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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Dec 26. 2023

요제프 보이스와 토끼, 그리고 DNA

요제프 보이스의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1965)>

독일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가 머리에 꿀과 금박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안고 있는 죽은 토끼에게 약 2시간 동안 미술관 그림을 설명했다. 퍼포먼스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1965)>이다. 

꿀은 인간에게 있어서 생각과 같다. 벌에게서 꿀이 생성되듯이 인간에게도 생각이 살아 있을 때 비로소 삶이 의미가 있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치명적인 적(敵)은 합리화다. 합리화는 인간의 영혼을 죽이고, 내면의 소리를 잠재운다. 금박이 이를 상징한다. 따라서 고집스러운 이성으로 무장한 인간보다 죽은 토끼의 영혼이 그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통렬한 풍자다. (제목 그림; 알브레히트 뒤러의 <산토끼(1502)>


스무 살 요제프 보이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나치의 공군 조종사로 참전했다. 1943년, 그가 탄 비행기가 러시아군에 의해 격추되었는데, 몽골리안 계통의 타타르족(族) 원주민이 크림반도에 떨어진 그를 발견했다. 먼저 불에 탄 그의 몸뚱이에 동물의 비곗덩어리를 발라 응급 처치를 했다. 그리고 추위에 떠는 그를 펠트 담요에 감싸서 썰매에 태웠고, 8일 만에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샤머니즘 사회의 문화적 잠재력을 경험한 그는 스스로 ‘샤먼(무당)’임을 자처했다. 신과 소통을 시도하고 삶과 죽음, 생명의 순환 관계에 몰입했다. 한편 예술로 물질문명에 찌든 서구 사회를 치료하려 했고, 나아가 전통 예술까지 치료하려 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 즉 의사소통과 자유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작품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이번에는 순수 물리학자가 뜬금없이 “토끼와 돌멩이가 어떻게 다르냐?”고 질문했다. 고양이 사고 실험을 했던 에르빈 슈뢰딩거가 그 주인공이다. 1943년 2월, 그는 3주 동안 금요일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공개 강연을 열었다. 강연에서 슈뢰딩거는 운집한 청중을 향해 던진 화두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신체적 경계 안에서 벌어지는 시공간의 사건을 물리학과 화학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유전적 프로그램이 저장된 DNA의 역할을 몰랐던 때였다. 사실 유전은 뇌 활동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정보 전달이다. 슈뢰딩거는 유전자가 '암호화된 지시를 포함하는 복잡하고 불규칙한 구조를 가진 분자'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코드(암호)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여 ‘염색체는 코드로 쓴 메시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양자역학을 유전학에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포와 돌멩이 모두 같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유독 세포가 집단적인 거동을 하면서 생명 혹은 의식이 창발한다. 큰 수수께끼다. 불가피하게 과학의 기본 개념을 확장해야 했다. 이후 이론물리학자에 의한 인간 의식에 관한 양자적 접근은 로저 펜로즈로 이어진다.


당시 슈뢰딩거의 강연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생물학자가 있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캐빈디시연구소 소속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1916~2004)과 제임스 왓슨(James Dewey Watson, 1928~)이다. 1944년에 이르러 미국의 세균학자 오즈월드 에이버리((Oswald Avery, 1877-1955)가 중요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폐렴을 옮기는 감염성 박테리아 균주로부터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RNA, DNA 등을 분리하여 각각 살아 있는 세포에 주입했다. 그랬더니 DNA를 주입한 세포에서만 감염이 일어났다. 유전 정보의 비밀이 DNA에 있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따라서 모든 과학자의 관심은 DNA 구조를 밝히는 데로 집중되었다.

‘생명의 암호’ DNA는 생명체가 생명체로 존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아주 긴’ 지침서다. 하지만 엄밀히 구분하면, DNA 전체를 유전자라고 하지 않는다. DNA의 약 1%만이 단백질을 만드는데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 이것이 유전자다. 나머지는 어떤 단백질을 언제 어떻게 만들지, 그때그때 얼마나 많이 만들지를 조절한다. 단 1개의 세포 속에 들어 있는 DNA를 꺼내어 펼치면, 그 길이가 약 2m에 달한다. 그리고 평균적인 인간의 몸은 약 40조 개의 세포로 되어있다. ‘아주 길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참고로 DNA에 적힌 지침은 두 단계를 거쳐 단백질로 변환한다. 전령 리보핵산(mRNA, messenger ribonucleic acid)과 이를 해독하여 단백질을 생산하는 리보솜이다. 따라서 DNA가 세포에 유전형질을 직접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단백질의 형태를 명령할 뿐이다. 


유전자(‘형질전환물질’)는 네 개의 뉴클레오티드를 지닌 DNA다. 이 사실은 이미 오즈월드 에이버리에 의해 밝혀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네 개(A, C, G, T)밖에 안 되는 단순한 구성에서 어떻게 놀랍도록 복잡한 유전적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느냐는 것이 그들의 의구심이었다. 0과 1만으로도 복잡한 환경을 구현하는 컴퓨터를 생각했다면, 이해가 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코드 개념이 없었다. 컬럼비아대학 생화학연구실 소속 어윈 샤가프(Erwin Chargaff, 1905~2002)는 데이터를 통해 네 종류의 뉴클레오타이드 중 A(아데닌)와 T(티민), G(구아닌)와 C(시토신)가 각각 함량이 같다는 패턴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으며, 무엇을 시사하는지를 몰랐다. 


마침내 알고리즘을 풀고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과학자가 바로 왓슨과 크릭이다. 두 사람은 “DNA가 반드시 자기 복제를 할 수 있는 구조를 가졌고, 여기에는 어윈 샤가프가 말하는 규칙성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1953년, 마침내 연구 결과가 겨우 900 단어의 짧은 논문의 형태로 <네이처>지에 게재되었다. 

하지만 노벨상을 받게 되는 두 사람은 세기적인 표절 문제에 휩쓸렸다. 안타까운 것은 그때 그들은 위대한 업적을 세운 과학자로서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변명으로 일관함으로써 자신들의 성과와 명예를 스스로 실추시켰다. (이 내용은 다음 회에 상세히 다루기로 한다) 요제프 보이스의 퍼포먼스처럼 그들의 머리에도 금박을 두르고 있었나 보다. 합리화란 금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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