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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Dec 20. 2023

생명의 기원과 메리안의 곤충 도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수리남 곤충의 변태(1705)>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수리남 곤충의 변태(1705)> 중에서

그림은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Maria Sibylla Merian, 1647~1717)의 <수리남 곤충의 변태(1705)> 도감 중 하나이다. 여기서 곤충의 변태란 그녀가 연구를 시작할 당시 상상도, 주장도 못했다. 그야말로 ‘악마의 마법’이었다. 그녀는 열세 살에 누에를 처음 길렀다. 그리고 알에서 애벌레, 다시 번데기에서 나비로 성장하여 하늘을 나는 광경에서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다. 

곤충 연구를 천직으로 삼은 그녀는 스물여덟 살에 첫 동판화집 <꽃 그림책> 1부 이후 <애벌레의 경이로운 변태와 그 특별한 식탁(1679)>을 썼다. 사람을 만나기다 곤충 관찰하는 일을 더 즐겼던 메리안은 52세가 되는 1699년에 남미 수리남으로 갔다. 그곳에서 풍토병 말라리아와 더위를 이겨내면서 2년간 치밀하게 연구했다. 마침내 최고의 걸작 <수리남 곤충의 변태>를 발간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자칫 그녀를 전사처럼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의붓아버지, 두 번의 결혼과 화가였던 주정뱅이 남편, 세상의 홀대 속에서 그야말로 인고의 세월을 보낸 상처받은 영혼이었다. 따라서 연약하고 외로운 그녀가 말 못 하는 곤충에게 관심을 쏟은 것은 필연적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녀의 책은 유럽 곤충학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그뿐, 전문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의 꽃과 곤충 그림은 천대받았다. 말년에 그녀의 이름은 빈민자 명부에 올랐다고 한다. 20세기 중반 그녀의 업적이 재평가되고, 독일 500마르크 지폐와 기념우표에 얼굴 초상이 들어갔다. 뒤에 남은 사람들이 미안한 마음으로 표현한 최소한의 예우로 보인다.



생명체의 지구 출현 과정을 명확히 설명해 주는 정설은 없다. 다만 외계 유입설을 제외한다면, 지구에서 생명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단백질, DNA, 미토콘드리아, 그리고 배양액 등이 존재해야 한다. 이중 단백질은 ‘생명의 기본 재료’ 아미노산을 특별한 순서로 연결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단백질 중 하나인 콜라겐을 만들려면, 1,055개의 아미노산을 정확한 순서로 연결해야만 한다. 확률상 제로에 가깝다. DNA는 단백질이 자기복제를 하는 데 필요하다. 어느 순간, 단백질과 DNA를 담아둘 막이 생겼다. 모든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 세포(cell)다. 세포를 이루는 물질들은 무생물이지만, 세포 자체는 생물이다. 따라서 세포는 무생물과 생물을 구분 짓는 경계이다. 

38억 년 전 탄생한 최초의 세포는 열을 좋아하는 원시 세균이거나, 박테리아 세포였을 것이다. 이후 지구는 20억 년 넘게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이런 원핵(原核)생물의 세상이었다. 마침내 박테리아가 엄청난 일을 해냈다. 효소 작용, 질소고정(대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환원하는 생물학적 과정), 광합성 운동 등 생태계의 근본 요소를 창출한 것이다. 그러던 중 청록색 박테리아가 물에서 수소를 빼앗으면서 산소를 대규모로 방출했다. 그리고 대기 중에 산소가 21%로 높아졌을 때 전혀 새로운 형태의 진핵세포가 등장했다. 빨라야 19억 년 전 일로, 유전물질을 포함하는 핵을 지닌 진화의 첫걸음이다. 


단세포 진핵생물은 ‘동물 이전의 생물’, 즉 원생생물이라 불렀다. 진핵생물에서 다세포생물로의 진화는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다. 세포를 숙주로 한 미토콘드리아가 유도했다. 그리고 성을 매개로 한 유성생식(有性生殖)이 선택되면서 진화에 엄청난 속도가 붙었다. 종의 다양성과 강인함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자 다세포 유기체의 세포들은 각각의 임무에 맞게 기능을 특화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머지 세포들은 생식세포에 모든 힘을 몰아주는 경향을 보였다. 

고생대 초기 캄브리아기에 생명체는 절정을 이룬다. 약 5억 4,200만 년 전부터 5억 3,000만 년 전 사이에 갑자기 35가지 생물‘문(門)’이 생겨났다.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 부르는데, 1,300만~2,500만 년 정도 지속되었다. ‘문’은 생물의 분류 체계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동물계’의 '척삭동물문’으로 분류한다. 문은 연이어 강, 목, 과, 족, 속, 종으로 나뉘는데, 스웨덴의 박물학자 린네(Carl von Linné, 1707~1778)가 만들었다. 여하튼 이후 문은 두 번 다시 생기지 않았으니 대폭발이라 할 만하다. 이때 등장한 대표적인 생물이 삼엽충이고, 이어서 척추동물 어류가 나타나 바다를 점차 가득 채워갔다. 


지질 구조판의 융기 등으로 바닷물이 빠지면서 고생대 말기에 판게아라는 초대륙이 만들어졌다. 그러자 다세포 유기체가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왔다. 바닷속이 위험해졌으며, 해안가에서 먹이 찾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물론 이전에 육지 식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달의 조수 작용으로 발생하는 밀물과 썰물로 인해 일부 생명체가 수상과 육지를 오간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물속에 살던 생명체로써는 죽음을 이겨낸 쾌거다. 이 과정에서 녹조류가 균류의 도움을 받아 광합성을 통해 산소가 생겼고, 유해산소인 '활성화 산소'를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어 냈다. 이렇게 '빈산소'에서 산소가 풍부한 상태로 접어들기까지 무려 22~24.5억 년이 걸렸다.


동물과 식물은 별도의 방법으로 진화했다. 식물 화석은 4억 8천만 년 전, 동물 화석은 4억 5천만 년 전 지층에서 확인된다. 최초 동물은 딱딱한 부위가 없었기에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양서류에 이어 데본기(3억 9,500만 년 전~3억 4.500만 년 전)가 되자 무척추동물, 거미와 곤충류가 활발해진다. 

그러다가 2억 5,000만 년 전 95%의 종(種)이 사라지는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 이후 파충류가 번성했다. 파충류는 껍질이 있는 알을 땅에 낳았다. 진화에 큰 변화다. 부모의 입장에서 물속으로 돌아갈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물속처럼 알 위에 수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궁즉통(窮則通), 암컷의 신체에 직접 정자를 넣는 교미 방법을 개발했다. 그리고 파충류에서 진화한 놀라운 생물, 공룡은 이 방법으로 1억 년 이상 번식했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포유류나 조류 역시 굳이 과거의 생식 방법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진화 과정을 거친 파충류와 조류, 그리고 대부분의 포유류는 태아 상태일 때 물에서 산 흔적이 발견된다. 그리고 인간의 피에 바닷소금이 포함되었으며, 몸의 65%가 물이다. 바다가 인류 역사의 출발점이라는 방증이다.


중생대 마지막 시기에 다시 한번 지구에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 오늘날의 멕시코 유카탄 부근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졌다. 이번엔 지구 전체 생물의 75%가 멸종했고, 공룡의 시대가 끝났다. 신생대는 포유류와 조류의 시대다. 마침내 지구 탄생 46억 년 막바지에 인류의 조상이 탄생했다. 이렇게 생명체 387억 년의 역사를 개관해 보면, 세균에서 곤충에 이르기까지 34억 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 반면 곤충에서 인간에게 이르기까지는 약 4억 년이 걸렸을 뿐이다. MIT 로봇연구소장 로드니 브룩스는 이렇게 평가한다. 


“이것은 곤충 수준의 지능이 절대 사소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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