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부제 포름알데히드로 채운 유리 탱크 안에 15피트짜리 박제 상어를 넣었다. 그리고 작가는 알쏭달쏭한 제목을 붙였다.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육체적) 불가능성>. 제목만으로만 판단하면, 살아 있는 자가 죽음을 어떻게 상상하거나 생각할 수 있겠냐는 물음이다. 죽음을 중심 주제로 활동하던 작가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1965~)는 작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상어와 마주치게 되면 두려움은 더욱더 크다. 상어는 죽었을 때 꼭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고, 반대로 살아 있을 때는 죽은 것처럼 보인다.” (도널드 톰슨, <은밀한 갤러리>)
여하튼 레디메이드로써 상어는 삶과 죽음의 알레고리를 표현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영국 언론은 경악했고, 평가가 양극단으로 나뉘었다. 명성을 위해 극단적인 쇼맨십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미국 제프 쿤스(Jeff Koons, 1955~)가 수족관에 농구공을 띄운 <세 개의 공 50/50(1985)> 등이 포함된 ‘평형 탱크 연작’에서 영감을 받았다. 사실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2005년, 이 작품의 판매를 둘러싼 이야기가 흥미롭다. 영국의 유명 광고회사 '사치 앤드 사치'의 경영인이자 컬렉터인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1943~ )가 판매에 나섰다. 그는 1990년대에 영국 젊은 화가 'YBA(Yong British Artists)' 붐을 몰고 온 주인공이며, 세계의 현대미술을 주름잡는 대표적인 컬렉터였다. 충격적인 사실은 사치가 래리 가고시안의 뉴욕 갤러리 측에 이 박제 상어를 무려 ‘1,200만 달러를 받아 달라’고 요구했다는 점이다. 가고시안은 1970년대 포스터를 판매하는 작은 상점에서 출발하여 세계 최고의 미술상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사치는 데미언 허스트에게 5만 파운드(당시 원화로 1억 원 정도?)를 후원했다. 비용으로는 상엇값 6,000파운드, 인건비 4,000파운드, 그리고 냉동 포장 및 수송비로 2,000파운드가 들었다.
허스트의 물리적 수고는 호주 해변에 위치한 우체국에 ‘15피트짜리 뱀상어를 원함’이라는 광고문을 부쳐달라고 편지를 보낸 것이 전부였다. 작품은 1992년 사치의 개인 화랑에서 전시되었다. 그때 역시 말이 많았다. 일간지 <The Sun>은 “감자칩도 곁들이지 않은 생선이 5만 파운드!”라며 비웃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대체 가격이 몇 배가 부풀려졌는가? 더군다나 상어는 처음과 달리 지느러미가 다 떨어져 나가고 악취가 날 정도로 심하게 썩어가고 있었는데··· 어처구니없는 점은 그런데도 작품이 사치가 원하는 가격 1,200만 달러에 팔렸다는 사실이다. 구매자는 미국 코네티컷 그리니치의 헤지펀드 회사 SAC캐피털 경영자 스티브 코헨이었다.
대중은 1,200만 달러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다. 하지만 현재 고객은 슈퍼 부자들이다. 열 배 가격인 1억 4,000만 달러짜리 작품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스미소니언 박물관 허시혼 미술관 이사장으로 일한 로버트 레흐먼은 말한다.
“세상에는 위대한 미술품보다 돈이 훨씬 더 많다.”
작품을 구입한 코헨만 해도 그렇다. 연간 수입이 약 5억 달러(추정) 정도였다고 하니 1,200만 달러는 크게 부담으로 여기지 않았을 거다. 아니, 슈퍼 부자들은 람보르기니를 타고 부를 과시하는 졸부의 천박함과는 오히려 격을 달리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들은 고급문화를 즐기는 자신의 취향과 사회적 지위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래서 훗날 자신의 소장품을 필요에 의해 팔기도 하지만, 많은 이가 기꺼이 기부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작가와 함께 컬렉터와 위탁 판매 갤러리, 경매 회사의 브랜드 가치가 중요해진 것은 자연스럽다. 마치 같은 품질이라도 명품이냐 아니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지는 현상과 비슷하다.
여기에 현대 미술의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미술의 역할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는 현실이다. 작품은 이제 미학적 차원을 넘어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표현한다. 그리고 그 독창성에 있어서 기존의 소재나 장르 해체에 망설임이 없다. <박제 상어>가 조각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미술계에서는 허스트가 썩어가는 상어를 교체해 준 것과 관련 논쟁이 발생했다. ‘교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강했다. 만약 교체한다면, 새로운 작품, 훼손, 어느 쪽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최초 작가의 의도를 살리는 데 있어 불가피한 조치로 받아들여야 할까? 분명한 것은 이 논란으로 인해 현대 미술은 한 발 외연이 확장되었다는 사실이다.
한편 YBA는 1988년 허스트가 주축이 되어 골드스미스 칼리지 미대생들의 <프리즈 Freeze> 전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안겼다. 대표 작가로는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 마크 퀸(Marc Quinn), 제니 새빌(Jenny Saville),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 등이 있다. 사치는 그들의 아이디어(개념)에 투자했다. 이 작품만 해도 <천 년>을 보고 감동한 사치가 허스트에게 약속한 재정 지원을 실천했기에 가능했다. <천 년>은 썩어가는 소머리에 수많은 파리가 알을 까는 ‘탱크 연작’으로, 구더기가 파리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하튼 당시로서는 과감한 지원이었고, 덕분에 허스트는 독창성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작품 홍보를 위해 일부러 자극적이고 논란을 일으킨다는 혹평이 뒤따랐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 「일부는 미쳤고, 일부는 달아났다(1994)」에서는 더 많은 포름알데히드 작품을 전시했다. 유리 상자 안에 양을 진열한 <양 떼로부터 떨어져서>와 반으로 갈라진 소와 송아지를 진열한 <분리된 엄마와 아이(1993)>로 1995년 터너상을 받았다. 이제 데미언 허스트와 YBA는 뉴욕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다. (제목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이다)
런던의 현대미술과 미술 시장은 뉴욕과 나란히 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찰스 사치 자체가 유명 브랜드가 되어 미술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치의 투자에는 논란이 뒤따랐다. 그가 작가의 안정적인 시장보다는 ‘치고 빠지는’ 단기 투자로 이윤을 극대화한다는 비판이다. 대표적인 희생자가 바로 이탈리아 신표현주의 화가이자 조각가 산드로 키아(Sandro Chia, 1946~)다. 사치는 키아의 작품을 대량 구매하여 한꺼번에 경매에 내놓았다. 사치는 막대한 이윤을 얻었지만, 키아는 치명타를 입었다. 그리고 사치 같은 유명 컬렉터에게 버림받은 작가라는 낙인이 찍혀 오랫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정윤아, <미술시장의 유혹>
반면 허스트는 사치와 결별했다. 그리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조수 40명으로 팀을 구성하여 4개 작업실에서 작품을 제작했다. 허스트는 마지막엔 붓으로 서명하기만 하면 됐다. 이와 관련 그는 “나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만일 구매자가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원한다면, 형편없는 작품을 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당하지만, 솔직하다. 현대미술은 예술적 다양성과 독창성을 반기며, 때에 따라서는 정직성이 오히려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 역시 현대사회의 특징일까? 그래야 세상이 지루하지 않고, 살아가는 재미가 쏠쏠해지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