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좋아하는 식물은 목련이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배웠던 것은 '피아노'였고 그때 '목련 피아노 학원'을 다녔기 때문이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냐고?
아주 어릴 적 이야기다. 친척 집에 놀러가서 보게 된 피아노가 너무 멋있고 아름다워서, 나도 피아노를 치고 싶었다. 비슷한 시기에 TV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봤었는데, 실물로 나무 피아노를 보고 만져보니 신비로웠다. 남의 옷을 빌리는 것보다 남의 욕망을 빌리는 게 훨씬 쉽다고 했던가? 사촌언니의 욕망을 냉큼 빌린 내가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던 그때가 5살이었고, 엄마는 아직 너무 어리니까 한 살만 더 먹어서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 피아노 학원을 같이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피아노학원 이름은 '목련 피아노 학원'이었는데, 정말 가는 길에 목련이 흐드러지게 펴있고 꽃잎이 막 떨어지던 게 생각난다. 난 막 떨어진 하얀 목련 꽃잎을 주으려고 피아노 가방을 든 채로 쪼그리고 앉아있곤 했다. 그렇게 하얀 목련 꽃잎을 열심히 골라 주워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피아노 학원에 도착해서 그 꽃잎을 꺼내면 이미 다 멍들어서 갈색 꽃잎이 되어있었다. 6살의 나이에, 아 영원한 건 없구나, 하는 감각을 깨달았던 것 같다. 정말 아름다웠는데, 그 아름다움은 너무 금방 사라졌다. 피아노에 대한 사랑도 영원하지 않았다.
목련 피아노 학원에서 행복하게 피아노를 배우다가 이사를 다니면서 몇 번 피아노학원을 옮겼다. 나이를 먹고 진도가 나가면서 회당 레슨비는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피아노를 처음 배우고 몇 년 동안은 음대를 가고 싶을 정도로 피아노가 좋았고 연습도 열심히 했지만, 체르니 40에 들어가면서부터 의자에 앉아 우는 날이 많아졌다. 악보는 점점 어려워지고 재즈 피아노와 화성 등을 배우면서 코드만 보고 반주를 지어 치는 걸 해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게다가 집에서는 우리 집안에 음악을 하는 사람이 없고, 가족들은 "넌 음악적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다"고 자꾸 이야기했다. 나도 내 재능이 부족해 괴로운데, 재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속상했다. 더 잘하고 싶은데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답답했다. 가족들은 날 음대를 보낼 맘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나는 피아노를 너무 오래 배웠었던 모양이다. 선생님의 눈치와 가족의 눈치가 보이는데, 그래서 더 피아노를 잘 치고 싶은 동시에 너무 치기 싫어서 숨이 막혀왔다.
그때 난 고작 초등학생이었다. 11살이나 12살 정도였을 거다. 사실 아무도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라고 한 적도, 피아노를 그만두라고 한 적도 없다. 피아노 앞에 앉아 몇 번이고 울음이 터졌던 내가 더 이상 못하겠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나쁜 이별이 그렇듯, 한참 동안은 피아노를 치는 게 두렵고 치기 싫어서 잘 치지 않게 되었다. 피아노를 놓아버리자 가족들은 취미로라도 치라고 했지만, 공부라는 핑계로 멀어졌다. (중학교에 가자마자 전교 1등을 한 건 피아노를 잊기 위해 입시공부에 매진했기 때문이었을지도) 주위에서 피아노 칠 줄 아는 사람을 찾을 때에도 나서지 않았다. 방 한 구석에 피아노가 있는데도, 피아노를 치는 게 무섭고 싫은 채로 몇 년을 보냈다. 먼지가 쌓이던 피아노를 다시 닦고 조율해가며 취미 연습을 시작한 건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비교적 간단한 뉴에이즈 곡이나 익숙한 멜로디인 각종 OST곡들을 치면서 다시 재미를 찾았다.
아직도 난 피아노를 잘치지 못 한다. 그렇게 오래 배웠고 치기 싫어서 울었던 게 무색하게 말이다. 대신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오래 피아노를 배웠던 덕분에 악보를 읽을 줄 알고, 음의 관계를 알고, 장조와 단조를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 다른 악기를 배울 때 참 편했다. 어릴 땐 오카리나와 플룻을 배웠고, 커서는 기타와 우쿨렐레를 배웠다. 그리고 아주 얕은 지식이지만 피아노 클래식 곡을 듣고 어떤 작곡가의 곡인지 어렴풋이 떠오른다. 감사한 일이다.
인생의 첫 도전이자 첫 상실감을 주었던 피아노. 그 시작을 함께한 꽃이 목련이다. 아직도 난 목련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난다.
설레는 봄이 왔다,
근데 영원한 건 없다,
질리도록 끙끙대지 말고 즐기면서 하자,
그 어떤 가스라이팅에도 내 욕망을 져버리지 말자.
+여담
돌이켜보면 피아노를 배우고싶다는 욕망은 사촌언니의 욕망보다, 주위 어른들이나 미디어를 통해 심어진 욕망일 수도 있겠다. 그 시기에 피아노 교육은 '중산층의 상징' 같은 거여서 가족들은 원래도 피아노를 가르치려 했다고 한다. 본가 내 방에는 당시 중산층의 상징인 '목재 영창피아노'가 있다.아마 내가 처음으로 받은 가장 비싼 선물이 피아노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내 방에 있는 피아노를 가져갈 만큼 큰 집을 언제쯤 구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다음 집은 꼭 투룸으로 가서 이어폰을 꼽을 수 있는 키보드를 사고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담 2)
이 글을 쓰고 1년 뒤에 정말로 나는 투룸으로 이사했고, 거실에 이어폰을 꼽을 수 있는 키보드(전자 피아노)를 두었다. 목재 피아노를 놓은 것보다는 덜 성공했지만, 전자 키보드를 둘 수 있을만큼은 성공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