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앞으로 한 달.
우리는 방의 짐들을 천천히 줄여나가고 있었다.
B는 회사에 결혼하여 한국으로 갈 예정이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은 흔하기 때문에 다들 걱정 반 축하 반으로 B를 응원해 주었다고 했다.
나는 회사에 이직 의사를 밝혔고 이제는 인수인계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최근에는 남은 연차를 소진하며 집 정리를 하고 일본에서 신세 졌던 사람들을 만나며 안부를 전하고 있었다.
B는 나에게 친한 사람들, 신세 진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게 아니냐고 한탄 아닌 한탄을 했다. B는 나에게 친한 사람들 만나러 갈 때 자기도 같이 가자고 졸랐지만 나는 그녀를 아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는 것이 아직 너무 이른 것 같고 어색해서 거절을 했다.
B는 한껏 삐져서 자기도 친구들과 근처에 사는 사촌들을 만나러 갔다 오겠다고 뛰쳐나갔지만 다들 사는 게 바빠서 잘 안 만나주었다고 했다.
우리는 투닥거리기도 하며 일본에서의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는 몇 가지 할 일 리스트를 작성했다. 먼저 B가 알아본 교토에서 유명한 엔무스비(인연 맺기) 신사에 가서 참배를 올리고 오자는 것.
그리고 생리통이 너무 심하고 요즘 생리주기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으니 산부인과에 다녀오자는 것.
마지막으로 일루미네이션을 보러 가자는 것.
그렇게 길었던 우리의 일본 생활을 마무리하자고 했다.
한창 라이트 업을 하는 시기여서 그런지 교토에는 밤늦게까지 문을 연 신사들이 많았다. 우리는 늦은 점심에 집에서 출발하여 교토로 향했다. 한큐 가와라마치선을 타고 가면 교토의 중심 기온시조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 우리는 역에서 내려 근처에서 점심으로 오므라이스를 먹고 버스를 탔다. 첫 번째로 들르는 신사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부부가 많이 오는 신사라고 했다.
주택가 골목에 있는 작은 신사였는데, 젊은 부부들이 에마에 소원을 적어서 걸어놓고 있었다.
우리도 신사를 한 바퀴 둘러보고 에마와 부적을 두 개 구입했다. 에마에는 B와 내가 한 마디씩 소원을 적어 신사에 매달아 두었다.
금방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기길.
두 사람의 소원은 똑같았다.
그리고 부적은 B가 잘 챙겨서 가방 안에 넣었다.
“이거 우리 잘 때 베개 밑에 넣어두려고 해. 매일 부적을 머리밑에 두고 자면 그 소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해!”
겨우 신사 한 군데를 들렀을 뿐인데 하늘이 조금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른 신사로 가기 전 교토에서 새로 생긴 사진부스에 가보기로 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사진방을 빌려서 무선 리모컨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었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가게에 도착하니 바로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약 20분 동안 우리는 마음껏 사진을 찍고 그 안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10여 장 골라서 프린트했다.
우리는 언제 다시 또 올지 모르는 교토에서의 추억을 사진 안에 꾹꾹 눌러 담았다.
“나중에 내가 임신하면, 우리가 방금 갔던 신사에 다시 인사하고 오자. 건강하게 임신하게 도와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
우리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면서 마지막 신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신사는 버스로 약 40분을 이동해야 하는 먼 곳에 있었다. 현재 이벤트로 라이트업을 하고 있었고, 입장료를 내면 빛나는 작은 연등을 받을 수 있었다. 신사 안에는 사람들이 모두 작은 연등을 하나씩 가지고 안을 알록달록하게 꾸미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신사안을 구경하고, 현대아티스트와 콜라보를 했다고 하는 신사 안 작품들을 둘러보다가 우리는 겨우 신사본당에 도착했다. 본당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쌀쌀해져 가는 날 나는 아무 말 없이 B의 손을 내 코트 안으로 가져와서 꼭 잡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B가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이 작은 손으로 나에게 온기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금방 우리 차례가 되고 우리는 사이좋게 옆에 서서 신사에 기도를 올렸다. 평소에는 B가 더 길게 기도를 올렸었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훨씬 더 길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B가 작은 소리로 빨리 와, 너무 길어,라고 나를 재촉할 때까지.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진 교토의 저녁, 집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는 가와라마치 역 근처에서 간단하게 따뜻한 우동을 먹고 전철을 탔다. 돌아오는 길 우리는 둘 다 완전히 곯아떨어져서 내릴 역을 지나쳐 버렸고, 막차가 다 될 즈음에 겨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A군과 B양이 이혼하기까지 앞으로, 1년 11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