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다운타운에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워싱턴 대학교(UW, University of Washington)가 있다. 이곳은 건물과 조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중 고딕 성당처럼 웅장한 ‘수잘로(Suzallo) 도서관’을 찾는 발걸음이 제일 많다.
초대 총장 이름을 딴 이곳이 영화 <해리포터>에 나온 도서관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 우리는 문이 닫혀 내부를 구경하지 못했다. 하긴 공부하는 곳인데, 관광객이 기웃기웃하는 것도 예의가 아닐지 싶다.
캠퍼스 중심부 ‘더 콰드(The Quad)’ 건물들도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곳 수령(樹齡)이 많은 벚나무가 일제히 꽃을 만개하는 봄이 찾아오면, 캠퍼스는 가위 환상적이다. ‘레이니어 비스타(Rainier Vista)’도 못지않다. 정면에 레이니어산이 펼쳐진 모습 역시 장관이다.
워싱턴주의 지붕으로 불리는 높이 4,382m의 이 산은 자동차 표지판에 디자인되어 있을 정도로 상징적이다. 하지만 꾸물꾸물한 시애틀의 날씨가 그 모습을 종종 감추곤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가 그랬다.
워싱턴대학교는 주립대학임에도 미국 내 대학 서열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높다. 국내에서 의대는 5위, 공대는 10위 안에 든다. 그리고 컴퓨터 공학부 졸업생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등 역내 기업에서 서로 데려가려 한다. 실리콘 밸리 다음으로 시애틀이 미국 내 IT 허브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역할이 컸다. 시애틀은 1980년대 제조업의 몰락과 더불어 쇠락하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1979년에 시애틀 토박이 청년 사업가 두 명이 직원 13명으로 작은 회사를 이곳에 차리면서 경제 재건이 이루어졌다. 그 주인공이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다.
빌 게이츠의 그늘에 가려 폴 앨런(Paul Allen)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사명을 짓고, 빌 게이츠가 하버드를 중퇴하고 회사에 합류하게 한 인물이다. 그는 ‘시애틀의 메디치’로 대접받는다. 경제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시애틀을 창조 도시로 견인했기 때문이다.
폴 앨런은 시애틀 심포니와 아트 뮤지엄의 주요 후원자였다. 공연이나 전시를 직접 관람하고 SNS에 평을 올렸으며, 시애틀 아트 페어를 개최했다. 록 밴드를 구성하여 기타를 치고 앨범을 냈으며, 우상이던 지미 헨드릭스를 기려 대중문화박물관(MoPOP)을 열었다. 심지어 재정 위기로 시애틀을 떠나려고 했던 프로 미식축구 구단 시애틀 시호크스를 인수해 구단주가 되었다.
미술관, 공공도서관 등 각종 문화사업뿐만 아니라 워싱턴 대학교에도 엄청난 기부금을 냈다. 이곳 컴퓨터공학부가 오늘날 스탠퍼드 대학교, MIT, 카네기 멜런 대학교, UC 버클리와 함께 컴퓨터과학 분야에서 미국 탑 5를 이룬 것은 그의 후원에 힘입은 바 크다.
2018년, 폴 앨런은 예순다섯 살을 일기로 혈액암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피렌체에서 메디치가 그렇듯이 시애틀 곳곳에서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워싱턴주 내에서 흥미로운 지역이 밴쿠버(Vancouver)다. 캐나다가 아니라 포틀랜드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곳이다. 포틀랜드 역내 근무하는 직장인 중에는 컬럼비아강 건너편 이곳 거주민이 적지 않다.
이곳에 거주하면 두 가지 큰 혜택이 뒤따른다. 첫째는 세금이다. 워싱턴주는 개인 소득세가 없는 반면, 포틀랜드는 상품에 부과되는 소비세가 없다. 그래서 고액 연봉자일수록 양쪽에서 받는 세제 혜택의 폭이 크다.
다른 하나가 대학 학비다. 알다시피 미국 대학은 사립과 공립이 학비에서 천문학적인 격차를 보인다. 그런데 실력 있는 주립대학이 소재한다는 점은 학부모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거주 요건으로 작용한다. 워싱턴 대학을 핑계로 아직 애도 낳지 않은 딸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너도 미래를 위해 이사해도 좋겠네~”라며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