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상주의자로는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1895)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재능 있는 여성 화가였다. 로코코의 거장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가 증조할아버지로, 1864년부터 살롱전에서 6년 연속 입선했다. 1868년 마네를 만난 뒤 그의 모델로, 제자로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이런 배경을 지녔음에도 대표작 <요람>과 1870년 살롱의 입선작 <어머니와 언니 에드마>에서 보듯 모델 대부분이 집안 여성과 조카들이다. 남성은 이따금 남편 외젠이 등장하는 정도이다. 그녀가 가정적이라 그랬기보다는, 여성 화가에게 남성 모델은 여전히 제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 1870년 살롱은 제2 제정 마지막 전시회다. 나폴레옹 3세가 스당 전투에서 대패한 후 그해 9월 2일 프로이센에 항복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통상 마네의 <발코니>에서 출발한다. 모리조와 화가 앙투안 기유메,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자 제니 클로즈가 오른편에 우산을 들고 서 있다. 고야가 청력을 잃은 후의 작품인 <발코니의 마하들(1808)>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인물들이 마치 정물화처럼 생기가 없고, 각자 시선을 달리한다. 창 앞의 철 난간과 녹색 덧문을 통해 수직과 수평을 구성함으로써 막힌 사각형의 공간, 캔버스라는 사실을 밝힌다. 또한 내부를 어둡게 처리함으로써 빛이 밖에 있음을 깨닫게 했다. 고야의 작품 속 어두운 뒷면에 배치한 남자를 마네는 자기 아들 레옹으로 대체했다.
그녀의 자매는 루브르에서 대가의 작품을 모사할 때 팡탱의 소개로 마네를 만났다. 1868년 직업 모델을 싫어하는 그가 모리조에게 물었다. <발코니>의 모델이 되어주겠냐고. 그의 재능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그녀는 그렇게 마네의 뮤즈가 되었다. 이때 ‘요부’라는 별명이 퍼졌고, 이후 모리조는 자기 작품보다 마네의 모델로 더 잘 알려졌다.
그러나 그녀는 마네에게 예술적 영감을 제시할 정도로 실력을 갖춘 화가였다. 인상주의 화가를 소개하면서 아이보리색과 검정을 쓰는 철 지난 스페인 양식 대신, 외광(外光)과 근대적인 삶의 현장을 그리라고 설득했다. 이런 그녀가 마네에게 제비꽃 같았나 보다. 결혼식에 사용하는 제비꽃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상징한다. 마네의 <제비꽃 다발과 부채>, <제비꽃을 든 베르트 모리조>에서 그의 애정이 묻어난다.
유부남인 마네와 모리조의 사랑은 주위에서 입소문이 났다. 이때 마네가 그녀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의 막냇동생 외젠과 결혼을 권했다. 둘 사이는 실제 어땠는지 명확하지 않다. 에드마와 베르트 자매가 마네에게서 매력을 느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그녀는 1874년 외젠과 결혼을 했고 마네의 처제가 되었다. 다행히 외젠은 모리조를 좋아했고, 묵묵히 아내를 도와주었다. 결혼 4년 후 그녀는 딸 쥘리를 낳았다. 그림은 모리조가 그린 <부지발(파리 근교)에서 딸과 함께 있는 외젠 마네>이다. 마네를 향한 사랑이 깊었다면, 그녀는 외젠에게서 마네의 모습을 찾았을지 모른다. 마네와 작업하며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을지도···.
반면 예술에 관한 그녀의 태도는 강건했다. 결혼한 그해 첫 인상파전이 개최되자 마네의 만류를 뒤로하고, 드가의 추천을 받아 참여 쪽으로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임신 중인 1879년 제4회를 제외하곤 매년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했다. 오히려 살롱전과 인연을 끊지 못하고 미련을 보인 마네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런 한결같은 태도로 인해 모리조는 인상주의 화가로서의 무게감이 상당했다. 모리조가 작가로서도 대중의 사랑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