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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카리

“이건 나 혼자 다녀올게. “


“그래 난 그럼 근처에서 기다릴 테니까 끝나면 연락해.”


B는 집에서 역으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는 산부인과를 예약했다. 우리는 산부인과 앞까지 같이 갔지만 나는 병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 병원이 특이한 건지 뭔지 잘 알 수 없지만 철저하게 남성은 출입금지인 병원이었다. 대신 병원 안에는 남자들이 대기할 수 있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평일 이른 오후 나는 아무도 없는 남성대기실에서 홀로 B를 기다렸다.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시무룩한 얼굴을 한 B가 약 봉투를 가지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내가 곧 한국 간다고 하니까 자세한 검사 같은 건 할 수 없었는데 확실히 몸이 안 좋은가 봐.”


“그건 무슨 약이야?”


“이거 한약인데, 매끼 한 포씩 먹으래. 잘 챙겨 먹으면 생리통도 덜해지고 생리 주기가 불규칙한 것도 많이 괜찮아질 거래.”


“한국으로 돌아가면 밥도 잘 챙겨 먹고 운동도 하면서 건강관리 잘하자. 그러면 금방 좋아질 거야. “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짜가 잡혔다. 방을 비우는 날이 정해지고 마지막으로 집주인이 집에 와서 점검을 하기로 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학교 선후배들이나 친구들이 편지를 써주기도 하고 과자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또 만나요. 연락 자주 하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7년간의 일본생활의 막이 이제 닫힐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나는 이 일본생활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받았고 배웠다. 좋은 사람들도 분에 넘치도록 많이 만났다. 그래서 나도 그만큼 되갚으려고 노력했다.


과거의 나는 미숙했다. 많은 실수를 반복했고 도망치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변명을 해왔다. 그런 내가 쉽게 바뀔 수 있을 리는 없었지만, 적어도 인간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도망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손을 내미려고 노력했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곁에서 위로해 주려고 노력했다.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옆에서 그 행복이 배가 되도록 함께 축하해 주었다.

스스로가 무리를 하고 있던 적도 많았지만, 홀로 외로운 일본생활에서,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자고 스스로 다짐했었다.


나는, 제대로 잘 해내었을까? 잘 모르겠다.


일본에 처음 왔을 때 잘 되지도 않은 일본어로 친구를 사귀어보려다가 마음처럼 되지 않고 거리감에 괴로워하며 집에 틀어박힌 적도 있었다.

일본어를 조금 더 잘해지고 싶어서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무리하다가 학업생활을 완전히 망쳐버린 적도 있었다.

여자친구를 만드려고 노력하다가 서로에게 상처만 입히고 돌아가는 전철에서 운 적도 있었다.


그래도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 술 한잔 나누며 밤새도록 떠든 날도 있었다.

아르바이트 친구들과 놀이동산에 가서 수십 장 사진을 찍으면서 놀고, 너라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응원을 받은 적도 있었다.

어두워진 밤 아직 사람이 붐비는 상점가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걸으며 두근거렸던 적도 있었다.


그런 추억들이 모두 이 방에 쌓여있었다.


텅 빈 방을 바라보니 조금 울고 싶어 졌다.

하지만 지금은 옆에 지켜야 할 사람이 생겼으니까,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생겼으니까. 과거의 나와 다르게 서툴더라도 더디더라도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내디뎌야 하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만큼은 아무리 힘들어도 슬퍼도 가능한 웃으며.


“오랫동안 신세 많이 졌다. 이 방. 마지막으로 청소하느라 고생 많았지?”


“정말! 평소에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했으면 이렇게 시간 안 걸렸을걸!”


“저기 바닥에 테이프자국은 진짜 지우는데 한 시간 넘게 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 시간 동안 드라이기로 뭘 한 건지 진짜…”


“결국 깨끗이 지웠으니까 집주인한테 뭐라 불평 듣진 않을 거야.”


이 방이 이렇게 넓었었나. 짐이 전부 사라지고 이민용 캐리어 두 개에 내 7년간의 일본생활과 B의 3년간의 오사카 생활이 전부 담겼다.


처음에 이 집에 왔을 때는 혼자서

마지막으로 이 집을 나갈 때는 둘이서.


정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A군과 B양이 이혼하기까지 앞으로, 1년 10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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