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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Sep 21. 2023

모네의 빛과 특수상대성이론

모네의 <수련> 연작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연에서 빛의 변화를 쫓아다녔다. 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채를 보며 순간적 인상을 잡아냈다. 재빨리 색칠해야 했다. 알라 프리마(alla prima, 영어 wet on wet) 기법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형태가 모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1874년 인상주의 첫 전시회에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해돋이>가 루이 르루아로부터 ‘벽지보다 못한 그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빛의 사냥꾼’ 모네는 빛과 색의 관계를 좀 더 추적하기 위해 연작을 택했다. <생 라자르 역>에서 시작하여 <포플러>, <건초더미> 등으로 발전했다. 연작이 잘 팔리자 1890년 파리에서 70km 떨어진 지베르니에 집을 마련했다. 그곳에 일본식 정원을 만들어 빛을 잡아 두고 수련 연작에 몰입했다. 무려 250여 점을 남겼다.

 

모네의 <수련(1906)>

작품은 그중 비교적 말년에 그린 <수련>이다. 초기 작품에 비해 현저하게 형태가 모호해졌다. 추상성이 강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사실은 모네에게 백내장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추상성으로 인해 모네는 현대 미술에 더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최초의 추상화가 칸딘스키가 대표적으로, 모네의 <건초더미(제목 그림은 1891년 작품)>에 매료되어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당시 법학 교수 임용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1895년 전시 목록에서 계절에 따른 빛과 대기의 변화를 다채롭게 그린 모네의 작품을 본 후 마음을 바꿨다.



빛에 관한 과학적 연구의 정점에는 두 사람의 위대한 과학자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있다. 과학사의 ‘기적의 해’ 1905년에 발표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서로에 대해 등속으로 운동하는 두 관찰자에게는 똑같은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된다." 같은 속도로 기차가 마주 보고 지나면 두 배의 속도감, 나란히 가면 정지된 느낌이 들지만, 동일한 물리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특수'라는 말은 매우 한정된 조건, 즉 '등속'일 때를 상정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두 번째 “빛의 속도는 우주 어디서나 일정하다(상수, 常數)”라는 문제가 논란이 많았다. 이때 등장하는 일화가 열여섯 살 아인슈타인의 상상이다. “빛을 타고 가면서 같은 방향의 빛을 바라본다면 어떻게 보일까?” 같은 방향의 등속이라면, 빛이 정지(0)된 것처럼 보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초속 30만 km로 일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지난했다. 뉴턴은 빛을 입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하위헌스와 토마스 영으로부터 촉발된 빛의 파장설이 맥스웰 이후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후 빛의 입자(광자)와 파동, 이중성 문제는 빛의 속도와 관련해서도 드러났다. 맥스웰 방정식에서도 빛은 초속 약 30만 km(정확하게는 299,792,458m/s)라는 일정한 값을 지닌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값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왜냐? 맥스웰이 빛은 ‘전자기파’, 즉 파동이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파동이라면 당연히 매개 물질을 통해 에너지가 전달된다. 소리(음파)는 공기, 파도(물결파)는 물, 지진(지구의 파동)이 모두 그렇다. 그리고 파동이라면, 매질의 상황에 따라 속도 차이가 발생한다. 따라서 빛의 가상 매질로 여겨졌던 ‘에테르’의 실체를 먼저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우주 전체에 차 있어야 할 에테르를 찾으려는 많은 과학자의 노력이 연이어 실패했다.

 

지구는 반년 동안 태양을 향해서 움직이고, 나머지 반년은 태양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점에 착안하여 미국인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는 앨버트 마이컬슨(Albert Michelson, 1852~1931)이 몰리(Edward Williams Morley, 1838~1923)와 함께 정교한 실험에 들어갔다. 1887년, 계절에 따른 빛의 속도를 측정했다. 그러나 등속의 방향이 상반되었음에도 빛의 속도가 다르지 않고 똑같았다. 

뜻밖의 상황에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아인슈타인이 나섰다. 그가 인생 최대의 비참한 시기를 막 벗어나고 있을 때였다. 어머니는 임신 중이던 밀레바 마릭과 결혼을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여러 대학에서 강사 채용이 거절당했고, 임시 직장에서도 해고당했다. 다행히 대학 동창인 마르셀 그로스만의 도움으로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 3급 기술 시험사로 취직할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학계에서 벗어나 자유스러운 발상이 가능했던 스물여섯 살 아인슈타인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했다. “에테르가 관측되지 않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매질이 없기에 빛의 속도가 같다는 논거를 펼쳤다. 바로 특수상대성이론이다. 

빛은 언제나 혼자 여행하며,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곳도 지나갈 수 있다. 빛에는 정지 상태가 없다. 따라서 상대적인 것은 관찰자의 속도이다. 속도는 ‘이동한 거리(공간을 측정한 양)’를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시간을 측정한 양)’으로 나눈다. 시간과 거리(공간)가 상보적이라는 의미다. 실제 우주선의 시계가 책상 위 시계보다 빨리 가고, 빠르게 운동하는 로켓의 길이는 지구에 멈춰 있을 때보다 짧아진다. 그리고 그 정도는 로켓의 속도에 따라 다르다. GPS 시스템도 ‘물체가 움직이면 시간이 늦춰지고, 공간이 줄어드는’ 상대론적 효과를 반영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간은 다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은 채 스스로 존재하며, 외부의 어떤 기준에도 상관없이 항상 동일한 속도로 흐른다.” (브라이언 그린, <우주의 구조>)


절대 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뉴턴은 태양의 중력이 지구로 뜬금없이 작용하는 것처럼 취급했다. 그러나 빛의 속도와 같이 8분 30초가 소요된다. 따라서 특수상대성이론으로 인해 뉴턴의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의 개념이 무너졌다. 이렇듯 과학에서 ‘절대’라는 개념은 지극히 취약하다. 그러나 특수상대성이론은 태양계 규모에서 등속일 때 성립하는 국소적 이론이다. 중력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우주적 규모를 관통하는 일반적인 이론이 필요했다. 10년 후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중력이론을 무너뜨리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한편 특수상대성이론의 공식  E=mc² 에는 어떤 물질도 질량이 없는 빛의 속도를 추월하지 못한다는 함의가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입자가속기에서 전자(질량 9.1093897×10^-31kg)에 아무리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도 광속을 앞에 두고는 제자리걸음이다. 이로 인해 아인슈타인은 훗날 ‘양자 얽힘’과 관련 동료 학자들과 신랄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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