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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만 Sep 20. 2022

망각의 강 레테 6

선불교의 직지인심     


선불교의 전승은 불립문자(不立文字)로 이어진다.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 탓에 알음알이를 경계한다. 성철(性徹)이 후학 선사들에게 불경을 읽지 말라고 강권한 이유다. 오로지 경전에 의지하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와는 다르다. 

깨달음은 부처의 말을 더듬거나 불탑을 쌓아 올린다고 가능한 게 아니다. 단번에 깨치는 수행에 의해서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각(覺)과 교(敎)는 엄연히 구분된다. 깨달음의 인가는 오직 대각(大覺)에 의지할 뿐이다. 스스로 깨달았다고 입을 여는 순간 깊은 오류의 바다에 빠지고 만다. 

선불교에선 가르침(敎)과 배움(學)은 물론 다듬기(修)마저 부정된다. 심지어 한국불교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임제는 “부처를 찾는 순간 부처를 잃는다”고 경고했다. 부처와 스승에 의지하지 않고 곧바로 직지인심(直指人心)과 맞닿아야 깨달음에 이른다. 살불살조(殺佛殺祖)의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가는 분심이야 말로 선(禪)의 뼈와 살이다. 

불교는 염화시중의 찰나를 놓치지 않고 꽃을 피웠다. 달마와 혜능을 거쳐 한반도로 전해진 후 지눌과 경허에 이르기까지 선(禪)의 흐름을 멈추지 않았다. 오로지 견성성불 하나의 일념으로 묵언, 무문관(無門關), 장좌불와에 이르는 고된 참구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불교는 억불숭유의 조선조를 거쳐 일제강점기 왜색으로 변했던 승복을 마침내 괴색(壞色) 청규로 돌려놓은 봉암사 결사로 중흥을 맞이했다. 부처의 영취산 전교(傳敎)에서 문경 희양산 봉암사로 이어지는 선불교의 도도한 흐름을 더듬어 본다.     

 

불립문자(不立文字)   

  

불교는 히말라야를 넘어 중국으로 건너와 도교(道敎)와 만났다. 중국은 도(道)의 나라다. 공자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可死)”라고 했다.

도는 아득한 무(無)의 공간에서 출발한다.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이미 도는 아니다. 인도의 불교는 중국 도교와 결합해 선종(禪宗)을 낳았다. 어느 사상이나 종교든 현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선(禪)은 산스크리트어로 명상을 의미하는 ‘디야나(dhyana)’에서 왔다. 이를 중국식 발음으로 옮긴 것이 ‘선나(禪那)’이다. 그 기원은 다시 부처와 제자 가섭이 주고받은 불립문자의 한 찰나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부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꽃 한 송이를 들어보였다.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혼란스러웠다. 말은 사라지고 꽃 한 송이만 덩그러니 허공에 남아 있었다. 오직 가섭만이 스승의 본뜻을 알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를 염화시중의 미소라 부르는 이유다. 

깨달음은 언어에 의지하지 않는다.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이어져 왔다. 선의 세계에서 깨침은 쌓아올리기보다 오히려 무너뜨림에 더 가깝다. 이를 가장 잘 보여준 선사가 마조(馬祖)다.  

중국의 선은 달마가 아닌 마조에서 비롯됐다는 말이 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마조는 견성(見性)을 위해 치열하게 수행을 하고 있었다. 말없이 그를 지켜보던 스승 회양이 물었다.

“무엇을 하려고 그토록 열심히 좌선을 하는가?”

“부처가 되어 보려고요.”

마조의 대답은 꿋꿋했다. 그러자 회양이 갑자기 기왓장 하나를 주워 갈기 시작했다. 스승의 느닷없는 행동에 이번엔 마조가 물었다.

“기와는 갈아서 무엇 하려는 겁니까?”

“거울을 만들려 하네.”

“나 참, 그런다고 기와가 거울이 되나요?”

마조는 스승의 행동이 기막혔다. 그러자 스승인 회양이 정색을 했다.

“기와를 갈아 거울을 만들지 못하듯 좌선만으로는 부처가 될 수 없네.”

순간 마조의 머릿속에 번개가 번쩍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조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자네는 지금 좌불(坐佛)을 익히고 있는 것뿐이야. 부처란 원래 정해진 모양이 없네. 좌불 흉내를 내는 건 부처를 죽이는 거나 다름없지.”

“제 모습을 감춘 도를 무슨 수로 볼 수 있나요?”

“마음의 눈으로 보는 거지.”

스승 회양은 문득 한 마디를 남겼다.

“삼매의 꽃, 애초부터 모양이 없으니

피고 짐이 따로 있을 리 있겠나.”     

마침내 마조의 마음 문이 활짝 열렸다. 회양의 목우 방식은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단번에 알을 깨고나오도록 유도했다. 한국 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에게도 비슷한 일화가 전해진다. 

경허는 구한 말 어지러운 세속을 멀리하고 계룡산 동학사에서 오직 참선 수행에만 몰두했다. 경허는 ‘나귀의 일도 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는 알쏭달쏭한 화두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었다. 

한 스님이 스승 영운에게 물었다. 

“불교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나온 영운의 대답은 엉뚱했다.

“나귀의 일도 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구나.”

이 어려운 화두가 생겨난 일화다. 경허는 밥 먹는 일조차 잊고 몇 달을 오로지 화두만 붙들고 있었다. 오매일여의 깊은 경지였다. 

어느 날 한 처사가 찾아와 경허의 제자에게 물었다.

“요새 자네 스님(경허)은 무얼 하고 있나?”

“소처럼 꼼짝 안하고 방에 앉아만 있습니다.”

“저런, 중노릇 잘못하다간 자칫 소밖에 더 되겠나.”

“그야 참선하지 않고 공양만 축내는 스님들 얘기지요.”

“하긴 소가 되어도 괜찮네. 콧구멍 뚫을 데가 없으면 말일세.”

대체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했다. 경허의 제자에겐 그 의미가 도무지 모호했다. 여기서 콧구멍은 곧 불성을 의미한다. 불가에서 도를 깨친 선사에게 ‘콧구멍이 누긋해졌다’고 표현하는 이유다.

제자는 영문을 알 길 없었다. 그러나 방안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경허는 갑자기 눈앞이 환해짐을 느꼈다. 그때까지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앉아 있었건만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밖에서 한 처사와 제자가 주고받던 말을 듣고 문득 깨달았다. 

경허는 마침내 깨침의 노래를 남겼다.

“홀연히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서

문득 깨달으니 삼천대세가 다 나의 집일세

유월 연암산의 길 아래에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이 태평가를 부르네.”

이후 경허는 스스로의 법명을 ‘깨달은 소’ 즉 성우(惺牛)라고 고쳐지었다. 마조와 한가지로 수행 도중 들은 공연한 말 한 마디 끝에 대오했다. 


즉심즉불(卽心卽佛)     


부처와 가섭이 주고받은 선(禪)의 은밀한 종지(宗旨)는 달마와 혜능을 거쳐 마조에 이르러 만개했다. 달마에 관해선 사실과 신화가 혼재한다. 인도에서 갈대를 타고 중국 해안으로 왔다는 설도 있다. 다분히 미화된 얘기로 들린다. 

달마는 눈을 부릅뜬 초상화로 우리에게 더 친숙하다. 수행 중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억지로 눈꺼풀을 떼어내 눈을 감을 수 없게 됐다. 

달마는 소림사에서 9년 간 면벽 수행했다. 소림 무예의 창시자로도 일컬어진다. 불가에서 깨달음에 이른 선사들을 ‘눈 푸른 납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달마 때문이다. 서역에서 온 그는 서양인의 푸른 눈을 지녔다. 

달마는 9년간의 면벽을 통해 ‘세상은 온통 쭉정이 뿐이다. 삼천대천의 안을 들여다보니 모두 텅 비어 있음’을 깨닫게 됐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양나라 무제는 달마를 추모하여 “보아도 보지 못하고, 만나도 만나지 못하니. 예나 지금이나 한탄스럽다”는 비문을 남겼다. 달마의 제자로는 혜가, 도육, 승부 등이 있다.

초조(初祖) 달마의 종지는 2조 혜가를 거쳐 5조 홍인, 6조 혜능으로 이어졌다. 

혜가와 달마 사이에도 선의 일화가 전해진다. 혜가는 달마를 찾아가 ‘불안한 마음’을 없애달라며 가르침을 청했다. 달마는 “너의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 왔느냐?”고 되물었다. 혜가는 “마음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습니다”며 낙담했다. 

그리고는 내내 달마의 답을 기다렸다. ‘눈 푸른 납자’가 그의 불안한 마음을 안심시켜주길 바랐다. 그러나 달마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끝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미 너를 편안케 하였다.”      

6조 혜능은 광동(廣東)사람이다. 지금이야 중국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이지만 당시 그곳 사람들은 오랑캐라 불렸다. 어느 날 금강경 한 구절을 듣고 문득 눈앞이 밝아져 5조 홍인을 찾아갔다.

“광동에서 왔다면 오랑캐가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부처가 되려 하느냐?”

홍인은 슬쩍 혜능을 떠보았다. 

“사람은 남과 북이 다르겠지만 불성에 그런 차이가 있겠습니까.”

혜능의 대답은 태연했다. 홍인은 혜능을 곁에 두고 장작 패는 일을 시켰다. 하지만 초라한 행색에 남방 출신인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처의 제자 가섭 역시 누더기 옷을 입고 있어 처음엔 대중들에게 무시를 당했다. 

오로지 부처만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의 절반을 가섭에게 내주며 그를 인정했다. 부처의 종지는 결국 가섭에게로 전해졌다. 부처가 열반하자 관 속에 누운 스승을 향해 가섭이 세 번 절했다. 순간 부처의 두 발이 관 밖으로 쑥 나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법(法) 인가인 셈이다. 

혜능은 누더기 옷을 걸치고 묵묵히 자신의 수행에만 열중했다. 어느 날 홍인이 제자들에게 게송 하나씩을 지어 올리라고 명했다. 그 가운데 하나를 뽑아 자신의 의발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그를 후계자로 인정하겠다는 뜻이었다. 

홍인에게는 신수라는 탁월한 제자가 있었다. 누구나 그를 으뜸으로 여겼다. 수행의 자세나 언행의 깊이에서 따를 제자가 없었다. 신수는 대뜸 게송을 지어 벽에 붙였다.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다

때때로 털고 닦아서

티끌 하나 없도록 해야 한다.

     

대중들은 이 시를 보고 감탄했다. 역시 신수구나. 하지만 홍인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마음에 차지 않아서다. 신수의 시를 본 혜능도 게송을 지어 벽에 붙였다.     


보리는 원래부터 나무가 아니며

밝은 거울 역시 받침대가 없네

원래 아무 것도 없거늘

어디에 티끌이 끼겠나.     


이 시를 본 홍인은 밤중에 몰래 혜능을 불렀다. 홍인은 자신의 가사와 밥그릇을 혜능에게 내주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5년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마라”고 당부하며 그 길로 떠나라고 명했다. 그에게 스승의 의발이 전해진 것이 알려지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서다.  

혜능은 15년간 수행한 후 조계(曺溪)에 절을 짓고 제자들을 길러냈다. 한국 불교 조계종은 그 조계에서 비롯됐다. 혜능은 남종 선을 크게 일으켰다. 신수는 북종 점교(漸敎)의 맥을 이어갔다. 남종은 단번에 깨닫는 돈오(頓悟)를, 북종은 조금씩 탑을 쌓아 올려 마침내 깨달음에 이르는 점수(漸修)를 주장한다.

한국 불교는 고려의 지눌이후 이 둘을 합쳐 단번에 깨친 후 조금씩 보완해 가는 돈오점수를 중심으로 삼았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성철은 확실히 깨닫고 나면 더 나아갈 곳조차 없다는 돈오돈수를 주장했다. 이 둘은 800년의 세월을 넘어 이른바 돈점(頓漸) 논쟁을 벌였다. 

혜능에게는 회양이라는 뛰어난 제자가 있었다. 혜능 밑에서 8년간 수도한 후 호남성 남악에서 제자들을 길러냈다. 마조는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마조의 선은 다시 임제로 이어져 마침내 한반도에서 큰 결실을 맺게 된다. 6조 혜능 이후 유일하게 마조에게만 조상 조(祖)자를 붙인다. 그만큼 불교에 끼친 영향이 크다. 

마조는 마음을 떠나 부처가 따로 없다고 했다. 제자가 “부처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즉심즉불(卽心卽佛)”이라고 답했다. 마음이 곧 부처란 의미다. 그러니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있을 수 없다. 

그와 함께 수행하던 제자 하나가 스승을 떠나 홀로서기에 들어갔다. 그가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문이 들렸다. 마조는 다른 제자를 보내 그를 시험해 보았다. 

“요즘 마조 스님이 좀 달라졌습니다.”

“뭐라고 하던가?”

“즉심즉불이 아니라 비심비불(非心非佛)이라고 합니다.”

“그 늙은이가 사람을 미혹시키네. 그가 뭐라고 해도 나는 오직 즉심즉불이라네.”

제자가 돌아 와 이 얘기를 전하자. 

“매실이 다 익었구나.” 

마조가 흡족해서 한 말이다. 매실이란 대매산(大梅山)에서 수행하는 제자 법상을 일컫는 말이다. 

즉심즉불과 함께 마조는 “평상심이 곧 도(平常心是道)이다”는 말을 남겼다. 마조는 범부처럼 행동하는 것과 성인군자인척 행세하는 것 양쪽 모두를 경계했다. 선과 악 구분에 집착하지 말고 오로지 평소 마음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도라고 했다. 

마조는 선(禪)에 관한 숱한 일화를 남겼다. 어느 날 대주 선사가 마조를 찾아 왔다.

“무엇 하러 왔는가?”

“불법을 찾으러 왔습니다.”

“자네 보물창고는 어디 두고 내게로 왔나. 나는 아무 것도 줄게 없네. 그딴 불법을 찾아 무엇에 쓰려고?”

“제 보물창고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리둥절한 대주 선사가 되물었다. 

“그렇게 묻고 있는 자네 자신이 바로 보물창고란 말일세. 자네 안에 있는 물건을 무엇 하러 바깥에서 구하려 하는가.”

그 말에 문득 깨달은 대주 선사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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