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 도착하니 점원이 예약된 좌석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따뜻한 물수건과 차가 나왔고 미리 주문된 요리들이 금방 나오기 시작했다.
사시미와 전채요리로 시작해서 텐푸라, 그리고 야키니쿠까지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정식이었다.
B는 할머니와 마주 앉아서 오랫동안 못 본 만큼, 최근에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 열심히 안부를 묻고 있었다.
일은 잘하고 있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는지.
국적은 달라도 할머니의 손녀사랑은 크게 다르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둘을 바라보며, 가끔씩 나에게 날아오는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밥을 먹고 있었다.
어느 정도 배가 채워지고 차와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아버지가 수줍게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꺼내셨다. 10년은 더 넘은 것 같은 오래된 카메라였다.
아버지는 그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켜서 B의 어릴 적 사진을 하나 둘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건 초등학교 운동회 때 사진입니다. 여기 큰 북을 치고 있는 게 B입니다. 이때 북 치는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었는데, 실전에서 조금 실수해서 집에 돌아와서 많이 울었었습니다.”
“아빠 또 그 사진 보고 있구나! 언제 적 사진이야!”
“이 카메라 사고 처음 찍은 게 그 운동회 때 사진이랑 동영상이니까. 잘 보관해 두어야지.”
“그리고 이 사진은…”
그렇게 나와 B의 아버지는 한 참 동안 어린 B의 사진을 둘러보았다. 아버지는 새삼스럽게 감회에 빠지신 것 같았고 나는 내가 모르는 B의 어릴 적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사진 한 장 한 장에서 아버지의 애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조그맣고 어린 딸이 어느새 커서 결혼할 남자를 데려오다니.
오래된 사진을 되돌아보고 있는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셨을까.
“그리고 오늘 이 사진기로 둘의 사진을 찍어두고 싶습니다. 근처에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넓고 예쁜 일본식 정원이 있는데, 산책이라도 같이 가는 게 어떻습니까. 차로 금방입니다. “
“저야 당연히 좋죠. B는?”
“어렸을 때 자주 갔던 그 정원말하는 거지? 나도 자주 갔어 엄청 넓고 예뻐. “
“그럼 일어날까요?”
식당에서 아버지가 말한 정원까지는 차로 약 20분 거리라고 했다. 차 안에서도 B와 할머니는 할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지 둘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원 근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입장료를 내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왔다. 정원이라고 하기엔 너무 넓어서 마치 예쁘게 잘 꾸며진 공원 같았다. 앉아서 쉴 벤치와 그늘도 많아서 그 벤치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노인분들도 계셨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었다.
B는 정말 오랜만에 와 본 것인지 조금 들떠서 부모님과 추억이야기를 하며 이곳저곳 둘러보며 이동을 했다.
아버지는 작은 디지털카메라로 그런 B의 모습을 하나 둘 사진 속에 담고 계셨다. 그동안 나는 할머니와 어색하게 둘이서 남겨져버렸다.
“B는 어때요? 몸이 좀 약하고 고집이 세지만, 착한 아이랍니다. ”
할머니가 내 옆에서 조용히 말을 거셨다.
연세가 있으시지만 아직도 매일 밭일을 나가 실정도로 정정하시고 자세도 좋으셨다.
“누구보다 밝고 해맑아서 같이 있으면 저도 같이 긍정적으로 되는 것 같아요. 힘들 때 정말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
“결혼이라는 게 다른 세상에서 살던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니 앞으로도 힘든 일, 고민거리도 많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 때 이 할머니한테 연락해서 상담도 하고 이야기도 해주세요. 시간도 많으니 언제든지 이야기에 어울려줄게요. B는 제가 어릴 때부터 봐 와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답니다.”
“…. 네, 꼭 연락드릴게요. 힘든 일 있을 때뿐만 아니라, 자주 연락드릴게요. “
“고마워요, B를 잘 부탁해요.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해요. 알겠죠?”
“물론이죠.”
“오빠! 할머니! 빨리 여기로 와! 같이 사진 찍자! 여기 있는 분이 우리 사진 찍어주시겠대.”
B는 그새 관광객 한 분을 붙잡아서 우리들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을 했다. B의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나와 B. 아버지의 작은 사진기에 우리 다섯의 모습이 담겼다.
한 가족의 사진이었다.
정원에서 짧은 산책과 사진 촬영이 끝나고 우리는 일단 본가로 돌아왔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해가 저물려 했고 나와 B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짐을 정리하는 동안 할머니가 작은 봉투를 건네주셨다.
“이거 이번에 딴 완두콩이랑 고구마, 감자예요. 집에 가져가서 먹어요.”
“와 할머니, 너무 고마워! 내가 좋아하는 감자랑 고구마네! 진짜 잘 먹을게.”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
“완두콩은 한 번 삶은 거니까 그대로 먹어도 되고 감자나 고구마는 쪄서먹거나 요리에 넣어 먹어요. 이제 곧 같이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죠? 건강 조심하고 아프지 말고.”
“응! 걱정 마세요! 잘 지낼게요!”
“그래, 그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응 할머니 다음에 또 봐요. 그때는 할아버지도 같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는 작별인사를 하고 역으로 이동했다. 모두 조금 피곤했는지 역으로 가는 차 안은 조용했다.
역 앞에서 내리니 타이밍이 좋게 곧 전철이 온다는 아나운서가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바로 돌아가지 않고 우리가 전철을 탈 때까지 마중을 해주셨다.
“그럼 아빠, 우리 가볼게. 잘 지내! 또 전화할게.”
“그래 그래, 조심히 들어가라. 그리고 A군 잠깐만.”
아버지는 떠나기 전에 내 손을 양손으로 꼭 쥐시고 말하셨다.
“…. B를 잘 부탁합니다.”
A군과 B양이 이혼하기까지 앞으로, 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