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 역설
일반적으로 나라가 너무 평화로우면 출산율이 떨어지고, 나라가 위기 속에 있고 불안정하면 출산율이 올라갑니다. 유니세프 광고에 늘 나오는 소말리아 같은 아프리카 후진국들, 종교적 이유로 오늘내일이 불안한 이라크 같은 중동의 국가들, 우리보다 잘 살지만 나라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 속에 있는 이스라엘, 또한 남미에 망했다고 하는 국가들, 이런 나라에서는 출산율이 아주 높죠. 과연 이들의 시스템이 문제라서 산아 제한을 못하는 걸까요? 예를 들면 성교육을 안 하고 콘돔 보급이 안되고 되고, 종교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등등... 그것도 일부의 이유는 되겠죠.
궁극적 사실은, 현실에서 개인의 생존이 불안정해질 때 자신의 영속성을 지키는 가장 수월한 방법은 자손을 갖는 것이란 점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 끝이 찾아온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불안정한 세계는 매일 그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는 반면, 평화로운 세계에서는 그 인식이 좀 늦게 찾아오게 되죠. 개개인이 경험과 경력, 인맥의 확장을 통해 자아실현이 이루어지면서 자신의 삶이 영속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그 점이 자손에 대한 욕구를 후퇴시키지만 그 성취감은 허상에 가깝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니, 그 시기가 되었을 때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게 마련입니다.
원래 세계는 계속 변하게 마련이고 변화 자체가 세상의 본질입니다. 세계는 어느 시대에도 위기를 겪었으며 늘 불안정했습니다. 선진 국가는 단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을 잘 갖추어 여러 위기에 대한 완충 장치를 잘 마련해 놓았을 뿐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어렵게 살아가던 최빈국 조선이 갑자기 신생 국가 대한민국이 되었다가, 또 어느 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코리아가 되었으니, 그 국민들은 얼마나 풍요로움을 느끼겠습니까? 한 세대 사이에 감당 못할 풍요로움이 오니, 그 시스템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세상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는 듯이 느껴지고, 자손보다는 이 시스템을 누리면서 자아실현을 더 하고 싶지 않을까요?
싱글을 자처한 사람들은 당장은 못 느끼겠지만, 어느 순간엔 이게 내가 가질 수 있는 모습의 전체가 아니란 생각이 들 겁니다. 일말의 아쉬움이 반드시 오게 됩니다. 오래전에 느꼈어야 할 위기감이 죽음의 즈음로 지연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이 평화로운 대한민국이 언제까지 평화로울 수 있을까요? 북한, 중국, 러시아,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예상되는 분쟁을 미국을 동원해 겨우 막아내고 있는 이 효과가 언제까지 갈 수 있으며, 언제까지 삼성전자는 승승장구할 것이며, 언제까지 원화의 가치가 유지될 것이며, 언제까지 에너지는 펑펑 쓸 수 있을까요? 아마도 머지않은 날, 다른 국가에서 시작된 작은 문제로 지구 사회 전체가 요동치게 될 것이며, 그럴 때 대한민국도 그 파도 속에서 힘겹게 살아남아야 할 겁니다. 단순한 비관주의, 디스토피아적 관점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가 절대적으로 안정된 사회란 없음을 증명합니다.
세상이 요동치면 출산율은 그런 세상 맞추어 함께 요동칩니다. 인간의 불안은 영속성에 대한 욕망을 건드립니다. 내 몸은 죽어도 나란 존재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또 오래 살지 못할 첫째 자식의 삶을 둘째 자식으로 계속 이어 주기 위해서 그런 본능적 욕망이 출산율로 이어질 겁니다. 현재의 저출산에 대한 대책이야 세워야겠지만, 국가 소멸로 갈 거란 생각은 지금 평화로운 시대 한 순간만을 본 것이죠. 예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전에 이 나라는 지금보다 훨씬 위태로워 질 것이고, 아마도 오히려 출산하고 싶어 난리가 날 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