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인영 Mar 02. 2023

트레이시 에민의 솔직성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1963~1995)>

영국 현대미술의 대표 주자 YBA(Young British Artists) 중에는 데미언 허스트와 같은 세대인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1963~)이라는 여성 작가가 있다. 7세에 부모의 사업 실패, 13세에 강간, 두 번의 낙태 수술과 한 번의 유산, 그리고 폭음과 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시도, 불행했고 자기 파괴적이었다. 그녀는 1995년 자전적 작품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모았다. <텐트>라고도 불린다. 1963년부터 1995년까지 함께 잤던 102명의 이름을 파란 텐트 내부에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게 무슨 자랑이냐?”며, 그녀의 뻔뻔함을 나무랐다. 하지만 예술에 임하는 그녀의 자세가 솔직하다. 삶과 예술이 다르지 않다는 관점이다. 그녀의 이런 태도는 사람에 따라 호, 불호가 갈려 큰 온도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텐트>에는 반전이 숨어 있다. 함께 잤던 이름 가운데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 남자 친구, 낙태 수술로 세상에 나오지 못한 아이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잤다’라는 선입견 때문에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나의 침대(1998)>

그녀의 대표작은 <나의 침대>이다. 1998년 런던 화이트 큐브 갤러리 관장 제이 조플링의 권유로 에민은 첫 개인전을 열었다. 오픈 2주밖에 남지 않았을 때 조플링이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때까지 작품 한 점도 만들어 놓지 않은 채 집안은 쓰레기와 낙서로 엉망이고 술에 취해 있었다. 크게 실망한 조플링이 한마디 하면서 돌아갔다.


“집이 예술이군!”


우리도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정말로 그 침대를 가져다가 그대로 전시했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사진과 소지품, 노트와 일기장, 학창 시절 회화 습작. 이 정도로 끝났으면 무난했을 텐데··· 휴지, 피우다 만 담배꽁초, 술병, 더러운 속옷, 그리고 사용한 콘돔과 신체 분비물이 묻은 시트까지 망라해 놓았다. 게다가 두 명의 중국인 공연예술가(Yuan Chai와 Jian Jun Xi)가 벌거벗은 채 침대 위에서 껑충껑충 뛰며 15분간 베개 싸움을 했다. 마지막 전시회가 되리라고 예감한 그녀는 ‘나의 회고전’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하지만 사람 심리가 묘하다. 이쯤 되고 보니 대중은 거꾸로 그녀의 용기와 작업에 박수를 보냈다. 이듬해 가을, 작품은 ‘터너 프라이즈’ 후보작에 올라 TV에 생중계되고, 테이트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그리고 <텐트>를 샀던 찰스 사치가 <나의 침대>를 15만 파운드(약 2억 5천만 원)에 사서 자신 소유 사치미술관에 전시 후 자택에 설치했다. 갤러리 화이트 큐브, 딜러 조플링, 그리고 컬렉터로서 찰스 사치는 해 분야에서 최고 브랜드다. 따라서 그들의 지원을 받는 에민은 불행과 작별하고,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에민은 현재 그림, 그림, 조각, 영화, 사진, 비디오, 바느질, 네온 텍스트 등 다양한 매체에서 작품 활동을 한다. 그중 네온 작품은 뉴욕 타임스퀘어 거리와 함께 대한민국 가수 GD의 제주도 카페에서도 만나 볼 수 있다고 한다.  가끔 이런 일도 생겨야 세상은 살맛 나는 법이다. 그녀는 2011년 12월, 영국 왕립 아카데미 교수로 임용되어 지금 런던에 산다. 1768년 아카데미가 설립 이래 두 번째 여성 교수라고 한다.

이전 19화 데미언 허스트와 찰스 사치의 결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