 주어진 상황에서 전체를 가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디까지를 전체의 범주에 포함시킬 것인지도 개인에 따라 가치와 기준이 달라진다.
인간에게는 부분이 먼저다.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천장에 매달린 모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부분을 보는 시작이다.
눈앞에서 나만 바라봐주는 엄마, 아빠로부터 부분이 시작되어 수많은 부분들이 누적되고 연결된다.
엄마 아빠라는 부분이 가족이라는 전체가 되고, 이 가족들이 모여 마을이 되고, 학교와 사회 공동체로 확장되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는 부분이 먼저이다.
그래서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부분들을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나태주-
나태주 시인의 이 시처럼 풀꽃에 관심을 기울여 쪼그려 앉아 자세히 들여다볼 줄 알아야 오래 보게 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고 세밀하게 관찰하여 부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면 비로소 전체의 범위로 확장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다. 작은 전체로부터 큰 전체에 이르는 가치와 기준이 적용된다면, 부분이 전체 속에 안착하면서 전체와 부분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세상이 점점 더 부분에만 관심 갖게 만든다.
우리, 공동체, 집단, 연대 같은 단어를 일상에서 사용할 기회들이 줄어든다.
가상공간이 아닌 현실에서 관계 맺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아이들은 학교 아니, 교실이라는 작은 전체에서도 관계 맺기가 어려워진다.
관계의 어려움은 시야를 더 좁힌다.
성장과 함께 커져야 할 전체가 사라지고, 점점 더 부분으로만 좁아진다.
발달단계를 역행한다.
청소년이 되어도 다시 천장의 모빌과 눈앞의 엄마만 쳐다보는 부분으로 퇴행하여 전체가 버거워진다.
아이들과 수업할 때 부분에만 함몰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잠시 멈춰서 전체를 바라보도록 지도한다.
그러면 지금 함몰되어 있던 그 부분 외의 다른 관계들이 보이면서 생각보다 간단하게 정리가 된다.
인생에서 이런 류의 경험이 꽤 많음에도 전체와 관계를 잘 맺기는 쉽지 않다.
인간은 개인이라는 작은 부분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작은 개인이 자세히 그리고 오래 봐서 사랑스러운 부분으로 안정될 때 전체와의 관계 맺기는 수월해진다.
우리 아이들이 관계 맺기가 수월해져서
관계 맺어진 전체의 종류가 다양하기를, 또 깊어지기를 바란다.
현재를 살아가는 또 미래를 살아갈 우리의 아이들이 전체와 기꺼이 관계 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