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전이된 아이들
최근에 철학자 한병철의 <불안사회>를 읽었다.
오래전 <피로사회>를 의미 있게 읽었던 터라 현시대의 '불안'을 어떻게 다룰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불안을 전면에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 개념인 희망에 대한 여러 논의들을 심도 있게 고찰한다.
불안을 다루는데 왜 희망을 논하는가?
하벨(Vaclav Havel)은
'희망은 어떤 것이 잘될 거라는 확신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되는지와는 상관없이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확신이며, 희망은 모든 예측이나 계산과 무관하다. 희망은 일의 결과와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불안하기 때문에 희망을 찾아 나가야 할 것 같지만,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희망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희망은 결과가 아닌 의미 있는 것에 가치를 두어야 가질 수 있다.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온전한 의미로의 부모가 아닌, 좁은 의미로 학생을 둔 부모)를 만나다 보면,
교육현실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힌 학부모들의 자녀들은 여지없이 기저에 깔린 불안을 가지고 있다.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 모른 채 실체가 없는 불안을 없애보려 애쓰지만 불안이 없어지기는커녕 가중될 뿐이다.
나도 대한민국 교육 속에서 두 아이를 키워봤기 때문에 불안을 유발하는 교육제도와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황이 어떤 건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불안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들의 인생 전체를 함께 할 "부모"의 관점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부모"의 역할을 "학부모"로 대체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미래가 성적과 대학교 간판이라는 결과에 귀결되지 않았고,
학창 시절에 시행착오가 있을지라도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여 나름의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낼 것이라는 확실한 희망을 가졌다.
불안한 상황을 유발하는 교육현실과 정보들을 논하기 이전에 "학부모"가 아닌 더 넓은 의미의 "부모"로 자녀들과 관계해야 한다.
학부모는 자녀가 학생 신분일 때만 성립되는 존재이므로 목적과 결과가 중요해진다.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관계에서는 근본적인 희망을 갖기 어렵다. 목적 달성을 위한 위험과 불안을 이겨내야만 결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당면한 문제들에 사로잡혀서 불안의 길을 가게 된다.
이런 학부모들은 불안이라는 기분 속에 처해있다.
불안이라는 기분이 수반된 "처해 있기" 때문에, 어떤 현상을 인식하기 이전에 처해 있는 기분에 지배를 받는다. 학부모 한 사람이 인식하지 못한 채 처해 있는 이 기분은 가정과 가족의 분위기에 녹아들어 자녀들이 처해있는 기분으로 전이되고 있다.
사랑하는 자녀를 둔 당신은
학부모입니까? 부모입니까?
희망은 믿음에 가깝다고 말한다.
희망은 단순한 기대나 소원과 다른 더 먼 것에서 온다.
학부모의 기대나 소원을 자녀들의 소원으로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학부모가 되기를 자처하여 사랑하는 자녀를 불안의 제공자로 전락시키지 말자.
학생의 부모가 아닌 그냥 부모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