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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나 Feb 04. 2022

편식하는 어린이, 급식시간에 살아남기

김치를 다 먹어야 집에 갈 수 있다고요?


곧 서른인 나는 아직도 생 김치를 먹지 못한다.


김치를 못 먹는다고 말하면, 자주 듣는 질문들이 있어 미리 답하자면, 매워서는 아니다. 김치를 불에 익힌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김치전은 모두 먹는다. 막 담근 겉절이도 잘 먹는다. 다만 적당히 익은 배추김치, 백김치, 파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오이소박이를 못 먹는다. (생김치뿐 아니라, 오이도 못 먹는다)


어릴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지금보다 삶이 훨씬 더 괴로웠다. 지금은 김치를 못 먹는다고 나무라는 사람이 없지만, 어릴 때는 김치를 못 먹는다는 것만으로 매일 급식시간이 서바이벌 게임 같았다.


'다 먹어야 살아남는' 게임



김치를 못 먹으니 짓궂은 아이들에게 "한국인이 아니"라는 둥, 매국노라는 둥, 재수 없다는 둥, 여러 오해와 놀림도 당했다. 그래도 그런 놀림은 참을만했다. 나는 선생님에게 혼나거나, 집에 늦게 가거나, 벌점을 받는 게 더 두려웠다.


공부도 잘하고 어른들 말씀도 잘 듣는 모범생이었던 내가 단 한 가지 지키지 못하는 규칙이 바로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기'였다. 학교에서도 먹어보려 애쓰고, 집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노력했지만, 어떤 음식은 입에 넣으면 속이 뒤집하고 토할 것 같았고, 또 어떤 음식은 씹어서 삼켜지지 않았다. 위장도 약하고 알레르기와 천식도 있어서, 식성이 예민하고 까다로웠다.



문제는 학교에 가서 급식을 받으면 무조건 (거의 매일) 김치가 나왔고, 김치 외에도 내가 잘 먹지 못하는 반찬이 하나씩은 같이 나왔다는 거다. 남들은 맛있다고 하는 반찬도 내게는 맛이 없었으니, 가끔 세 가지 반찬 전부 먹지 못하는 반찬일 때도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엄마가 학교에 부탁을 하셔서, 내가 먹지 못하는 반찬을 받지 않거나 남겨도 되도록 해주셨다. 근데 모든 담임선생님이 설득이 되는 건 아니었다.


"댁의 따님만 특별대우해드릴 수 없습니다. 반찬을 남기면, 청소를 하거나, 벌점을 받아야 해요"



학교가 끝나고 친구와 함께 집에 가야 하는데, 바로 학원도 가야 하는데, 집에 늦게 가면 엄마가 걱정하는데... 잔반을 남겼다는 이유로 청소를 해야 한다니,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었.



이 문제를 나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편식하는 어린이의 치열했던 급식시간,

제때 집에 가기 위해 노력했던 편식쟁이 어린이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다.




방법 #1. 친한 친구에게 맛없는 반찬을 먹어달라고 부탁한다.


당시 나는 친구가 많지 않았지만, 몇 명씩은 나와 함께 어울리고 등하교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학기 초에는 내가 못 먹는 반찬을 최대한 조금 받은 후에 친구들에게 먹어달라고 부탁했다. 초콜릿이나 새콤달콤 같은 걸 주기도 했고, 맛있 반찬을 주었다.


새삼 떠올려보니, 나의 사교성은 나의 약함으로부터 출발했구나, 내가 못 하는 것을 남에게 부탁하면서 관계쌓기를 배웠구나, 깨닫는다. 보통은 근처 자리에 앉은 여자인 친구들이나 나와 함께 집에 가는 친구들이 먹어줬는데, 그때의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진다.



방법 #2. 먹성이 좋아 보이는 애들에게
맛없는 반찬을 먹어주면 맛있는 반찬을 준다고 하고 부탁한다.


그러나 1번의 방법은 한계가 있다. 매일 친구들이 내 김치를 먹어줄 수는 없다. 아마 나라도 나와 친구하기 싫어질 테다. 김치를 싫어하는 친구는 싫어하는 대로 "나도 먹는데, 너는 왜 안 먹으려고 해?" 의문을 품고, 김치를 좋아하는 친구는 좋아하는 대로 "이걸 왜 못 먹어?" 의문을 품었다. 또 다른 친구는 매일 김치를 먹지 못해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나를 보며 질린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교실을 둘러보며 한 번도 말을 걸어보지 않은 친구들에게까지 말을 걸기로 했다. 처음엔 참 어려웠다.


친한 친구들끼리 책상을 돌려서 모인 채로 밥을 먹는 급식시간에, 나는 내 급식판을 들고일어나서 내 무리를 떠나, 다른 무리의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서 그 아이를 톡톡 쳐서 부르고 "내 소시지 볶음 줄게, 김치랑 묵무침 먹어줄래?" 이렇게 거래를 제안했다. 단칼에 거절당할 수도, 거래가 성사될 수도, 또는 좀더 설득을 해야 할 수도 있는 순간, 그 긴장감 속에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더 사교적인 어린이가 되었다. 부탁했을 때 잘 들어줄 것 같은 인상, 성격, 먹성을 가진 아이를 찾아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 보통은 남자애들이었다.


부탁할 상대를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부탁하는 타이밍도 중요했다. 급식을 받자마자 부탁하면 안 되고, 그 아이가 맛있는 반찬을 다 먹어갈 때쯤, 내 반찬은 모두 손대지 않은 채 깨끗한 채로 가서 부탁해야 한다. 한 명에게 부탁해서 거절당한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오늘 소시지 볶음이랑 내일 맛있는 반찬 나오면 줄게, 오늘 김치만 먹어줘" 이런 딜도 했다. 그래도 거절당하면, 그 옆 자리에 다른 친구에게 또 부탁하거나, 다른 자리에 앉은 아이에게도 가서 또 부탁했다.


때로 맛있는 반찬이 나오는 날이면, 내 자리는 인기가 많아지기도 했다. 먹성이 좋은 남자 애들은 먼저 와서

"김치랑 콩나물 먹어줄게, 불고기 다 주라"

"나는 오늘 김치랑 콩나물, 내일 김치까지 먹어줄게, 불고기 주라"

"야 내가 먼저 왔어"

"꺼져, 얘 김치 내가 더 자주 먹어줬거든? 그치?"

이렇게 싸우는 식이다.

(갑을이란 단어도 모를 때였지만) 내가 을인 줄 알았는데, 때로 나는 결정권을 가진 갑이 되기도, 다시 을이 되기도 했다.


내 맛있는 반찬에 먼저 침을 묻힌 뒤로 김치는 다 먹어주지 않고 남겨버리는 아이를 만나서, 다시는 이 아이에게 부탁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날도 있고. 어떤 아이는, 나를 측은하게 생각했는지 자기가 배가 안 부른 날은 2일이고 3일이고 김치를 먹어주기도 했다. 동정의 눈길을 받는 게 썩 유쾌하진 않지만, 반찬을 남겨 혼나거나 청소를 하는 것보다야, 김치를 팔고 동정의 눈빛을 받는 편이 훨씬 나았다.


이런 거래(?)가 반복되자, 나중에는 내 반찬을 거래하는 남자애들 리스트가 생겼고, 그날그날의 반찬에 따라 알맞은 남자애와 거래를 했다. 생선 반찬을 좋아하는 애, 양념이 많은 제육볶음을 좋아하는 애, 햄을 좋아하는 애, 빵이나 디저트류를 좋아하는 애, 맛없는 반찬 중에서 무는 절대 먹어주지 않는 애, 김치를 좋아하는데 덜 익은 건 안 먹는 애, 나는 같은 반 애들의 식성을 기억해가며 매일매일의 잔반 문제를 해결했다.



방법 #3. 입에 넣고 가서 뱉는다



2번의 방법도 실패하는 날이 있다. 반찬 조합 때문인지 아이들의 컨디션이나 변덕 때문인지, 아무튼 아무도 거래해 주지 않는 날도 있었고, 전학 온 첫날처럼 서로 아무도 모를 때는 1번이나 2번 모두 불가능했다. 그리고 어떤 담임선생님은 위생이나 편식 고치기 등을 이유로, 학생들끼리 반찬을 주고받는 걸 금지했다. 뒷자리에 앉으면 어떻게 몰래 거래를 할 수 있지만, 앞자리에 앉으면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급식 시간이 끝나가는데, 해결하지 못한 김치는 남아있고, 잔반을 남기면 청소나 벌점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내가 최후로 선택한 방법이 바로 입에 넣고 가서 뱉기였다. 다른 반찬과 밥과 국을 다 먹은 후에 한 숟갈 정도의 밥과 한 입에 들어갈 만큼의 김치만 남았을 때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냥 입에 넣으면 안 되고, 입에 밥을 넣고 밥 사이에 국물을 잘 털어낸 김치를 밀어 넣는다. 마치 만두의 소를 넣듯이, 가운데에 김치를 살포시 넣는다. 입안 어딘가에 김치가 닿으면 토할 것 같았기 때문에, 밥 안에 김치가 폭 싸이도록 설계하는 거다. 이때 포커페이스가 중요하다. 선생님이 보지 않을 때 입에 빠르게 밥과 김치를 넣은 후 다 비운 식판을 앞에 내고 나서,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걸어간다. 마치 몰래 미션을 수행하는 스파이처럼 자연스럽게 앞을 보고 걷지만, 속으로는 불안감에 심장이 쿵쾅거리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화장실에 가서 문을 닫고, 휴지를 뜯어 뱉고 변기에 넣어 버린다. 제발 변기가 막히지 않기를 기도하며 변기 물을 내리고, 물이 잘 내려가면 모든 증거가 사라진 완전범죄가 된다.



방법(?) #4. '김치 먹으면 토하는 애'로 포지셔닝한다


1,2,3번의 방법으로 몇 년간의 급식시간을 잘 넘겨온 나에게 더 큰 시련이 왔다.


학생들끼리 반찬을 나누지도 못하게 하고, 몰래 입에 넣고 뱉는 것도 금지하고, 모두가 편식하지 않고 급식을 다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담임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급식시간에 일어나는 것도 금지, 자리를 바꿔 앉거나 모여 앉는 것도 금지되었다. 제자리에서 급식을 먹어야 했고, 남기면 안 되었다.


나는 다 비우지 못 한 급식판을 두고 죄인처럼 앉아있었고, 나 빼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급식판을 비우고 앞에 내고 왔다. 몇 명 남지 않았을 때, 선생님은 끝끝내 급식판을 비우지 못 한 몇 명의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서 이유를 물어보았다.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하면, 알레르기 내용을 메모한 뒤에 '어머니께 확인하겠다'라며 잔반을 버리게 해주셨다.


내 차례가 왔다. 선생님은 나에게 알레르기가 있냐고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알레르기는 없지만 김치 같은 절임음식이나 잘 씹히지 않은 질긴 음식을 먹으면 위장이 안 좋아 역류한다고 이야기했다. 부모님께 확인해도 된다고도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되바라진 것 같아서 참았던 것 같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참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무튼 12살짜리 어린이가 '위장이 안 좋아 역류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믿지 않은 그 선생님은 자기 앞에서 억지로 김치를 먹게 시켰다. 나는 긴장해서 위장이 요동치는 채 김치를 입에 넣고 씹다가, 거짓말처럼 교실 바닥에 토해버렸다. 당황한 선생님은 알겠다며 남은 잔반 버리고 그 토를 치우라고 했다. 나 역시 당황했고, 창피하고 속상했지만, 한편으로는 통쾌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못 먹는다고 했잖아요!'라고 속으로 외쳤다. 이후로 '김치는 남겨도 되는 애'가 되었다. 그다음 해에도 어떤 애들은 지나다가다 '쟤는 김치 먹으면 토하잖아'라는 말을 했고, 나는 '김치 먹으면 토하는 애'로 기억됐을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앞에서 김치를 먹고 토했던 당시에는 속으로 통쾌했고, 때로 친구들 앞에서도 회상하며 이야기했지만, 그 총체적인 기억은 유쾌보다는 불쾌에 가까웠다. 교실 앞에 서서 선생님과 반 친구들 앞에서 억지로 배추김치를 입에 넣었던 순간, 눈물만 흘리지 않았다 뿐 나는 거의 울고 있는 기분이었고, 결국 그 시고 자극적인 김치를 씹다가 우욱 하고 토가 올라와 방금 삼겼던 급식을 토하다가 멈춘 것, 이런 기억들은 오래도록 내 몸에 남아 '김치를 싫어하는 어른'으로 자라게 했다.


그때도 '이건 뭔가, 너무 억울하다'라고 생각했고, 10대 후반이 되어서 '그때 그 일은 정말 불합리하고 부조리했다'라고 회상했고, 20대가 되어서야 '그건 폭력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먹기 싫은 음식을 먹이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폭력이고, 어린이라는 이유로 급식을 남기지 않고 먹어야 한다고 강요받은 것 역시 폭력이라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잔반 남기는 걸 허락해 주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잔반을 못 남기게 하거나, 페널티(벌점, 청소 등)를 주는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꼼수(?)를 쓰며 급식시간을 버틴 이야기를 구구절절 썼지만, 가끔씩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어릴 때 먹지 못하던 음식을 커서 먹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나, 먹지 못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인다고 편식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담임선생님들은 아예 먹지 못할 것 같은 반찬은 받지 말라고 하거나, 똑같이 받더라도 양을 적게 받도록 해주었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남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중에 나는 성인이 되고 동생이 학교에 다닐 때 무료급식 정책 때문에, 애들이 급식 받자마자 맛없으면 버리고, 매점이나 주위 음식점에서 음식을 사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와,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라떼는'을 시전하고 싶고, 너무하다 싶고, 어이가 없고 그랬다. 먹지 못하는 반찬을 억지로 먹이던 것도 폭력적이지만, 누군가는 그 급식을 꼭 먹어야 하는데 주위 친구들이 그 급식을 '못 먹을 음식'이라며 통째로 잔반통에 버리고 다른 음식을 사 먹는다면, 그 환경도 꽤나 폭력적일 거다.



독립해서 직접 장을 보고 밥을 짓고, 반찬을 해서 먹는 나이가 되니, 급식을 남기지 못하게 했던 선생님들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누군가 일찍부터 미리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입에 맞지 않다'거나 '입맛이 없다'라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버릴 수 있다면, 그 역시 부조리하다. 급식이 뿅 하고 생긴 게 아니라, 누군가 대량으로 식재료를 구매하고 옮기고, 영양사 선생님이 고민해서 메뉴를 짜고, 급식 노동자들이 고생해서 만드신 다음 학생들의 식판에 오르는 걸, 크면서 자연스레 알게 됐다. 그래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을 만큼만 받고', '일정한 시간 동안 먹을 수 있는 만큼 먹고', '도저히 못 먹겠는 음식만 잔반함에 버리도록' 한 선생님들의 규칙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중고등학교 때는 거의 그 정도 합리적인 규칙 안에서 급식을 먹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는 중식과 석식을 모두 학교에서 먹었지만, 김치를 못 먹는다고 스트레스 받았던 기억은 없다. 어린 초등학생일 때만 폭력적인 잔반 안 남기기를 강요당했다.



매일 어떻게 하면 잔반을 합법적으로(?) 남길 수 있을까, 몰래 버릴 수 있을까, 궁리하던 편식쟁이 어린이는 이제 비건 지향을 하고,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어떤 음식이든 '남기지 않기 위해 애쓰는' 어른으로 자랐다. 어릴 때는 그렇게 '남기지 말라'는 말이 듣기 싫었는데, 그 말을 내가 하고 있다. (물론 소비자가 남기지 않는 것만큼이나, 생산하는 쪽에서 '남기지 않을 적당한 양'을 만들어 파는 것도 중요하다.) '남기면 논비건!'이라고 외치는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오늘 점심도 '남기면 논비건!' 속으로 외치면서 어제 해둔 밥과 남은 찌개를 다 먹었다.




김치 못먹는 편식쟁이 어린이, 친구가 해준 비건 김치볶음밥과 엄마가 해준 비건 김치찌개로 저녁 먹는 K-비건으로 성장하다!



앞으로 살아갈 많은 날들, 수많은 식사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을 만큼만 준비하고 남기지 않고 다 먹으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직도 생 김치는 먹지 않지만, 집에 비건 김치가 있으면,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 때로 김치전과 감자김치전을 해가며 먹어치우는 어른이 되어 뿌듯하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먹는 김치도 먹지 않을 정도로 편식이 심한 나를 보며 걱정하던 선생님들이 이렇게 자란 나를 보면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려나? 생각도 해본다.





에필로그

설 연휴 동안, 전에 읽다가 다 읽지 못한 책들을 마저 읽는 시간을 보냈다.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과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었다.

두 책 다 절반 정도 읽어놓고, 바빠져서 손을 못 댄 채로 해를 넘긴 책들이다.


<부지런한 사랑>을 읽으면서, 새삼 어린이였던 시절의 내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일기를 열심히 써가는 학생이었고, 국어와 국어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일기장에 선생님이 펜으로 써주시는 코멘트들에 힘을 얻고 글을 더 열심히 쓰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글쓰기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내 감정과 사정들도 떠오른다. 당시 일기에 쓰지 못한 일화들도 있으니까.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편식하는 어린이가 살아남는 법이다. 당시에는 나에게 아주 중요하고 치열한 생존의 문제였고, 어릴 적 기억 중 생생한 기억이기도 해서, 글로 써보고 싶었다.


갑자기 내가 좋아했던 담임 선생님들과 국어 선생님들이 보고싶다. 내 일기가 기다려진다던 선생님들 덕분에 내가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지금도 이렇게 글짓기를 잘하고 싶어하는 어른으로 자랐다는 걸 알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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