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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Jan 01. 2024

'카르페 디엠'과 DNA 이중나선 구조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할 수 있을 때 장미꽃 봉오리를 모으>

녹색 중세풍 드레스를 입은 처녀가 탐스러운 분홍 장미를 은 항아리에 가득 담아서 들고 있다. 그녀의 뺨도 장미를 닮아 청순하고 아름답다. 평생 그대로 머무르고 싶은 순간이리라. 라파엘전파의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의 <할 수 있을 때 장미꽃 봉오리를 모으라(1908)>이다. 

시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원래 ”젊고 아름다울 때 열심히 노력해서 빨리 시집가라”는 뜻이다. 작품에서는 “좋은 시절을 즐기라(카르페 디엠)”라는 뜻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쾌락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 쾌락은 죄의식을 수반하거나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다. ‘고통의 부재이자, 삶의 기쁨이다. 만약 인간에게서 쾌락의 달콤한 감정을 빼앗는다면, 어떻게 선(善)이나, 천국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진정해. 그리고 즐기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것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생명체의 한계다. 하지만 죽음 역시 통과의례일 뿐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은 죽음을 걱정하며 오늘 밤을 지새울 까닭이 없다. 우주는 원래 무생물이 보편적이다. 오히려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다. 그러니 장미꽃 봉오리를 모으듯 우리의 삶도 기쁨으로 채워가야 한다.



영국의 수리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Sir Roger Penrose, 1931~)는 최고의 이론물리학자 중 한 명이다. 1970년대 초 스티븐 호킹과 함께 블랙홀의 특이점 개념을 거꾸로 확장해 우주의 근원, 빅뱅을 설명했다. 그 공로로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그는 독특하게도 인간 의식에 관한 양자적 접근을 시도했다. 의식의 기원은 우주, 생명체와 함께 과학계의 3대 미스터리 중 하나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 1929~2021)은 <통섭>에서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복잡한 체계는 생물이며, 모든 생물 현상 중에서 가장 복잡한 체계가 인간의 마음”이라고 했다. 

인간에 관한 물리학적 서술은 의외로 간단하다.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은 딸에게 "우리는 모두 별의 자녀"라고 알려주었다. 우리 세포가 별의 구성성분과 같다는 뜻이다. 그리고 뇌파는 본질적으로 전자기적 현상이다. 전하를 가진 칼륨 원자들과 나트륨 원자들이 움직여 만든다. 펜로즈는 두뇌 속 미세소관(세포 골격의 하나로, 세포질 전역에 널리 퍼져 있는 가느다란 튜브형의 세포 모양을 유지하는 골조)에서 그 이상의 작용, 즉 양자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러나 아직 주류 학계의 반응은 아직 냉랭하다. 어떤 실험적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1848년 9월 13일, 미국 버몬트주 철도 공사 현장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했다. 현장 감독관이던 스물다섯 살 피니어스 게이지의 머리에 철 막대기가 관통했다. 다행히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지름 9cm 정도의 구멍이 생기면서 대뇌 전두엽 부분에 손상을 입었다. 그런데 사건 이후 그의 성격이 180도 바뀌었다. 친절하고 예의 바르던 그가 거칠어졌다. 신경과학계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과연 뇌로부터 독립되었느냐?”는 화두였다. 

뇌 활동에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의 최대 20%를 사용한다. 100%를 사용하면, 열이 발생하고 체온이 올라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한다. 인간 두뇌의 물리적 한계성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때그때 필요한 최소한의 네트워크만 활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각 뉴런의 자율성이 보장된 병렬식 시스템이라야 한다. 이 지점에서 양자역학적 효과가 발생하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극미 세계에 집중하면서 생명체 이면에 작용하는 인과관계가 조금씩 드러났다. 뇌(시냅스) 신경전달물질의 생화학적 역할이 밝혀지고, 사지마비 환자가 생각만으로 기계를 손과 발처럼 작동한다. 하지만 ‘마음’은 마지막 복잡계다. 그러니 펜로즈의 견해가 현재로는 가설로만 존재하는 철학적 문제일 수밖에 없다. 


영국 캐번디시연구소의 왓슨과 크릭이 대담한 가설을 세우고 골판지와 철사를 이용해 DNA 분자 모델을 연구하고 있었다. DNA는 디옥시리보핵산(Deoxyribo nucleic acid)의 약칭으로,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화학 물질의 일종이다. 런던 킹스칼리지에서도 두 사람과 다른 방법으로 DNA 분자 구조에 접근하는 연구원이 있었다. 데이터를 통한 귀납적 방법을 사용하는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Elsie Franklin, 1922~1958)이다. 그녀의 전문 분야는 X선 결정학이다. 전자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미세 물질에 X선을 쏘아서 얻은 산란 패턴을 활용해서 분자 구조의 실마리를 찾는 지난한 과정이다. 플랭클린은 DNA가 수분 함량에 따라 두 종류의 결정에서 나타난 산란, 회절 패턴을 촬영했다. 자신도 깨닫지 못한 사이에 성배 바로 근처까지 접근해 있었다.

DNA 이중나선(출처; 위키백과)

반면 당시 왓슨과 크릭은 거꾸로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데이터가 없었다. 이때 이들을 도운 인물이 경쟁 상대인 모리스 윌킨스(Maurice Hugh Frederick Wilkins, 1916~2004)였다. 윌킨스는 프랭클린과 함께 DNA를 연구 중이었다. X선 결정학에 무지했던 그는 부하직원으로 들어온 그녀의 도움을 기대했다. 그러나 프랭클린은 자신을 별개의 독립 연구원으로 생각했다. 

둘은 충돌이 잦았다. 결국, 그녀가 연구실을 옮기려 할 때 윌킨스가 (크릭을 통해 친분이 있었던) 왓슨을 찾아왔다. 그리고 복사하여 갖고 있던 플랭클린의 3차원 형태 X선 사진을 살짝 보여주었다. 이중나선 형태를 예상할 수 있고, 패턴을 통해 DNA 높이와 각도 등 구조를 짐작할 수 있는 사진이었다. 두 가닥 나선 사슬이 반대 방향을 바라보며 꼬여 있고, 뉴클레티드 A와 T, G와 C의 (염기) 쌍이 사슬의 주행 방향과 90도 평면각을 이루면서 나선 내부로 들어가는 형태였다.

 

훗날 윌킨스는 자신에게 그녀의 데이터를 열람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법이 아니라 해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정보 유출이다. 물론 사진이 전부가 아니다. 무리하여 왓슨과 크릭의 통찰력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도 없다. 다만 그녀의 사진이 두 사람에게 확신을 심어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1953년,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졌다. 그리고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식에 윌킨스를 포함하여 세 명이 섰다. 37세의 프랭클린은 이 사실을 모른 채 4년 전 난소암으로 요절했다. 노벨상은 생존한 인물에게 수여한다. 하지만 누구도 수상 소감에서 그녀의 기여를 언급한 이가 없었다. 

승승장구하던 왓슨은 훗날 인종 차별적 발언으로 과학계에서 퇴출당했다. 그리고 생활고에 허덕이다 2014년에는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았다. 크릭 역시 우생학자로서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두 사람의 태도 역시 과학이 아니라 철학적 문제다. 앞으로 양자역학이 이런 마음의 작동까지 물리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우연을 믿는 나로서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지금 나의 직관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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