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인영 Oct 16. 2023

발라의 닥스훈트, 슈뢰딩거의 고양이

자코모 발라의 <끈에 묶인 개의 역동성(1912)>

작품 제목은 <끈에 묶인 개의 역동성(1912)>이다. 한 여성이 애완견 닥스훈트와 함께 걷고 있다. 닥스훈트는 비정상적으로 허리가 길고, 다리가 짧아 오히려 매력적인 오소리 사냥개다. 1910년 이탈리아에서 출범한 미래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 1871~1958)가 그렸다. 구도가 파격적이다. 역동성을 담는데 닥스훈트의 짧은 다리가 안성맞춤이라 여긴 듯하다. 여성의 발과 함께 개의 다리에 초점을 맞췄고, 중첩된 형태로 속도를 표현했다. 이렇게 미래주의는 입체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간’을 담았다. 하지만 그림은 가볍게 접근할 수 있어 좋다. 종종걸음을 치면서 꼬리를 흔드는 닥스훈트의 특징적인 모습이 몹시 유쾌하다. 

유명한 입체-미래주의 작품으로는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Ⅱ(1912, 제목 그림)>가 있다. 역시 중첩된 형태로 표현했다. 그러나 1911년 뒤샹이 파리에서 열리는 '입체주의 앙데팡당전'에 출품했으나 거부당했다. 불쾌감을 느꼈던 뒤샹은 1913년, 뉴욕 ‘아모리 쇼’에 다시 출품했다. 입체주의를 거의 몰랐던 당시 미국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에 힘입어 뒤샹은 미국으로 이주한 후 뒤처진 화단의 미술에 관한 관행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려진 물질적 회화가 아니라 작가의 생각(idea)이 중요하다는 ‘개념 미술’의 탄생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양자역학자 하이젠베르크의 책 중 한 권의 표지였다고 한다. 난해한 미시의 세계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어떤 영감을 이 작품에서 얻으려 했을까? 



양자역학에서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 1900~1958)가 1925년에 발표한 배타 원리가 인상적이다. 아(亞) 원자 입자 중에 짝을 이룬 입자들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상대방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즉시 알아차린다(양자 얽힘)는 주장이다. 입자들은 스핀이라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한 입자의 스핀이 결정되는 순간, 짝을 이룬 다른 입자는 동시에 반대의 스핀을 갖는다. 놀랍게도 1997년 제네바 대학의 물리학자들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약 12km를 쏘아 보낸 광자에서 그 사실을 증명했다.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국소성(locality)’을 극복한 것이다. 양자 얽힘을 ‘유령’으로 비유했던 아인슈타인이 살아 있었다면, 몹시 머쓱한 일이었을 게다.

1927년 하이젠베르크가 전자의 위치 측정과 관련한 사고실험을 했다. 사고실험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처럼 실제 실험이 어려운 상황에서 선택하는 방법이다. 전자의 위치를 확인하려면, 빛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질량이 매우 작은 전자가 광자와 부딪치면, 튕겨 나간다. ‘콤프턴 효과’다. 당연히 위치 확인이 불가능하다. 하이젠베르크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와의 불확정성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

그러자 오스트리아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가 양자 중첩에서 발생하는 실재성(實在性)을 공격하기 위해 같은 사고실험으로 대응했다. 그는 고양이를 등장시켰다. 먼저 고양이 한 마리를 무쇠로 만든 상자 안에 가두어 놓는다. 그 안에는 깨지기 쉬운 용기 안에 담긴 독가스와 방사성 원자들이 함께 들어 있다. 방사성 원자가 누출될 경우, 망치가 용기를 때려 독가스가 발생하고 고양이는 죽게 된다. 

원자가 붕괴되어, 한 시간 안에 용기를 깨뜨리게 될 확률이 50%라고 하자. 상자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은 상태에서 한 시간이 지난 다음, 상자 속 고양이의 현재 상태를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요지다. 슈뢰딩거는 미시 세계(방사성 원자)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거시 세계(고양이)에 미치는 영향을 가정했다. 양자 역학에서 답하려면, 고양이가 ‘반은 살아 있고, 반은 죽은’ 중첩 상태로 기술할 수밖에 없다. 실제 상황에선 있을 수 없는 서술이다. 100% 죽었거나, 살아 있는 경우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슈뢰딩거가 질문했다. 


“그럼, 이 괴상한 양자 중첩이 과연 실재하는 거냐?”


보어는 거시의 세계와는 달리 양자의 세계에서는 실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변호했다. 인과론적인 물리학적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시 세계의 독특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실재 여부를 다투는 것은 소모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완강했다. “과학은 무엇이 존재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라며 객관적 실재를 보여주지 못하면, 그것은 완전한 이론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양자역학자들이 사실관계를 왜곡한 것이 아니다. 양자 세계에서는 확률로써 ‘반은 죽고, 반은 살아 있는’ 상태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래서 코넬대학교 응집물질물리학자 데이비드 머민은 "입 닥치고 그냥 계산해!"라고 말했다. 표현이 좀 심했다. 그럼, 이건 어떨까? 


“홍시 맛이 나기에 홍시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이다.” (연속극 <장금이> 패러디)


얼마 전 유튜브에서 양자 중첩과 얽힘에 관한 재미난 예를 들었다. 중식당에 짜장면과 짬뽕의 성질을 함께 가진(중첩) 음식이 있다. ‘짬짜면’하곤 다른 개념이다. 브라이언 그린은 불확정성 이론과 관련, 북경 오리와 광둥 새우를 예로 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짜장면, 짬뽕이 와닿는다. 여하튼 손님이 확인하는 순간 음식은 비선택적으로 짜장면, 혹은 짬뽕으로 나타난다. 또한 서울에서 짜장면이 나타나는 순간, 부산에서는 100% 짬뽕이 등장한다. 그 역(짬뽕→짜장면)도 100% 일치한다.

빛보다 빨리 정보가 전달된다는 사실은 상대성 이론을 거스른다. 그러나 입자에는 이런 성질이 최초부터 얽혀 있다. 전자의 스핀(spin), ‘업(up)’과 ‘다운(down)’이 이와 같다. 이런 설명이 얼마나 이해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이 인간의 직관에 관심이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이 우주에서 찾고자 하는 신의 섭리는 적어도 미시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전 10화 새로운 차원의 서술, 피카소와 양자역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