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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고 May 25. 2023

부모와 자식의 관계 (2)

무의식의 공유

심리학적으로, 부모와 자식은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종종 생각한다. 우선 어린 시절 부모는 자식의 롤모델이다. 그것은 아이의 인지가 담아낼 수 있는 개체가 그렇게 많지 않기에 본능적으로 우선순위를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도 눈높이에 맞는 애정을 보여준다면 어린아이에게도 충분히 중요한 존재로 각인될 것이다. 아이가 부모의 행동을 관찰하며 따라 하는 것이나, 부모의 이야기를 마음에 새겨두었다가 나중에 스스로 알아내기라도 한 듯 얘기하는 것을 보면서, 부모는 감탄하게 마련이다. 부모라는 존재를 자기 내면에 꽉꽉 채워놓는 자식이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나 또한 노력을 통해 아이의 관심을 받아왔던 아빠이다. 아기 때부터 재우고 먹이고 놀아주고 씻겨주는 일을 하며, 퇴근 이후 시간의 대부분을 아이에게 할애했다. 특히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수많은 이야기를 지어냈었고, 아직도 아이들은 아빠의 짜깁기 스토리를 재밌게 들어준다. 우리의 연결이 계속 이어지기 위해 의도적인 노력을 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점점 더 커가고 그들의 관심사는 점점 친구, 선생님, 학습, 놀이로 확장되어 간다. 어떤 면에서 부모가 아이의 생각을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그 아이의 창의성을 막고 결국은 성장을 막는 것이 된다. 모든 육아 철학은 아이가 성장하며 부모와 거리를 두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자식은 부모의 것이 아닌 독립된 개체이고 성장하면서 그 독립성은 커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이가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하고 또한 부모 외 다른 관심사에 비중을 두는 것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아이와 나의 연결은 명확해 보였다. 이것은 어쩌면 아이가 의존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궁금해하는 연결은 의존과 독립, 그보다 더 근원의 것이다. 더 예쁘고 순종적인 아이를 내 옆에 둔다고 해도 결코 이어질 수 없는 연결, 바로 '사랑'에 대한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워낙 광범위하고 또한 다양한 수준으로 통용되고 있기에,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사랑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오히려 전체 내용을 구태의연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사랑의 특성이 무엇인지 좀 더 설명하려 한다.. 우리는 상황이 어떻든 사랑하는 대상과 함께 있는 것을 떨어져 있는 것보다 좋아한다. 육체적 밀접함과 정서적 근접성은 서로를 상징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현실에서 밀접한 상태 못지않게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가까워져 있다. 육체가 하나의 세계이듯 정신도 하나의 세계다. 정신의 세계에서 '의식'은 내 것이고 자신만의 경계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의식의 바깥을 감싸는 '잠재의식', 또 더 바깥 미지의 세계인 '무의식'은 주변의 자극에 쉽게 동조하며, 타인의 정신에도 쉽게 감응한다.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남과 나의 구별이 마치 꿈처럼 희미해진다. 그렇다면 무의식의 연결을 통해 서로의 감정과 느낌이 공유되는 것, 이것이 사랑의 주요한 특성이 아닐까? 자식이 어릴 때는 부모도 자식만큼 순수해진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함께 믿으면서, 자신의 감정과 느낌이 상대방에게도 닿을 것이라 실제로 믿는다. 정말로 닿았을까? 사랑하면 그렇게 믿는다. 이처럼 사랑이란 무의식의 공유되는 관계라고도 볼 수 있다.


나 또한 아이와 무의식이 공유되고 있음을 종종 느낀다. 아이와 놀이를 할 때 처음의 유치한 패턴을 견뎌내며 참여하다 보면 결국 아이가 즐거워하는 마음에 동화된다. 아이가 사소한 것으로 우는 때 달래주면서, 아이의 시점으로 몰입하여 아이다운 확실한 이유가 내 감정과 동조하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고민하는 것을 아이에게 선문답처럼 던지면, 아이도 별생각 없이 답변하지만 그 대답이 차후 생각을 전개하는 실마리가 되어 준다. 그런 상황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을 무의식이 듣고 아이의 입을 빌어서 대신 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힘든 상황에서 아이의 말이 최고의 위로가 될 때도 있다. 아이의 말에 진심이 담기는 것은 그가 내 감정에 가장 근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무의식의 공유라고 해석하는 것은 주관적 믿음의 영역이지만, 또한 믿음 그 자체가 부모-자식 간의 연결을 더 강하게 만든다. 어떤 면에서는 믿음이 현실을 창조하기도 한다. 현상계를 뛰어넘는 무의식적 연결은 내가 믿는 만큼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의식은 자신의 것이다. 의식은 대체로 경계가 명확하고, 어느 정도 스스로 통제가 되며, 타인의 의식이 침입하는 것을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두터운 잠재의식의 층을 넘어서 있는 '의식이 아닌 세계', 즉 무의식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의식을 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탐색할 수 있는 것은 잠재의식까지 일뿐, 무의식은 우리의 인지가 접근할 수 없는 암흑세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의식을 보고 만지고 조작할 수는 없어도, 의식과 무의식이 정보를 주고받을 수는 있다. 명확한 예시로는 부족하지만, 누군가 점을 치고 예언을 하고 축복과 저주를 내리는 것은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까운 무의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주고받는 것이다. 나는 이런 글을 쓸 때, 어느 정도는 무의식에게 그 내용을 간청하여 겨우 받아낸다. 또한 살아오면서 했던 수많은 말들 중 진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이 함께 동의했던 말이다. 일상적으로 무의식을 가까이하는 것이 인생을 충만하게 해 준다. 아마 신화와 경전은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온 선물일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워갈 때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부모는 큰 기쁨을 느낀다. 그런데 과연 아이의 의식적 노력만으로 학습이 가능할까? 그 총명함은 아이가 무의식과 온전히 접속한 상태임을 시사한다. 교사가 던져주는 학습 정보를 아이의 의식이 먼저 받아들이겠지만, 집중의 상태에서 의식은 이를 다시 질문을 만들어 무의식에게 건네준다. 무의식은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의미와 느낌을 되돌려주며, 그 과정으로 아이는 영감을 채우며 눈에서 빛이 난다. 목표에 대한 뚜렷한 욕망을 가질 때도 그렇다. 처음에는 의식의 단계에서 목표를 설정하지만 이를 의식 속에 되새김으로써 결국 무의식에게도 전달된다. 무의식은 간청하는 아이에게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부모는 무엇을 도와줘야 하는가? 어린아이가 무의식에 근접해 있을 때, 그가 계속 무의식과 대화하게 해줘야 한다. 강요된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무의식을 넘나드는 집중이다. 


아이의 집중은 부모로도 이어진다. 적어도 아동 시기까지는 부모와 자식의 무의식은 공유된다. 이 중요한 시기에 나는 자식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부모라면 별 이견 없이 자식의 행복을 바란다. 그래서 자식들의 마음속에 지혜, 믿음, 선함, 친근함 등과 같은 긍정적인 사고를 심어주려고 한다. 우리의 외적 언어, 행위, 교육을 통한 노력은 그들의 의식에 작용하여 분명 좋은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무의식 속의 공유이다. 앞서 얘기한 전제인 '사랑하는 관계는 무의식을 공유한다.'에 주목하자. 내가 무의식에 건네준 감정이나 가치관이나 의지가 결국 자식에게 전달될 정서적 유산이 될 것이다. 극단적으로 내가 쾌락에 미쳐 산다면, 가족의 무의식도 쾌락에 대한 집착으로 오염될 것이다. 내가 가족 중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 미움은 아무리 의식적으로 감추어도 공유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 스스로가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부모는 완성형이 아니다. 부모 또한 육아를 하면서 계속 성장해 간다. 타인의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인격을 완성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예컨대 "내 자식을 지혜롭게 해 다오."하는 기도보다 "내가 좀 더 지혜롭기를 바란다."하는 기도에 무의식은 더 적극적으로 호응할 것이다. 이러한 염원은 나를 사랑하는 이의 마음까지 동화시킬 것이다. 반면, 우리의 일상적인 부도덕한 행동들, 누구도 몰랐던 이율배반적인 행적들, 이런 것들 또한 무의식을 통해 자식의 마음에 공유될 것이다. 부모의 옹졸함, 교만함, 합리화 등은 자식에게도 부정적 심리를 전달하고야 만다. 비리가 많은 정치인의 자식들이 어떻게 커 가는지를 살펴본다면 이 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않을까?


이처럼 부모가 자신의 무의식과 끊임없이 소통해 가면서 스스로를 가꾸고, 또한 자식을 사랑하며 그의 마음에 기꺼이 동화될 때, 서로는 자신의 특성을 간직한 채로 닮아가게 될 것이다. 지금껏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생물학적, 사회문화적, 심리학적 형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심리학적인 부분에 있어 좀 더 심층적인 무의식적인 공유까지 살펴보았다. 부모-자식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제시하고 싶은 것은, 서로 간의 의존을 넘어선 '마음의 닮음'이다. 무의식을 공유하는 관계는 반드시 닮게 된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어른은 누구나 자식에 대한 헌신을 각오할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신의 마음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다. 그 마음이 자손에게 물려줄 정신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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