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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by 지흐


80대 노인이 출근길에 오른다.


46번 초록색 순환버스 기사는 익숙하다는 듯이 노인이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한다.

할아버지의 출근길에는 젖은 머리로 버스에서 화장을 하는 직장인, 무슨 소리 인지도 모르는 외계어로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영감을 얻으러 여행을 떠나려는 프리랜서, 밤샘 근무가 끝난 2교대 근무자까지 각자의 사정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한다.


출근 후 노인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귀를 여는 것이다. 노인의 직업상 잘 들어야 하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난 후에는 떨어진 물건들 주워주기, 시간에 맞춰 어깨를 토닥여 주는 일 등이 있다.


노인이 근무에 있어서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는 부분은 바로 시각적인 부분인데, 평소라면 볼 수 없는 곳까지 볼 수 있어서 집에만 있어서 답답했던 시야가 확 뚫리는 기분이 든다.


노인의 근무지는 46번 순환버스 노약자석이다.

버스로 출근한 지 벌써 1년이 넘어가지만 노인은 아직도 새롭고 즐겁다.


오늘도 노인은 출근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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