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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의 긴 여정 1. 그레이트오션로드

호주 멜버른 여행

by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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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레이트오션로드


멀고 먼 길, 꼬불꼬불 길,

가는 길에 둘째는 결국 멀미하며 토하면서 밥도 못 먹고 힘겹게 이동했고,

다른 가족들도 꽤 힘들어 했지만, 잘 나왔다고 서로를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일단 눈으로 보고 나니, 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하는지 이해했습니다.

저 절경들은 단지 시각적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절벽을 타고 올라온 매서운 바람, 그리고 부서진 파도에서 생긴 습기의 촉감, 운이 따른 화창한 날씨,

이런 것들이 다 같이 어우러져서 굉장한 감상을 줍니다.

가는 길에 평범한 소도시 해변도, 교외의 소/양을 방목하는 초원도 꽤나 넓고 근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크고 웅장한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뭘까요?

냉소적으로 보면 시각적 허영심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정말 그러합니다.

그들은 이 경치가 멋지다고는 했지만 단지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인내심은 금방 바닥이 나서 종일 괴로워하고 지루해했죠.

차라리 이름 없는 해변에서 모래놀이 할 시간이라도 있었다면 오히려 만족했을 겁니다.

인간은 자신보다 크고 위대한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싶어 하지만,

이 멋진 경관이 내 안에서 동조하거나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그냥 의미 없이 흘러간 이미지만 있었을 뿐이겠네요.


"나, 그레이트오션로드에 가 봤다."

이런 단편적인 사실 속에 딱히 진정성이 있나 싶습니다.

앞서 얘기했지만 복합적 감각이 이 여정을 굉장하도록 느끼게 해 주었다고 했죠.

분명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는데 지금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모르는 거죠.

이 단서에 매달려 고민을 좀 이어가 봅니다.

'지형물이 커서 굉장한 걸까? 전혀 못 봤던 경치라서 굉장한 걸까?'

그런 것이 아니죠. 진정성의 본질은 주관적 세계에만 존재합니다. 즉 나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자연물을 살펴보면서 내가 신비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긴 시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지질학적 지식을 동반하지 않더라도 침식과 풍화가 이 절경을 만들어내었음을 알 수 있고,

가장 중요한 변수는 인류의 역사를 넘어선 범위에서 '시간'입니다.

아마도 실지로 2000만 년 정도의 지질학적 역사가 있는 것 같은데,

그저 '오래되었구나.' 생각하는 수준이 아닌,

그 시간만큼을 내 안에서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시간은 무게입니다.

깎여나간 면면으로 남겨진 시간의 흔적, 땅의 몸은 점점 가루가 되어가고 점점 가벼워지지만,

남은 몸에 새겨진 시간만큼은 더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이미 무너진 바위처럼 언젠가 이들 자연의 조형물은 모두 사라질 운명이지만

그만큼 더 무거워진 시간은 남아있게 됩니다.

자연물의 나고 사라짐이 지구에게 혹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그건 알 수가 없지만, 이 모든 과정은 장대한 서사로 남겨진 이야기이며

그 주인공은 저 바위, 12 사도, 저 절벽들입니다.

자연물이 아닌 인간의 시간도 이처럼 무게로 남을 수 있을 겁니다.

저 바위처럼, 절벽처럼, 수천만 년을 침묵한다 해도 나는 무게로 남아 헛되이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거창한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아니나,

나는 이들에게서 배운 대로 침묵해야 하며, 믿어야 하며, 긴 꿈을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긴 꿈은 파도와 바람에 깎여 나가며 모든 시간을 상처 속에 품고 성장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가 될 겁니다.

마냥 지루해 보였던 아이들도 언젠가 이 날의 이미지를 되돌려 생각해보면서

그 여행이 '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느낄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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