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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Sep 26. 2023

에셔와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시공간의 상대성’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상대성(1953)>

네덜란드 판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1898~1972)는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의 반복적인 문양에 매료되었다. 이후 ‘테셀레이션(tessellation, 쪽 맞추기)’이라는 도형의 이동과 대칭의 원리를 미술 기법으로 발전시켜 환상적인 작품을 제작했다. <상대성(Relativity, 1953)> 전경 중앙에서 계단을 오르는 사람에겐 그림 상단이 위쪽이다. 그런데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면 왼쪽이,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오른쪽이 모두 위로 묘사되었다. 4개의 계단을 중심으로 4개의 시각이 섞여 있다. 현실에서는 중력으로 인해 구현 불가능한 현상이다. 하지만 중력이 미치지 않는 우주 공간에서는 ‘위’와 ‘아래’ 개념이 없다. 그야말로 상대적이다. 

에셔의 이 작품은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영국의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 1931~)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펜로즈는 1965년 논문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을 근거로 수축되는 별에서 블랙홀이 탄생하는 과정을 멋진 그림으로 표현한 최고의 이론물리학자 중 한 명이다. 블랙홀은 우주의 시작점하고 맞닿아 있다. 그의 <삼각형> 역시 3차원 공간에서 구현할 수 없는 삼각형이다. 착시를 이용해 2차원 평면으로 옮겨왔기에 가능했다. 90도를 이루어야 할 구조를 평면인 점을 이용하여 60도로 삼각형을 꾸몄다. 영화 <인셉션>에서는 ‘펜로즈의 계단’으로 소개했다. 상상의 세계처럼 보이지만, 차원을 달리하면 현실적으로 구현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다. 



뉴턴의 중력이론에서 슬그머니 넘어간 걸림돌이 하나 있었다. 수성의 근일점(近日點, 행성이 태양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지점) 계산에 있어서 실제 관측값과 미세한 차이를 보였다. 앞서 뉴턴의 이론을 기반으로 해왕성의 존재를 밝힌 르베리에로 인해 문제가 불거졌다. 그는 수성의 변칙적인 운동 구조와 관련 다시 한번 ‘발칸(Valcane)’의 존재를 주장했다. 하지만 발견되지 않았다. 뉴턴 역학의 한계를 넘어선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수성은 태양에 가장 가까이 있다. 따라서 태양의 중력으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근일점이 100년에 574"(초)만큼 미세한 변화를 불어왔다. 뉴턴 이론으로 531초는 설명되는데, 나머지 43초에 대한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각도에서 ‘초(秒)’란 매우 작은 단위다. 360도가 약 130만 초와 같다. 크리스토프 갈파르는 이 오차를 가리켜 ‘구식 시계 두 개의 초 눈금 사이의 공간을 500으로 나누었을 때 그중 하나 정도’라고 비유했다. 그러나 이 작은 차이의 원인이 밝혀지면서 중력이론에 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게 된다.

 

뉴턴은 천체운동을 지배하는 힘의 근원으로 중력을 지적했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 간 중력이 왜 생기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답을 주진 못했다. 그것은 ‘철학의 문제’이며 “과학은 현상에 대한 결과적 설명으로 충분하다”라며 회피했다. 이 때문에 중력은 물체 간에 뜬금없이 생기는 힘인 양 취급되었다. 이른바 ‘원격 작용’ 법칙이다. 이 문제는 빛보다 더 빠른 것이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도 마찰을 일으킨다. 덴마크의 천문학자 올레 뢰머(Ole Christensen Rømer, 1644~1710)가 처음 빛의 속도를 측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뉴턴의 구축한 광학 이론을 이용하여 태양에서 방출된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 7~8분이 걸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따라서 태양의 중력도 빛과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인슈타인은 1914년 취리히를 떠나 베를린 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이듬해 11월 25일, 프러시안 과학학술원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을 정리하여 4쪽짜리 <중력의 장 방정식>을 발표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10년만이다. 이로써 중력이 철학이 아니라 과학적 실체로 드러났다. 질량과 에너지로 인해 공간의 곡률이 왜곡되고, 공간을 관통하는 시간의 변화를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말년에 아인슈타인과 함께 공동 연구를 했던 존 아치볼드 휠러의 표현을 빌리면, “질량은 공간에 어떻게 구부러지라고 말하고, 공간은 질량에 어떻게 운동하라고 말한다.” 

수성의 근일점 오차가 태양이 먼 거리에서 신비한 힘을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주변 공간을 ‘구부려’ 생긴 중력장으로 수성이 지나감으로써 발생한다는 점을 적시한다. 아인슈타인은 리만 기하학을 기반으로 만든 방정식을 통해 수성의 곡면 궤적을 계산해 냈다. 자신의 특수상대성이론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확장된 이론의 탄생이다. 종이를 돌돌 말아서 두 점이 맞닿게 만들어 보자. 그러면 두 점을 연결하는 가장 짧은 경로가 더 이상 직선이 아니다. 곡선이다. 또 종이에 구멍을 뚫어서 두 점을 연결하면, 훨씬 짧은 경로가 생긴다. 이 생각을 그대로 우주에 적용하면, 공간이 극단으로 휘어진 블랙홀로 연결된다. 그리고 웜홀과 평행우주, 그리고 시간 여행으로 확장, 발전한다. 모두 일반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한 발상이다. 

 

그러나 당시로선 그의 새로운 중력 이론을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 아인슈타인이 태양 가까이에 있는 별의 사진을 찍어 위치와 속도를 비교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마치 모네가 같은 장소에서 시차를 두고 그린 <루앙 대성당> 연작과 맥락이 같다. 지구에서 사진을 찍을 때 태양의 개입을 확인하려는 의도다. 따라서 태양과 별 사이의 힘의 문제라면, 지구에서 찍는 어떤 사진에 별의 위치상 변함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태양이 뜬 대낮에 지구에서 별의 사진을 담으려면, 개기일식 때만이 가능하다. 달이 태양을 가려 햇빛을 차단해 주기 때문이다. 1914년, 독일의 에르빈 핀라프로인틀리히가 도전했다. 하지만 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러시아에 관측 장비가 억류되어 실패했다.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스탠리 에딩턴(Arthur Eddington, 1882~1944)이 전쟁 막바지에 나섰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던 그의 대체복무 차원에서 이루어진 탐험이었다. 그는 서아프리카 프린시페섬에 가서 1919년 5월 29일 개기일식 때 히아데스성단의 사진 촬영에 성공했다. 그리곤 6개월 전 태양이 하늘 반대편에 있을 때 같은 곳을 찍은 사진 속 별과 위치를 비교했다. 그해 11월 결과를 발표했다. 별의 위치에서 차이가 발생했다. 개기일식 때 태양이 공간과 빛을 휘게 함으로써 발생한 차이다. 그리고 그 휘어진 정도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값과 정확히 일치했다. 공간의 변화는 속도의 차이를 의미한다. 독일의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의 말대로 3차원 공간에 시간이 통합되면서 우주가 ‘4차원 시공간’을 구성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영국과 독일은 적국으로 갈려 싸웠기에 더욱 극적인 발표였다. <뉴욕 타임스>는 “하늘의 모든 빛이 구부러져 있다”라는 표제로 기사를 송고했다. 그리고 에딩턴이 덧붙였다.


“뉴턴의 중력이론이 차지했던 그간의 지위가 이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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