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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만 Sep 21. 2022

망각의 강 레테 8


무문관     


깨달음은 홀연히 찾아온다. 화두와 깨달음의 인연은 선사들마다 다르다. 성철의 도반인 향곡은 3년을 밤과 낮을 잊고 정진했으나 한 소식조차 듣지 못했다. 어느 날 세찬 바람이 문짝을 때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문득 깨닫게 됐다. 

곧장 스승을 찾아갔다. 그의 경계가 달라진 것을 본 스승이 “한 마디 일러라”고 말했다. 향곡은 대뜸 방바닥의 목침을 발로 걷어 차버렸다. 

“다시 일러라.”

그러자 비로소 향곡이 입을 열었다.

“천 마디 만 마디가  모두 꿈속에서 꿈을 얘기한 것일 뿐이니, 모든 불조께서 다 나를 속인 겁니다.”

스승은 그 자리서 향곡을 인가했다. 이처럼 깨달음의 인가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진제는 향곡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진제의 화두는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었다. 즉 부모가 태어나기 전 본래 모습을 말한다. 아득한 태초의 원래 그대로 나다. 

진제는 느낀 바 있어 향곡을 찾아 갔다. 향곡이 대뜸 “안다고 해도 너를 때릴 것이고, 모른다고 해도 때릴 것이다”고 다그쳤다. 진제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향곡은 그 자리서 진제에게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라는 새 화두를 내려주었다. 

높은 나무에 입으로 가지를 문 채 매달린 사람의 얘기다. 그런 상태로 누가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물으면 어찌하겠느냐는 화두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되고, 입을 열면 떨어져 죽게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진제는 이 화두를 붙잡고 7년 간 정진한 끝에 비로소 깨침의 노래를 불렀다. 그런 다음에야 향곡의 인가를 받았다. 이처럼 법(法)인가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진제 직전의 종정이었던 법전은 절구통 수좌로 유명했다. 한 번 좌복 위에 앉으면 도무지 일어설 줄 몰랐다. 그런 법전이 참구한 화두는 ‘무엇이 너의 송장을 끌고 왔느냐?’였다. 지견이 생겼다 싶어 성철을 찾아갔다.

“무엇이 너의 송장을 끌고 왔느냐?” 성철이 물었다. 법전을 말없이 주먹을 내밀었다.  

“다시 일러라.”

이번엔 “아이고, 아이고!”하며 곡을 했다. 그러나 성철은 다시 같은 질문을 던졌다. 거기서 꽉 막혔다. 성철이 벼락같이 일어나 법전을 밖으로 밀쳤다. 이후 법전은 정진에 정진을 거듭한 후 마침내 성철에게서 인가를 받아냈다.      

깨우침의 한 순간을 위해 수행자는 치열하게 화두와 싸움을 벌인다. 두 평 남짓한 방에 홀로 들어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오로지 참선에만 몰두하는 무문관이라는 생사를 건 수행방식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스스로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나오지 못하게 아예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다하루에 딱 한 번 한 끼 먹을 것만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누구와도 대화할 상대가 없는 철저한 혼자절대고독의 공간이다다음은 어느 무문관 수행자의 실제 일기 중 한 구절이다.

 

12시가 넘어서자 잠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진다. ‘아 잠이란 이렇게도 모질구나’ 생각하고 몇 번씩 보행을 하고 좌복에 앉았다… 결국 못이긴 채(사실은 못 이겼다잠시 의자에 기댔지만 곧 화두는 멀리 도망가 버렸다피로하고 힘들지만 조금만 더 정진하자다시 이 뭣고 이 뭣고를 되뇐다이 뭣고 도대체 부모에게 태어나기 이전 나의 본래 면목이 뭣고!  뭣고하는 이놈이 뭣고’ 주인공아정진에 진척이 없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힘써 나가야 한다알겠나.

 

여기서 이 뭣고?는 불교의 화두중 하나다내가 누구냐고 묻는 거다주인공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길을 끈다수행자는 스스로를 주인공이라 부른다천상천하 유아독존수처작주(隨處作主:어디에 가든 주인공이 되어 자유로워라)의 그 주인공이다이런 극단적 수행을 서슴지 않지만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식은 흔하게 들려오지 않는다   

   

경허의 세 달(三月)     


한국 불교는 구한말 나라의 운명처럼 위태로웠다. 조선의 억불숭유 정책으로 크게 다친 불교는 좀처럼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스러져 가는 불교를 일으킨 선사는 경허(1849~1912)다. 한국 불교의 중흥조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의 문하에서 수월, 혜월, 만공 등 ‘경허의 세 달’과 한암, 효봉 등 숱한 고승들이 배출됐다.  

경허는 동학사에서 수행 중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공부가 죽음의 두려움을 떨쳐내기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이후 화두 일념으로 더욱 정진한 끝에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만년에는 함경도 갑산 등지에서 머리를 기른 채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승속(僧俗)의 구분에 억매이지 않은 채 무애의 삶을 살던 중 1912년 4월 25일 “마음 달 외로이 둥그니 빛이 만상을 삼켰구나. 빛과 경계조차 다 잊으니 다시 이 물건은 무엇인고”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홀연히 떠나갔다. 

그의 열반은 함경도 일대를 떠돌며 스승의 죽음에 대비해온 제자 수월에 의해 알려졌다. 수월은 독특한 방식으로 깨달음에 이른 선사였다. 수월은 글을 읽지 못했다. 경허는 그런 수월을 위해 오로지 천수다라니경 하나만 외우게 했다. 

수월은 천수다라니경만으로 오매일여의 경지를 체득했다. 하루는 그가 기거하는 암자에서 큰 불기둥이 일어나 인근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산불이 난 줄 알고 달려왔으나 수월의 몸에서 나온 방광이었다. 

청담이 수월과 함께 산길을 걷고 있었다. 수월의 주변에 몰려들던 산짐승들이 이상하게 청담을 보면 달아났다. 그 이유를 묻자 수월은 “자네 마음에 아직 살생심이 남아 있어 그렇다네”라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그 살생심을 없앨 수 있습니까?”

“자네와 그 짐승이 한 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산짐승들과도 잘 어울렸던 수월은 결가부좌를 한 채 입적했다. 그의 죽음이후 이레 동안이나 뒷산에 방광이 일어났다.        

경허는 입적하기 8년 전 만공에게 자신의 뒤를 맡겼다. 만공에게서 고봉, 혜암, 전강, 금오, 춘성, 일엽 등 많은 고승들이 나왔다. 수덕사를 중심으로 한 덕숭문중은 만공에게서 뻗어져 나온 가지다. 만공은 살벌했던 일제강점기 일본 총독에게 호통을 칠 정도로 태연했다. 

미나미 총독이 전국 본산 31주지들을 모아 놓고 사찰령(寺刹令)을 통과시키기 위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모두가 숨죽이며 입도 뻥긋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만공이 벌떡 일어나 돌연 일갈했다. 

“청정 본연한데, 어찌 산하대지가 생겨났는가? 전 총독 데라우치야 말로 조선 불교를 망쳐 놓은 사람이다. 정부가 불교를 간섭하지 않을 때 조선 불교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만공의 벼락같은 소리에 일본인 간부들은 사색이 됐고, 나머지 주지들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 말을 남긴 만공은 유유히 회의장을 빠져 나왔다. 

만해 한용운과 만공은 도반이었다. 만공의 사자후를 전해들은 한용운은 그 자리에 자신이 없었던 것을 한탄하며 기뻐했다. 

“스님, 어찌 큰 소리만 질렀소? 기왕이면 몽둥이찜질도 좀 해주지 그랬소. 하하하!”

만공이 대답했다.

“미련한 곰은 몽둥이를 들지만 영리한 사자는 말로 해도 되지.”

만공은 뿌리 깊은 나무 같았다. 그러자 만해는 “새끼 사자는 큰 소리를 내지만 큰 사자는 그림자만 보여도 혼비백산 하거늘”이라고 응수했다.      

만공과 그의 스승 경허 사이에도 숱한 일화가 전해진다. 두 사제가 길을 걷고 있었다. 만공은 등에 무언가를 잔뜩 지고 있었다. 

“무거우냐?”

경허가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아닙니다.”

“무거워 보이는데.”

당연하지. 

“내가 가볍게 만들어 줄까?”  

“예!”

제발 그렇게 해 주세요. 무거워 죽겠거든요. 그러자 경허가 갑자기 길 가던 아녀자의 몸을 더듬었다. 여인이 소리친 건 당연한 일. 그 소리를 듣고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어이쿠, 큰 일 났네. 어쩌자고 저, 저런. 만공의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달려!”

갑자기 소리치며 경허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남정네들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고 있었다. 

만공도 냅다 뛰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두 사제는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걸음을 멈추었다. 

“좀 전에 뛸 때도 짐이 무거웠느냐?”

“아뇨.”

경허의 말이 만공의 귀에 벼락처럼 들렸다. 선가(禪家)에선 옷에 불이 붙은 것처럼 화두일념에 빠져 보라고 한다. 옷에 불이 붙으면 온통 그 생각뿐이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 작은 틈조차 없다.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만약 삼세의 모든 부처를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본성을 보고서 모든 것이 마음이 지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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