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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승원 May 12. 2021

추억이 그려내는 공간

느낌적인 느낌,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내가 다녀왔던 어떤 공간이나 기억 속의 장소를 말로 묘사하여 다른 이에게 설명해 본 적이 있다면,

그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흔히들 느낌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이런 느낌, 저런 느낌, 온갖 느낌들로 그 공간이

풍겨내는 분위기를 설명하려 애를 쓰곤 한다.


"아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느낌적인 느낌이요."


"그 옛날 어릴 적에 어디 가면 항상 그렇잖아요."


"어떤 느낌인 줄 알겠죠?"


이런 말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보통은 듣는 이도

박수와 함께 맞장구를 치기 마련이다.

맞장구를 칠 수 있는 이유는 본인 기억 속의

어느 한 공간을 비슷하다고 생각하 떠올렸거나,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상상의 공간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주말에 아내와 함께 집 근처 떡볶이집을 찾았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먼저 주문을 하고 있던  중년의 남성을 바라보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면서 가게 주인 분과 중년 남성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없어진 줄로만 알고 잊고 지냈는데 위치가 바뀌었네요?"


"네, 어머니가 하시던 가게를 이어받으면서 지금 자리로

오게 됐어요."


"학교 다닐 적에 정말 자주 다녔는데 이사 가고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TV 보고 알았습니다."


"멀리서 오신 거예요? 이렇게 찾아주시니 감사하네요"


"거리를 떠나서 어릴 적 추억의 맛을 이제는 제 자식들과

함께 느껴보고 싶어서요."


내용은 랬다. 게가 대를 거치면서 위치가 바뀌었고

그즈음 없어진 줄로 알고 이사도 가는 바람에 잊고 지우연히 TV 프로그램에서 보게 되어 멀지만 찾아온 것이다.

그 대화 뒤로 주문한 음식이 포장되어가면서 두 분은

옛날 가게 공간을 함께 회상했다.

그때는 그랬는데 저랬는데 하면서 이다


공간이 협소해서 테이블은 작았고, 깨진 곳을 테이프로

칭칭 감아놓은 플라스틱 의자와 벽면에 빼곡히 적혀있는

낙서들까지, 공간을 그려내는데 필요한 단서들이 넘쳐났다. 듣고 있는 나도 그 공간이 그려질 만큼 많은 느낌들과 분위기가 대화 속에서 느껴졌다.

그 시절 그 가게를 본 적은 없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그 공간을 그려낼 수 있었다. 마치 내 어릴 적 억의 장소가 겹쳐 떠오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추억의 힘은 굉장히 세다.

이제는 잊고 지낸 듯 하지만 기억의 감성을 살짝만

건드려주면 틀어놓은 수도꼭지처럼 옛 기억과 추억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특정 물건이나, 뚜렷한 공간적 특징 

기억의 성을 자극하는 방아쇠 역할을 다.

그것들을 통하여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콘셉트가 가득한 공간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느낌과 분위기를 살려줄 수 있는 포인트를 캐치하여 공간 연출하거나, 적절한 소품 등을

배치한다. 단순하고 일차원적으로 시각적인 요소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대단한 디자인이 아니어도 그저 단순한 소품 하나,

꾸밈없이 붙여놓은 메뉴판 하나로도 우리들을

과거의 기억 속으로 보내준다.

그만큼 공간의 힘도 대단한 것이다.

그저 기억 속의 단순한 배경 같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짧은 대화였지만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해 준 순간을 뒤로한 채 떡볶이를 포장해서 집으로

어가면서 아내에게 나의 기억 속 공간을 연신 묘사했다.

"그 왜 느낌적인 느낌 있잖아, 그려지지?"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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