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는 경계인이다. 미국인이면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고,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그의 대표작 <마담 X>는 당시 프랑스 사교계의 민낯을 제대로 확인시켜 준다. 1884년 봄, 파리 살롱전에 처음 전시되었다.
검은 이브닝드레스를 받쳐 입은 상류층 여성 한 명이 서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담백하다. 구릿빛 붉은 쪽 찐 머리에 초승달 모양의 다이아몬드 장식을 하고, 왼쪽 약지에 반짝이는 결혼반지를 꼈다. 여인의 얼굴이 지나치게 하얗고 코가 긴 것이 전형적인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그리고 드레스 속이 깊이 파였지만, 검은 단색이 그녀의 관능미를 누그러트린다.
이때 그녀가 상체를 비틀면서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오른손을 뻗어 작고 둥근 탁자를 짚는다. 뒤틀린 자세다. 그러자 먼 곳을 응시하는 그녀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가는 허리와 함께 드레스에 숨겨졌던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의 곡선미가 도드라진다. 더 치명적인 것은 어깨 아래로 살짝 흘러내린 드레스 끈이다. 하얀 살결의 어깨선과 보디스(bodice) 아래 젖가슴이 위태롭다.
그러자 라벤더 톤의 얼굴, 큰 코의 옆모습, 검정 드레스와 보석으로 치장한 어깨끈, 배경 색조 모두 작가의 치밀한 기획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델은 서른여덟 살 아멜리 고트로이다. 당시 파리의 사교계에서 주목받던 유부녀로, 사전트의 집요한 부탁에 의해 성사된 실물 크기의 초상화(208.6cmx109.9cm)다.
그러나 프랑스 사교계는 옹졸했다. 1881년 6월, 칼럼니스트 페르디캉이 야심에 찬 미국인들이 국내에서 환영받고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썼다. 당시 미국은 프랑스산(産) 물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음에도 국내에서 미국인 화가 사전트와 마담 고트로가 파리 사교계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이런 이유로 화가에겐 최고의 모델이, 아멜리에는 남들이 넘보지 못할 자신의 아름다움을 담아 줄 초상화가가 필요한 때였다.
사실 그녀는 매력적이지만, 그리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수십 벌 되는 드레스 중에 검정 드레스를 택했다. 파리 최고 디자이너 펠릭스 푸시노의 작품이다. 사전트는 그녀의 매력이 드러나는 구도와 자세를 찾기 위해 무려 30여 점의 다양한 습작을 남겼다. 게다가 아멜리는 참을성이 없고, 산만하며 도무지 예측하기 어려운 여자였다. 작가는 초조했고, 그렇게 1년여 걸려 탄생한 작품이 바로 <마담 X>다.
두 사람 모두 작품이 일면 도발적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큰 스캔들에 휩싸이자 당황했다. 모델의 익명성을 위해 제목을 <마담···의 초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무리였다. 독특한 외모를 지닌 그녀는 사교계의 찬란한 별이었다. 비평가와 특히 여성들이 날을 세웠다. 흰 살결은 죽음을 연상케 하고, 비틀어져 경직된 오른팔은 불편해 보인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상류층 유부녀가 드레스 끈을 아래로 흘러내려 어깨를 드러냈다는 점에 격분했다. 단정치 못하다는 차원을 넘어 퇴폐, 음란하다는 비난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과도한 반응이었다. 같은 날 살롱에 전시된 장 레옹 제롬의 <로마의 노예시장>처럼 정면 알몸도 아니고, 마네의 이전 출품작 <올랭피아(1865)>처럼 매춘부를 모델로 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대응 과정에서 두 사람은 엇갈린 행보를 보였다. 이에 따라 영욕(榮辱)도 크게 갈렸다. 비난이 걷잡을 수 없이 거세지자 아멜리는 화가에게 수정을 요구했다. 사전트도 살롱 측에 가장 크게 반감을 불러일으킨 흘러내린 어깨끈을 수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규칙상 받아들일 수 없는 제의였다. <마담 X>는 살롱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수정 없이 그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신문의 비난과 조롱은 계속되었다. 전시가 끝난 후 고트로 부부가 초상화를 사려 하지 않았다. 사전트는 스튜디오로 작품을 가지고 왔다. 흘러내린 어깨끈을 새로 고쳤고, 그런 채로 작품을 30년간 보관했다.
사전트는 진절머리를 내고 프랑스를 떠났다. 다행히 런던에 있는 친구들이 우호적이었다. 스물여덟 살, 그는 현명했다.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거센 비난을 극복하는 첩경이라고 판단했다. 워즈워스가 예찬한 코츠월드에 있는 마을 브로드웨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전설과 동화에나 나올 법한 그림,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를 그렸다. 제목은 사전트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불렀던 오페라 작곡가 조셉 마징(Joseph Mazzinghi)의 18세기 노래 <그대 양치기들아! 내게 말해다오>의 후렴구에서 따왔다.
“내 플로라(Flora)가 이렇게 하고 지나가는 것을 보셨나요? 그녀의 머리에 화환.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
친구 바르나르드의 딸 11살, 7살 돌리와 폴리가 모델이다. 황혼이 질 무렵 템스강에서 본 중국 등(燈)이 꽃밭에 뿌리는 독특한 조명을 떠올렸다. 정원에서 석양과 등의 붉은빛이 아이들의 하얀 드레스와 백합과 섞이는 마법 같은 순간을 담았다. 1885년 9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매일 해지고 난 후 이십 분씩 쪼개가며 현장에서 작업했는데, 작가야 그렇다 치고 아이들의 고생이 심했다.
1887년 5월 런던의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작품이 전시되자 큰 화제가 되었다. 비평가로부터 눈부신 색채 표현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런던에 있던 미국인 친구들이 뉴욕과 보스턴에 있는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사전트는 미국에서 다시 대성공을 거두었고,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더불어 몇 년 사이에 <마담 X>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번엔 다채롭고 화려한 태피스트리 문양을 마치 얼굴 뒤 후광처럼 두르고 한 여인이 서 있다. 못된 시선은 다소곳이 모은 손을 지나 곧바로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 사이 젖가슴 쪽으로 이끌린다. 가만히 보니 입을 약간 벌린 채 허리를 조금 굽혀 엉덩이를 뒤로 빼고 커다란 젖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고의적이다. 인제 보니 목걸이와 쌍을 이뤄 허리에 찬 남태평양산 진주 목걸이가 인상적이다.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이다. 사전트가 <마담 X> 스캔들을 극복하고 미국에서 재기에 성공했을 때의 작품이다.
보스턴 헤럴드 신문은 ‘전시회의 보석’이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결혼 초기에 그림 속 진주 목걸이를 사주었던 가드너의 남편은 기뻐하지 않았다. 관람객들이 아내의 그림을 보며 음탕한 얘기를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오히려 그녀가 처음부터 원했던 결과였다. 그녀는 1886년 사전트를 만난 자리에서 대담하게 “<마담 X>의 명성을 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드너 부인을 그리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마흔일곱 살 그녀는 키가 작고 평범했다. 그래서 그녀가 수집한 벨벳 문직(紋織)으로 배경을 장식했다. 그 앞에 자기 신체 중 자부심을 지닌 커다란 가슴과 가는 허리가 돋보이는 자세를 취하도록 했다.
미국 뉴올리언스 출신 아멜리 고트로의 태도는 달랐다. 파리 사교계의 비중을 고려하면, 그녀는 화가인 사전트보다 굴욕적인 상황이었다. 해외로 도피하지 않았으나 지나치게 위기에서 벗어나는 데 급급했다. 일단 사교 모임에 선택적으로 참석했고, 중요한 행사에만 얼굴을 비췄다. 물론 <마담 X>를 떠올리게 하는 검정 이브닝드레스는 입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지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초상화 작업에 착수했다. 이번엔 자신의 독창성보다는 귀족적 형태의 무난한 작품을 원했다.
1885년 혹은 1886년쯤 잊힌 이름의 화가는 그녀가 멋진 승마복 차림으로 (경마장에서 쓰는)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쓰고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서 있는 초상화를 그렸다. 그러나 매혹적인 그녀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았다. 더 슬픈 것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초조해진 그녀는 주목받는 초상화가 귀스타브 쿠르투아(Gustave Claude Etienne Courtois)를 선택했다. 이번에는 은연중에 <마담 X>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논란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에게서 비껴가고 있다는 세간의 변화를 깨달았어야 했다. 하지만 명성에 연연한 그녀는 1897년 다시 한번 초상화를 준비했다. 유명 인사의 초상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안토니오 드 라 강다라(Antoio de La Gándara)가 서른여덟 살 고트로의 뒷모습(제목 그림)을 담았다. <마담 X>와 연관한 논쟁을 피하는 대신, 새틴 주름으로 허리를 감싸는 풍성한 하얀 가운을 입혔다. 나이 든 목과 위쪽 팔을 탄력 있게 보이게 하면서 코를 덜 도드라지게 그렸다. 과장되지 않으면서 우아했다. 아멜리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러나 세상은 또다시 외면했고, 그녀는 그렇게 잊혔다. 가드너 부인과 비교해 볼 때 세상은 즐기는 사람의 편이라는 말이 맞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