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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Apr 04. 2022

영국인의 사랑, 존 컨스터블

영국 풍경화의 대표작 <건초 마차>

19세기 초 영국의 풍경화는 프랑스보다 훨씬 발전한 상황이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풍경화가로 꼽히는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은 조슈아 레이놀즈(Sir Joshua Reynolds, 1723~1792)와 토머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 1727~1788)가 그랬던 것처럼 터너와 함께 좋은 경쟁 관계를 이루었다. 그러나 작품 세계에 있어서 두 사람은 매우 대조적이다. 그는 순수 풍경을 지향했다. '영웅적 풍경화', 즉 위대한 자연의 서사를 다루었던 낭만주의 시대에 이 ‘새롭고 진실한 풍경화’는 오히려 혁명이었다.

 

<건초 마차(1821)>

1824년 도버 해를 건너 프랑스 살롱전에 <건초 마차(1821)>를 출품했다. 당시로선 이례적인 크기(130x185cm)의 풍경화다. 1821년 영국 왕립 아카데미 전시에서 첫선을 보였으나 그땐 반향이 잔잔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금상 수상과 함께 ‘자연 그 자체’라는 찬사를 독차지했다. 낭만주의 대표 화가 들라크루아가 짧은 붓질로 빛의 효과를 살려 <키오스섬의 학살>의 전경을 다시 채색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터너와 함께 그의 풍경화는 보불전쟁(1870~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간 전쟁)을 피해 영국에 머무르던 모네, 피사로, 시슬레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프랑스 인상주의의 탄생을 도왔다.

그림 세부

작품의 배경은 영국의 서포크 지방 스투어 강변의 한 평범한 농가 마을 데덤이다. 그가 나서 자란 곳이다. 무성하게 우거진 초록빛 배경에 대기와 빛의 변화를 서술했다. 원경에서는 농부들이 목초지에서 건초를 베어내고 있다. 전경 얕은 물가를 지나는 마차가 바로 목초지로 향하는 길이다. 마차 위 소년은 스패니얼 종으로 보이는 강아지를 부르고, 조각배를 탄 낚시꾼이 일어서서 습지로 낚싯대를 드리운다. 왼쪽 가옥의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지붕과 굴뚝, 그리고 마차 마구(馬具)의 붉은색이 초록과 보색 대비를 이룬다. “경솔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컨스터블의 감성이 배어 있다. 

한 비평가는 이 작품을 보고 "이슬이 바닥에 구르는 것 같다"라고 했다. 농촌의 이런 사실적인 세부 묘사와 색채 처리는 밀레의 바르비종파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붓질의 자유스러움, 표면의 생동감, 특히 자연에 나가 직접 유화로 스케치하는 방법은 프랑스의 젊은 미술학도들의 관심을 끌었다. 광선과 바람의 효과, 이슬이 맺힌 아침 풍경 등 과학적 관찰에 의한 자연의 신선함을 현장에서 포착하려는 태도로 인해 그는 인상주의의 직접적인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830년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목표를 이렇게 기술했다.


“나는 풍경 위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 효과를 표현하기 위해 그 일반적인 효과뿐 아니라 특정한 어떤 날, 어떤 시간, 그리고 햇빛, 어둠 등을 기록한다. 또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 영원불변하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부터 포착되는 짧은 일순간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에인 잭젝, <명화의 재발견>)

부친 소유 <선박 건조장(1815)>

부유한 제분업자였던 아버지가 아들이 '저급한' 화가가 되겠다는 걸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사업을 물려받는 대신, 아버지 소유의 방앗간, 옥수수 농장, 선박 건조장 풍경을 담았다. 서른아홉 살 이전에는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다. 신청한 지 16년이 지나 쉰다섯 살이 되어서야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하지만 명성과 재정적으로 모두 성공하지 못했어도 컨스터블에겐 사랑하는 영국의 풍경이 있어 행복했다. 

터너와는 달리 방앗간, 댐, 버드나무, 오래된 썩은 판자, 끈적끈적한 기둥, 벽돌 세공에서 물이 새는 소리를 좋아했다. 거친 자연과 폐허에서 낭만을 찾던 유행에서 동떨어졌어도 주눅 들지 않았다. 아니, 이런 유행을 허세라고 여겼다. 과장을 싫어하고 조용했던 그는 1827년부터 런던 근교 햄스테드에 정착하여 아내 마리아와 함께 여생을 보냈다. 이런 면에서 전쟁의 와중에서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던 네덜란드 화가를 닮았다. (제목 그림은 <무지개 뜬 햄스테드 히스(1836)>)

 

욕심을 내려놓고 주변의 소란함에서 벗어나면, 좀 더 자신의 장단점이 눈에 띄는 법이다. 그곳에서 컨스터블은 자연의 힘에 압도당하지도, 요령을 부려 꾸미려고도 하지 않았다. 초원의 적갈색부터 은빛 나는 옅은 파란색에 이르기까지 풍성한 초록색을 사용(앨리슨 콜, <색채>)하여 목가적이고 아늑한 풍광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당시 영국의 농가는 황폐해가고 있었다. 따라서 자전적인 그의 작품은 훗날 영국인들에게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사랑을 듬뿍 받기에 이른다. 성공, 그게 별다른 것일까? 태어나기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이루고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감을 선물했다면, 그것이 곧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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