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크 유니언(Lake Union)’ 북쪽에 자리 잡은 시애틀 ‘가스 웍스 공원(Gas Works Park)’은 기대 이상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철도역을 개조해 만든 오르세 미술관을 익히 알고 있던 차제, 이미지로 본 가스 웍스는 그 아류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석탄으로 가스를 만들던 ‘시애틀 열 병합 발전소’가 커다란 조형 작품으로 변신했다. 운영 중단 후 방치되던 발전소를 1962년 시가 소유하게 되었고, 1975년 조경 건축가 리처드 해그(Richard Hagg)가 환경친화적인 공원으로 조성했다.
그러나 개조한 발전소만으로는 결코 보는 사람들의 탄성을 얻어낼 수 없다. 주변 호수와 하늘의 파란색, 맞은편 시애틀 다운타운의 스카이라인, 그리고 숲에 싸인 고급 주택과 어우러질 때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는다.
현장에서 공원 전체 모습을 보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지 알 수 있다. 조화가 절묘하다. 리처드 해그가 이 프로젝트로 미국 조경 건축(ASLA) 디자인상을 받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은 프리몬트나 포틀랜드 동네 공원처럼 트레일이 없다. 철저하게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조성한 퍼블릭 공원이다. 비가 개인 후 맑은 공기와 함께 공원 잔디의 초록도 신선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공원 중앙에 볼록 올라온 언덕이 낯익었다. 대한민국 올림픽 공원 내 그것과 많이 닮았다.
유동근과 황신혜가 주인공이었던 TV 드라마 <애인(1988)>에서 자주 등장했던 언덕이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덕 풍경과 배경음악이 겹치면서 시청자를 건드렸던 감성은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 OST는 캐리 앤 론이 리메이크한 추억의 올드 팝송 <I.O.U>였다.
도심을 벗어나 시민들이 가족 단위로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이 여유롭다. 게다가 수많은 예쁜 오리(?)들이 함께하니 한 편의 풍경화다. 시선을 유니언 호수 남쪽으로 돌린다. 시애틀이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였나? 경탄을 자아낸다. 왜 ‘에메랄드 시티’라 부르는지 금세 확인할 수 있다.
호수라 하지만 커다란 화물선이 있고, 시민들이 요트와 카약을 즐긴다. 심지어 수상 비행기가 착륙하여 호수 남쪽 선착장을 향한다. 클로드 모네가 이곳에 있었으면, 그의 붓질이 몹시 분주해졌으리라. 결국, 공원의 아름다움은 이곳을 즐기는 시민과 동물과의 공존으로 완성된다고 봐야겠다.
공원 위쪽으론 ‘쉽 카날 브리지(Ship Canal Bridge)’가 보인다. 2층 강철 트러스 다리로, 워싱턴 호수와 유니언 호수 사이의 경계를 이룬다. 다리가 포틀랜드에서 시애틀로 들어올 때 이용했던 5번 도로 선상에 있다는 점이 재밌다. 호수 남쪽 시애틀 도심을 바짝 붙어 지나간다.
가스 웍스 공원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시애틀에 살고 싶어졌다. 한곳으로 밀어 놓았던 시애틀 도심 사진 몇 장을 새삼스럽게 살펴본다. 그러면서 이곳에 내리는 비가 가랑비일지, 이슬비인지를 가늠한다. 귀국한 지금도 시댁 공항에서 보았던 딸의 뿌연 눈동자 안에 스며든 시애틀 모습이 아른거린다. 다음에 포틀랜드로 갈 때는 아무래도 이곳을 경유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