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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Jan 11. 2024

먹이사슬 위에서 비로소 고민하는 사피엔스

로버트 인디애나의 <러브(1966)>

생각의 표현은 그림에서 출발하여 문자로 진화했다. 그리고 많은 화가가 그림 만으론 부족했는지 그 속에 문자를 담았다. 중세 때 신의 말은 위에서 아래로, 인간의 말은 아래에 표현했다. 현대 미술에 이르러서도 르네 마그리트를 비롯하여 조셉 코주스(제목 그림; <하나 그리고 세 개의 의자(1965)>)에 이르기까지 언어가 던지는 본질을 이미지로 전달했다. 그러나 미국의 팝아트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 1928~2018)는 온전히 문자 자체로 예술적 상징성을 드러냈다. 


그중 <러브(1966)>가 대표적이다. 어린 시절 교회 벽에서 한 줄짜리 성경 구절을 보았다. ‘God is Love.’ 사랑은 기독교의 세 가지 덕목 중 으뜸이다. 베트남 전쟁(1965~1975) 관련 반전 운동이 격렬해졌을 때 발표했다. 당시 방황하던 젊은이들에게 인디애나의 이미지는 ‘전쟁이 아니라 사랑을 하자’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미술과 언어는 약 5만 년 전 출현했다. 뇌의 대뇌피질 중 '거울 신경세포'가 활성화한 시기와 일치한다. 인류의 공감 능력에 획기적인 향상을 가져왔다는 의미에서 '공감 세포'라고도 불린다.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분류하면 동물 계, 척삭동물 문, 포유 강, 영장 목, 사람 과, 사람 속, 호모사피엔스 종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오늘날 영생불멸을 제외하곤, 신의 경지까지 기웃거린다. 

하지만 이렇게 대단한 인류의 시작점에 관하여 분명한 학설은 없다. 최초의 현대 인류의 혈통에 대해서도 사람 속(屬)의 다른 종들보다 알고 있는 것이 적다. 한 마디로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추정에 불과하다. 이 점을 유념하면서 대체적인 인류의 기원을 이해하기 바란다. 


먼 조상 영장류는 중생대(약 2억 5,0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 사이) 공룡의 시대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일부가 좀 더 몸집이 큰 호미니드(Hominidae, 직립 보행 영장류, 사람 科)로 발전했다. 이들 대형 유인원은 원숭이와 달리 몸통이 둥글지 않고, 가슴이 넓적하며 편평한 것이 특징이다. 호미니드는 다시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인간, 네 종류의 속(屬)으로 나뉜다. 인간은 침팬지와 DNA 염기 서열이 약 98.4% 일치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린 1.6%의 다른 DNA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침팬지와 인간의 DNA 차이를 역추적해 보면, 그 편차가 약 600만 년 전에 생겼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공통 조상이 있었다는 의미다. 그들이 나무 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땅으로 내려옴으로써 나무를 쥐었던 앞발이 자유로워졌다. 대략 500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가 건조해지면서 밀림이 점점 더 열대 초원(사바나)으로 바뀌었는데, 이에 적응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이족보행은 매우 위험스러운 전략이다. 산란관이 좁아져 산통과 함께 산모와 아기의 사망률이 많이 증가한다. 또한 아기의 뇌가 발달하기까지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반면 훗날 손재주와 함께 두뇌의 발달로 이어졌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루시’로 대표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다. ‘남방 원숭이’라는 뜻이며, 원인(猿人)이라고 한다. 하지만 원숭이와는 달리 꼬리가 없었으며, 인간이 아니라 두 발로 걷던 유인원이었다. 뇌 용량은 500cc 정도로 고릴라보다 조금 컸다. 많게는 20여 종이 존재했는데, 얼마나 잘 걸을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존재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300만 년 이상 거의 변하지 않았다. 뇌가 커지지도 않았고, 도구를 사용한 흔적이 없다. 

그러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대신 300만 년에서 200만 년 전 사이에 아프리카에 여섯 종의 초기 인류가 공존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중 단 하나만이 살아남았는데, 사람 속 호모가 바로 그들이다. 호모 하빌리스에서 시작하여 호모 사피엔스에 이른다. 호모 하빌리스는 ‘도구를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침팬지에 가까운 원시 상태였지만, 뇌는 루시보다 50%나 더 컸다. 


유인원과 인간의 경계선상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했다. 그들이 약 200만 년 전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에서 화장했던 흔적을 확인했다. 불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열원을 휴대하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다. 육류와 단단한 식물을 오래 보관하여 먹을 수 있다. 또한 금속을 녹여 도구를 만들어 농지도 개간한다. 이와 관련 이견이 존재하나 적어도 고기의 소화 흡수를 도운 점은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육식은 호모 에렉투스의 큰 뇌(1,000CC 정도)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그리고 뇌의 크기와 함께 정보 처리 속도가 중요하다. 인간의 두뇌는 코끼리나 고래보다 6~10배가량 빠르다. 대뇌 피질에 있는 뉴런의 병렬적 역할 때문으로 보인다. 여하튼 신체 질량의 2%를 차지하는 뇌가 전체 에너지의 20%를 사용하기에 육식을 통한 에너지 보충은 분명 효율적이었다. 


약 120만 년 전에서 70만 년 전 사이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났다. 이와 관련해서도 많은 주장이 난무한다. 그래도 이때쯤 해서 현대 인류와 가까운 새로운 직립 원인(原人)이 아프리카를 떠난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은 열대 지역인 아시아의 남부와 남동부 지역까지 퍼졌다. 그러나 생각만큼 엄청난 모험이 아니라 1년에 평균 130m라는 기막힌 속도로 이동했다. 

대략 10만 년쯤 전에 새로운 종, 사피엔스가 두 번째로 아프리카 평원을 떠났다. 그렇게 유럽과 지중해 지역의 네안데르탈인, 동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 그리고 아프리카 동부의 호모 사피엔스 3개 집단으로 나뉘었다. (60만 년 전에 등장하여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공통 조상으로 추정되는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를 호모 에렉투스에서 떼어내 별도 분류하기도 한다) 


약 3만 년 전쯤 마침내 다른 종이 모두 사라진 가운데 학명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단독으로 먹이사슬 정점에 올랐다. '현생 인류'인 신인(新人) '슬기로운 사람'들이다. 여기엔 언어의 다양성이 원동력이었을 것으로 분석한다. 호모 사피엔스 뇌의 용량은 1,300~1,500CC 정도로, 네안데르탈인의 것과 비슷한 크기다. 지능이 비슷했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만이 모음을 낼 수 있는 구강 구조를 가졌다. 지구 전역에 퍼진 현생 인류는 1만 년 전 신석기 문화를 발달시켰다. 그리고 5,500년 전 정보를 오래 저장, 전달하는 장점이 있는 문자를 만들어 문명사회를 이뤘다. 

매우 긴 세월을 경과한 듯하다. 그러나 지구의 역사 46억 년을 단 하루로 줄인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자정 77초 전에 처음 등장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한 변화였다. 따라서 이 지점까진 생존과 번식에만 급급했다고 이해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견제가 없어지자 자만해졌다.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고 진화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여섯 번째 대멸종(절멸)을 주도한다. 무도하다. 지구에는 더 이상의 신세계가 없고, 우주는 거친 곳이다. 서둘러 모든 생명체와 공진화를 추구해야 한다. 과학을 고양하듯 자연을 고양하자. 그러면 자연이 우리를 고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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